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스크랩] 2006 독일 월드컵의 소용돌이 속에서... 10. 뮌헨 님펜부르크 궁-하나.

이바구아지매 2006. 7. 3. 13:00

2006 독일 월드컵의 소용돌이 속에서... 10. 뮌헨  님펜부르크 궁전-하나.

 

님펜부르크궁전(Schloss Nymphenburg)

 

2006년 6월의 뮌헨의 날씨는 1988년의 6월의 뮌헨과 같이 화창한 날씨였다.

 

파란 뮌헨의 하늘 아래서 찾아간 순백색의 님펜부르크궁전. 

주홍빛 지붕.

그리고 궁전 앞 연못의 푸른 물빛.

거기에 떠다니는 하얀 백조.

후원 정원의 초록빛 잔디밭과 숲,

그리고 푸른 연못위에서 뿜어져 올라가는 분수의 하얀 포말.

 

이런 모든 것의 어울림이 이 바로크식 궁전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것 같았다.

 

멀리서도 일반 디카로서는 한 앵글에 잡을 수 없을 만큼 큰 바로크식의 궁전.

하는 수 없이 부분 부분으로 나누어 보여드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

그러나 부분으로 나누었다고 해서 이 궁전의 아름다움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 바로크 궁전중 최대규모의 궁전중의 하나이자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건축한

루트비히 2세의 출생지이기도 한 이 궁전을 구석구석 둘러 보자.

 

* 님펜부르크궁전 앞의 호수(Schloß-See)옆에서 궁을 바라본 풍경.

 

우선 객관적으로 쓰여진 자료에서 이 궁에 대한 설명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

(다음백과사전에서 인용)

 

뮌헨 외곽에 있는 궁전.

전에는 바이에른을 다스렸던 비텔스바흐가(家)의 여름궁전으로 쓰였다. 1664년 당시의 선제후였던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Ⅱ Emanuel)가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짓기 시작하여 막시밀리안 3세(Maximilian Ⅲ Joseph:1745~77 재위)가 통치하면서 확장하고 별관을 세웠다. 1701년 르 노트르의 제자로서 루이 14세를 위해 베르사유 궁전 정원을 설계했던 카르보네가 지금도 유명한 이곳 정원들을 설계했다. 정원 군데군데에 파고덴부르크(1716~19)·바덴부르크(1718~21)·아말리엔부르크(1734~39) 등 후기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유명한 정자(亭子)가 있고 프랑수아 쿠빌리에가 꾸민 정자 내부는 로코코 양식의 걸작으로 꼽힌다.

-----------------------------------------------------

궁전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 이해서는 평면도를 일단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궁전 전체의 평면도와 1760년대에 그려진 그림 한 장을 올려 놓는다.

위 평면도의 오른쪽이 동쪽, 뮌헨시가지는 이 궁의 동남쪽으로 펼쳐져 있다.

평면도에 빨간 색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궁전 건물이니 기본적으로 동향건물인 셈이다.

 

 

궁전의 앞은 호수가 2단으로 조성이 되어 있다.

사실은 호수라고 하기에는 작은 규모지만 명칭을 Schlosssee(궁전호수)라고 붙여 놓았다.

호수는 뮌헨을 흐르는 다뉴브의 지류인 이자르(Isar)강과 운하로 연결이 되어 있다.

옛날의 궁전을 그려 놓은 그림들을 보니 이 호수까지 제법 큰 배가 드나들었나 보다.

 

* 아래 호수와 운하.

 

* 궁을 바라보며 늘어선 가로수 아래에서...

 

주차를 하고 궁의 본관을 향하며 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 흰색 궁전 건물, 하늘 빛을 담은 푸른 호수, 분수에서 내어 품는 흰색 포말,

파란 연목에 떠 있는 흰색의 백조.

연속으로 교차하는 푸른 색과 흰색의 교차, 그리고 대비.

그러고 보니 여기에서 태어나서 자란 루트비히 2세가 후일에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건축시키면서 왜 성의 이름을 백조의 성으로, 그리고 내부의 벽화, 장식을 모두

백조와 연관된 모티브를 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노이슈반슈타인에 대해서는 나의 블로그 기사중 여행- '노이슈반슈타인 삐딱여행기'에

10회에 걸쳐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참조하시라.)

 

 

 

 

 

 

 

 

 

(궁전 가운데 본관 건물 앞 분수와...)

 

 

 

 

* 궁전 본관의 북쪽 건물. 안내책자에는 인류, 자연박물관으로 소개되어 있다.

 

* 본관을 사이에 두고 북쪽 건물과 대칭을 이루고 있는 남쪽 건물

 

  마차박물관(1층), 자기박물관(2층)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상세한 사진 자료를

올리기로 하고......

 

* 본관 건물을 올려다 보며...

 

* 본관 2층 난간에서...

 

 

궁전의 본관, 그 중에서 메인 홀은 Steinernersaal(Stone Hall : 돌의 방 이라는 뜻)이다.

이 방의 그림장식은 1756년 요한 밥티스트 찌머만 (Johann Baptist Zimmermann)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그는 형인 도미니쿠스찌머만과 함께 로만틱가도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비스키르헤(이 역시 내 블로그-삐딱여행기의 11번 글에 올려져 있다)

의 내부 장식을 완성시킨  바로 그 사람이다. 독일 로코코 미술의 거장이 이 방을 꾸민 것이니

그 화려함은 달리 설명할 필요 없이 제대로 나온 사진 몇장으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 여기까지가 Steinernersaal의 사진이다.

 

 

 

 

여기서부터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내가 알기로는 동양의 임금들은 공식적으로 후궁을 들이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그에 따라 왕후와 후궁, 후궁과 후궁들간의 사랑싸움도 빈번했던 것 같다.

후궁들 간에도 임금의 성은을 입고 그렇지 못한 데 따라 벼슬의 높낮이도

공식적으로 부여되곤 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그런 공식적인 관계보다는 사교라는 형태를 띄면서

남녀간의 연애로 발전해 나간 것이라고 알고 있다.

 

미인들의 방의 갤러리(Schönheitsgalerie)는 이런 의미에서 일응 재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페이소스에 잠기게도 만든다.

 

루트비히 2세가 결혼도 하지 못한 노총각의 몸으로 의문의 죽음을 한 것과는 달리

그의 아버지인 루트비히 1세는 여성 편력이 꽤나 심했던 모양이다.

이 방에는 모드 40명의 여성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세어보지는 않았다-모두가

루트비히 1세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던 여인들이라고 한다.

신분의 고하도 각양각색인 이 여인들의 사진과 같은 초상화를 모두 본 소감은

하나같이 미인이더라는 점이다.

 

 

 

 

 

 

 

아래의 방은 루트비히 2세가 태어난 방이다.

 

 

 

실내구경을 마치고 궁전 후원을 2층 난간에서 내려다 보는 것으로 후원과 각종 정자들의

구경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나그네의 시간은 항상 한정이 있고 바쁘되 모자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자란 듯 한 것이 꽉 찬 것 보다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뮌헨에 다음에 다시 올 것이라는 기대하에 사진을 찍느라 일행에서 뒤쳐진  발걸음을

독촉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일들 때문에 혼자 하는 여행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러나 출장 중의 짜투리 시간 중에 이만큼이라도 구경하는 것이 어딘가?

 

다음 회엔 마차박물관, 자기박물관의 사진을 위주로 뮌헨구경을 마칠 계획이다.

 

계속됩니다...

출처 : 옛정자 그늘...
글쓴이 : 파빌리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