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스크랩] 우리학교 미루나무

이바구아지매 2006. 12. 15. 16:30

계속되는 가뭄으로

벌고 벗고 있던 집 앞의 단풍나무가

지난번 내린 단비로 연한 연두색의 옷을

입었습니다.


해마다 단풍나무 싹이 나올 때 면

내 고향 함백 생각에 마음이 아립니다.


오공이 모교 함백 중, 고는

왼쪽으론 함백선 열차가 나무를 스치며 지나가고

오른쪽으론 깜장 내에 시커먼 탄 물이 흐르며

그 옆으로 태백선 선로가 지나가는

폭이 채 삼백 메타도 안 되는 좁은 골짜기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오공이의 학교에는 울타리가 없이

선배님들이 심어놓은 미루나무가

운동장 울타리 대신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새싹이 파랗게 되기 전,

미루나무의 아주 연한,

노오란 색에 가까운 연두색 이파리가

오공이에게 손짓을 합니다.


이따금 약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연한,

아주 연한 연두색의 작은 손들이

어린 오공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일찍 일어나 소여물 끊여 주고,

학교 가서 교납금 독촉 받으며,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통 몇 대 맞고


걸상에 앉아 슬픈 눈으로 창밖을 보면 

노오란 연두색 손사래가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에 끄덕 끄덕 졸다 보면

함백선 완행열차가 지나갑니다.


‘저 기차만 타면 청량리로 갈 수 있는데.......

저 기차만 타면 서울로 갈 수 있는데........’


운동장 돌 고르기 작업을 하다보면

태백선 완행열차가 지나갑니다.


‘ 저 기차만 타면 청량리 갈 수 있는데........

저 기차만 타면 이 지긋지긋한 탄광촌을 벗어 날 수 있는데......’


미루나무 연한 이파리가 손짓하며 마음을 흔들 때,

아침에 학교 가면 빈자리가 생기고,

어떤 애들은 영등포 구로공단으로,

어떤 애들은 마산 한일합섬으로,

좀 더 간이 큰 친구는 부산 고무신 공장으로.......


시오리길 산을 올라 절골 집에 와서

소꼴(소 먹이는 풀) 한 짐 베어와

소 여물 끓여주고 ,소똥치고

감자 삶아 칼국수로 저녁 때우고


모깃불 피워놓고 마당 멍석에 누워 

반짝이는 별을 보며 다짐합니다.


내일 새벽엔 청량리 행 기차를 꼭 타고 말거야......

이제 다시는 출석부로 머리 안 맞을 거야.....


아침이면 또 다시 소여물 끊이고,

학교 가서  교납금 독촉 받고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통 몇 대 맞고

슬픈 눈으로,

운동장 미루나무를 바라봅니다.


일주일쯤 지나면 도망갔던 친구들이

부모님께 붙잡혀 되돌아오고,

속절없는 미루나무는

짙푸르러져 갔습니다.


오공이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시절은

노오란 미루나무의 손짓 속에 

청량리를 동경하며 보냈습니다.


졸업반 때 동경하던 청량리로 올라가

여기저기 떠돌이 객지 생활에

30년이 훌쩍 지나 생각해보면

그래도 그때가 좋았습니다.


학교 옆으로 흐르던

깜장 냇가 새카만 탄 물이 그립습니다.

공부시간에 돌 고르기 하고,

비만 오면 질척거려 발이 빠지던

그때 그 운동장이 그립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한 연두색으로

마음 설레게 하던

그때 그 미루나무가 그립습니다.


오공이의 유년시절을 보냈던 절골

그곳이나 이곳이나 

지금도 똑같은 별이 빛나겠지만

하늘 한번 쳐다 볼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도 연한 연두색 물결이 일고 있을

내 고향 함백

카지노 덕택으로 길 뻥뻥 뚫려

서너 시간이면 다녀오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다녀올 여유가 없습니다.

스스로 가두고 있습니다.


생활엔 여유가 생겼을지 모르지만

가슴은 더욱더 목말라합니다.

가슴은 더욱더 숨이 차 오릅니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숨 한번 크게 쉬어 보렵니다.


내 사랑 함백이여

내 고향 함백이여.

출처 : 믿음과 사랑을...
글쓴이 : 小鐘 오공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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