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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줌 누는 여자

이바구아지매 2007. 1. 25. 20:41

 

 한 여자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내 영혼을 흔들어 왔다. 아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며 확신적으로 그랬다기보다는 그랬던 것 같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던 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오래 전이었다고만 말해야 한다. 머리가 파랗게 빛을 내는 여자, 그러니까 머리 깎은 비구니......

 다소 요상하고 야릇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언제나 땅바닥에 쪼그리고앉아 오줌을 누는 그림으로 내게 다가온다. 이것은 내가 공상으로 꾸며낸 그림은 아니다.

 사실로 그녀는 땅을 좋아하다. 땅의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그녀는 경내에 화장실이 수세식 푸세식 해서 세 곳이나 있지만 거의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볼 일이 있을 때 그녀는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어도 이용하지 않고 밖으로 나온다.

 봄날에는 파랗게 자라는 상치나 쑥갓 혹은 아욱 밭에서, 여름날에는 수박밭이나 메밀밭에서, 가을날에는,무우나 배추 혹은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숲속에서 그리고 겨울에는 벌판 같은 황량한 곳 아무 데나 쪼그리고앉아 오줌을 눈다.

 그런 그녀에 대해 사람들은 으레 그러려니 할 뿐 아무 시비도 하지 않는다. 마치 그녀는 그렇게 살도록 약속되어진 것처럼, 모두가 그렇게 동의했거나 혹은 통보를 받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무심히 바라보고 이내 자신들의 할 일을 한다.

 

 오래 전에 한 스님이 참선을 이유로 굴참나무 아래 파놓은 토굴이 있었다. 그 스님이 떠난 뒤로 그 토굴은 예비군초소처럼 방치되었다. 방치된 이 토굴에 한 사내가 한 보따리의 책을 들고 와서 자리를 잡았다. 식사는 하루에 두 번 본사로 올라가서 스님들과 함께 해결했다. 어느 하루 이 사내가 오줌 누는 비구니를 발견했는데 그날부터 그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는 매일처럼 비구니가 이번에는 어디서 오줌을 눌까, 생각하며 여우처럼 사방을 누비고 다녔다. 

 

 어느 하루 사내는 비구니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사내에게 아는 체를 했다.

 

 "아, 고시공부를 하신다는 바로 그 분이시군요?"
 "저를 아시던가요?"
 "남원암 아래 굴참나무 밑에, 거기 거하시지 않던가요."
 "아, 아시는군요."
 "불쌍한 중생을 관찰하는 일은 불자의 분본이지요."
 "아, 불쌍한, 그러니까 제가, 불쌍하다는 말씀인가요?"
 "곡해는 마십시오. 소승도 결국은 불쌍한 중생일 뿐이니."
 "아, 네. 그러데 스님께서는, 음, 대사를 이렇게 항상 밖에서만 치르시나 봅니다."
 "더러 목도하곤 하셨던가요?"
 "아, 네. 의도는 없었습니다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보셨다니 문득 부끄러워지는군요. 경내의 해우소는 소승에게 맞지를 않는 것 같아서 그런 것일 뿐입니다."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있은 뒤 여섯 달쯤 뒤에 비구니는 머리를 길렀다. 사내는 고시공부를 포기하고 비구니와 살림을 차렸다. 비구니는 사내를 설득해서 사찰로 들어가는 입구에 산중여숙이란 이름의 여관을 열었다. 말이 좋아 여관이지 빈집 하나를 사서 대충 수리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삼 년 뒤에 그녀는 딸을 낳았다. 사내는 갓 태어난 딸아이를 골똘히 들여다보았다. 하루 종일, 그리고 다음 날도, 사내는 갓난아이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그는 한 통의 짤막한 편지를 남기고 그녀를 떠났다.


 <이것이 이른바 행복이란 것이라면, 내게는 아직 이른 것 같소. 이런 행복은 너무 낯설고,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다소의 고독이라 여겨지는데, 그래서 당신을 이제 그만 떠나기로 했으니 그리 알고 다가오는 일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바래요.>

 그렇게 떠난 사내가 다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삼십여 년 뒤였다. 삼십 년 동안 그는 불가에 입문해서 수도를 하고, 제법 명성이 자자한 스님으로 전국을 돌다가 종단의 결정으로 감찰부장의 자리에까지 올라 있었다.

 그가 왔을 때 산중여숙은 폐허가 되어 있었고, 한때 비구니였던 그녀는 그 뒤로 여러 남자를 거치다가 죽었는데 그때 낳은 딸이 결혼을 해서 가끔 찾아오고 있었다.

 감찰부장은 딸을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했고, 딸도 역시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그녀도 엄마처럼 흙 위에 쪼그리고앉아 오줌 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오줌을 매개로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대화를 하게 되고, 아련한 어떤 추억 같은 것들을 되집어보게 된다.

 

 

 이런 이야기, 들을 때는 무심하게 들었지만, 새길수록 충격을 주는 이런 이야기. 이 계절에, 이런 이야기가 자꾸 생각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모르겠다. 뭔가 새로운 징후 같기는 한데........

 

 

 

 

출처 : 산지기의 웰빙터치
글쓴이 : 나무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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