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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부(新婦) / 서정주

이바구아지매 2007. 2. 2. 21:15

        신부 /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거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자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거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출처 : 살아가는 이야기
    글쓴이 : 가족대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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