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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다를 밝히는 불빛... 등대

이바구아지매 2007. 1. 8. 12:05
바다를 밝히는 불빛...등대
[근대문화유산] 장승포·서이말 등대 1

 

전갑생 jkh2000kr@hanmail.net

 

지난 해 경남도는 경남의 21개 시·군을 대상으로 근대문화유산을 찾아 책으로 엮었다. 그 중에서 거제지역의 중요한 건축물 또는 유적을 찾아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바다 아득타 물결소리만
바람결 아득타 기럭소리만
머나먼 섬가엔 등대만 외로
별인 듯 빗나네 반작어리네
꺼젓다 또반짝 등대실 불빗
가엽다 왜그리 눈물 한숨만
오실님 바라는 내맘 이런가!
가엽슨 내넉은 아하 저 등대!
[등대], (玄極, {신인간}, 1930. 1.)

등대는 낭만과 추억이 스며들어 있는 친숙한 장소로 여기고 있다. 주로 시나 수필에 주요 주제로 등장하곤 한다. 망망대해를 혼자 외로이 불을 밝히고 있는 등대로 시작하는 수많은 글들에 등장하는 등대.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등대가 세워졌는지, 또 처음으로 거제에 세워진 등대는 어느 곳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 해방이후 장승포 방파제와 등대 모습.

등대, 전쟁시 적의 공격목표물로
우리나라에 등대가 처음으로 도입된 시기는 20세기 초엽이다. 등대는 단순하게 불빛만 비추는 곳이 아니라 최초로 무선전신지국을 설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정세의 동향을 감지하고 보고하는 중요한 목적까지 수행했다. 무선국의 존재는 등대지기가 최소한 무선기술을 습득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인데, 당시에 무선사는 최고의 첨단기술자였다. 그러니 전쟁이 벌어지면 적의 함대나 항공기가 등대를 우선 공격목표로 삼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일제시기의 모든 등대장들은 일본인들로 채워졌다. 비밀유지를 위해서였으며, 한국인들은 일용직으로만 일할 뿐이었다. 광복 당시에 한국인으로서 정식 등대원으로 잔존한 사람은 고작 4명에 불과했다. 지방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등대장도 초대받아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 사회적 위상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서이말 등대.

거제의 최초의 등대, 장승포 등대
우리가 살고 있는 거제에 처음으로 설치된 등대는 장승포방파제에 설치되었다. 지금으로부터 68년 전인 1936년 10월 15일 조선총독부(고시 제564호)에 허가를 받아 20일 첫 불을 밝혔다.
 
장승포등대는 장승포 동쪽 방파제(북위 34°51′33″, 동경 128°43′53″)와 서쪽방파제(34°51′33″, 128°43′50″)에다 설치하였다. 당시 구조는 홍철(紅鐵)과 백철(白鐵)로 이루어졌으며, 전기를 이용하여 적색과 녹색불 빛을 냈으며, 등질은 동광등(動光燈)이었다. 또 광달거리는 10.5마일, 촉광수는 250과 400 정도였으며, 등대의 높이는 기단부에서 7.90미터이고 평균수면상 9.40미터였다.
이 등대는 경남도 소관으로 간수(등대지기)를 항상 배치하여 관리하도록 하였으나, 지금은 무인등대로 바뀌었다. 

   
▲ 1920년대 장승포항.

거제의 두 번째 등대인 서이말(鼠耳末) 등대는 일운면 지세포리 산 48-2 (북위 34°47.0′, 동경 128°44.4′)에 있으며, 1943년 12월 31일 조선총독부(고시 1517호)에 허가를 받아 1944년 1월 4일 첫 불을 밝혔다. 당시 등대의 구조는 백색 4각형 목조로 건설되었으며, 높이 8미터10, 평균수면과 109미10이었다. 등급은 무등(無等) 백광(매5초에 1회 취명), 촉광수 100, 광달거리 11마일이었다. 현재 서이말 등대는 광파표지는 기종 120V-500W, 등질은 섬백광 20초 1섬광, 광달거리는 지리적26마일, 광학적32마일, 명목적 20마일이고, 음파표지는 기종 공기압축기(에어싸이렌), 취명주기는 매60초에 2회 취명 (취명 4초,정명 5초, 취명 4초,정명 47초), 음달거리는 6마일이다. 

 

2004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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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외도 거제도 길라잡이
글쓴이 : captai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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