신문이야기

[스크랩] 첫사랑 / 투르게네프

이바구아지매 2006. 9. 20. 13:19

 

 

사랑은 무엇이더냐?

물었다.

 

"맹목적인 가치다."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더구나 첫사랑은 더욱더 맹목적이지 않을까.

그냥 가슴이 움직이는 것.

 맹목적인 힘으로 나를 지배하고. 떨림과 달콤함을 주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것.

행복보다는 슬픔과 상처를 주는 것.

그래서 피하고 싶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

 

첫사랑!

 

처음의 사랑을 말할때는 이미 추억이다.

과거의 궤적을 회상하는 형식이 될 수 밖에 없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세 사나이가 모여 앉아 심심하여 첫사랑을 애기해 보자고 한다.

 

두 사나이는 첫사랑이라는 추억조차 없다.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 그는 얘기가 서툴다, 하여 글로써 적어 온 사랑의 추억이 첫사랑의 시작이고, 그가 적어온 글을 읽는 두 사람의 맨 처음의 독자, 무궁하게 확산하여 내게까지 다다른 것이다.

 16세에 찾아온 사랑, 대상은 연상의 지나이다.

 

지나이다라는 인물은 독특하다.

늘씬한 몸매와 가느다란 목, 깨끗한 두 손, 흰모자 밑으로 엿보이는 약간 헝클어진 금발, 반쯤 감겨진 초롱초롱한 눈과 속눈썹, 그 밑의 윤기 흐르는 볼을 지녔다고 그는 묘사하고 있다.그러나 그가 처한 환경은 초라하고 어머니는 교양이 없다. 그녀 또한 요조숙녀는 아니었던 것이다. 짝사랑하는 남자들에 둘러싸여 그걸 즐기며 유희하는 그녀지만 나라는 인물은 그녀에게 미친 듯 빨려든다.

변덕과 고집을 지닌 그녀를 사랑했다.

늘 그녀 주변을 배회하는 나. 그녀의 빌로드 같은 눈빛에 취해 일상을 살지 못한다.그녀가 다가오는 느낌은 미풍같으면서도 아닌, 떨림 같으면서도 아닌, 그러니까 바로 숨결같은 움직임으로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반전이 숨어 있을 줄이야.

아버지도 또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의 고뇌에 빠진 그에게 아버지는 그랬다.

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지 남에게 넘겨 줘서는 안된다. 그리고 자가가 자신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고. 여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다고.

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 그는 첫사랑을 더욱 몰입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소유화하기 위한.

그런데 아버지의 여자였다니.

 

번뇌와 고통에 횝싸인 한달을 그는 살았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어떤 미지의 그 무엇과 비교하면 아주 조그마한 아이들 장난 같을 것이라는. 그 무엇이란, 마치 인간이 어둠 속에서 분간해 내려고 애쓰는, 미지의 아름다우면서도 무시무시한 얼굴처럼 내 마음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그리 거청한 무엇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험해 보지 아니함으로 지속되는 평온보다는 훨씬 가치를 지닌 감정의 소산일 것이다.

슬픔과 상처를 주지만 인간을 성장시키는 힘이다.

때로는 삶을 지탱하는 근원이 되기도 하는.

 

과거의 사랑은 주로 비극이다.

깨어진 형태임이 분명할 터이니. 그러나 매끄러운 시간만을 살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할 것이더냐?

 

편한 읽기다. 기표가 전하는 의미가 다의적이지 않아서 편하다. 작가가 끄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읽기. 한가닥으로 늘어선 사건의 나열이다. 눈에 보이는 줄거리가 있다. 억지가 없다. 적당한 수사가 있다. 다소 빈약한 느낌이 드는 것은 직유가 주를 이루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재미와 감동을 생각해 본다. 재미는 있었지만 감동은 약하다.

나이 탓이려나? 어쩌면 하나의 기표에서 다의적인 기의를 얻어내는 읽기에 어느 정도 깃들여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느해인가 포크너의 소설들을 읽고 나서 도저한 읽기였노라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오래도록 여운이 감돌았고 왜, 라는 의문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런 여운이 딸려오지 않는 탓인지 불현듯 포크너가 스치누나.

 

이제는 챈들러의 소설이다.

기나긴 이별,  한달이 넘었다. 내 손길을 기다린 지가.

 

그  후, 이제는 쓰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 나는 나를 용서하고 다시 데리고 살 수 있을지니. 쩝1

출처 : 3년 동안의 고독
글쓴이 : 유리알 유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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