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이렇게 붙이기는 했지만 그 뜻은 나도 잘 모른다. 어쩐지 크리스탈이라고,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하다 보면 뭐가 나오든 나올 거라는 예감은 있다.
그래, 깨졌더랬다. 내가, 어제, 날씨도 겁나게 추운 날, 겨울이라면 그런 온도 뭐 춥다고 할 것도 없을 텐데, 명색이 봄날이고 보니, 얼음도 얼지 않았는데도 무쟈게 추운 듯이 여겨졌던 거다. 이게 뭐냐. 소리는 마음으로 들어야 과장이 없더라고, 봄날이든 겨울날이든 잃지 않은 평정심으로 대해야 춥지도 덥지도 않을 텐데, 애저녁에 도사되기는 글른 몸이고 보니 겁나게도, 무쟈게도 추웠던 거다.
그런데, 그런 추운 날, 자전거를 끌고 굳이 나가는, 나갔던 나는 또 뭐냐. 그것도 얌전하게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이 거룩한 연세에 무슨 객기 부릴 일 있다고 앉았다가 섰다가 별별 재주까지 부려가며, 떨어지는 동백꽃을 향해 불지도 못하는 휘파람까지 홱홱 날려가며, 오일장으로 명태나 고등어나 뭐 그딴 거 서너 마리 사겠노라고 달렸더랬다. 달리다가 달팍 넘어졌더랬다.
아아, 넘어져도 어쩌면 그렇게 달팍 엎어질 수가 있을거나. 넙치나 병어나 가오리나 광어나 뭐 그딴 물고기처럼 납작하게, 고랑창으로 완전히 달팍 엎어졌더랬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그 꼬라지는, 오오, 어느 부지런한 사진기자라도 있어 그 장면을 찍었더라면, 아마도 플리처감일 텐데, 애석하여라.
어쨌거나 저쨌거나, 문제는 콘크리다. 콘크리트로 포장한 도로가 범인이었다. 예전에 길들은, 콘크리트로 포장하기 이전의 길들은 길과 고랑창과의 관계가 연인처럼 애인처럼 딱 붙어 있어서, 그러니까 둥그스름해서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멈출 수가 있었더랬다. 요컨대 자전거를 타고 자발없이 달리다가 어어, 어어, 하면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그런대로 아슬아슬하게, 고랑창으로 굴러 떨어지기 직전에 멈추거나 최소한 굴러떨어진다 해도 그렇게까지 완전히 푹 빠져버리지는 않았더랬다.
그런데 콘크리트로 포장을 해버리면서, 고랑창과 도로의 관계는 직각이 되어 버리고, 요컨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가 되어버리면서, 어어, 어어, 아무리 어어, 해봐야 소용이 없는 거다. 그대로 그냥 쏙 들어가버리는 거다. 그리하여 이놈 나무꾼, 자전거채로 그냥 꼬나박히면서 자전거는 뒤로 물러서고, 내 몸은 앞으로 던져지면서 달팍 엎어졌는데, 얼굴은 죽처럼 흐물한 흙 속으로 처 박히고, 손은 뭐를 어떻게 했는지 손톱이 찢어지고, 손목은 가죽이 좌악 기스가 나고, 관절은 어긋나고, 무르팍은 쑤시고, 뭐 그렇게 되어 버렸는데, 그런데, 이 무신 깨달음의 장난인지, 그렇게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나, 아하, 소리가 절로 입에서 나온다.
토끼는 왜 자기 새끼를 죽이는가.
지난 한 달여 동안 이 문제로 골머리깨나 앓았더랬는데, 느닷없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그 추운 봄날에, 답이 나와버린 거다. 이것이야말로 자다가 봉창 긁는 소리가 되겠는데, 어허, 그래도 뭐 어쩌랴.
토끼가 새끼를 아홉이나 낳았더랬다. 그거 아주 잘 키웠는데, 젖도 떨어지고, 해서 마당의 토끼장으로 옮겼는데, 뒷집 교회당의 위대한 고양이가 다 먹어버렸다. 그런데, 그 무렵에 어미가 또 새끼를 낳았다. 젖을 뗀 토끼새끼를 고양이가 먹어치운 다음 날, 또다시 새끼를 낳은 어미토끼가, 아직 눈도 뜨지 않은, 제 새끼를 모두 죽여버린 거다.
이게 대체 어인 사건인가.
이 문제가 내 안에서 한 달여 동안 꿈틀거렸다.
무엇인가.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말이 있다. 토끼가 임신 중일 때는 칼을 숫돌에 갈지 마라.
왜?
칼 가는 소리는 사람이 들어도 섬뜩하다. 토끼가 들을 때 그 소리는 천적의 위협 소리로 느껴진다. 그래서 유산을 하고 만다.
다시 돌아가서, 뒷집 교회당의 위대한 고양이 그 개같은 것이 나의 이쁜 어린 토끼를 먹던 날 저녁에, 나는 잠이나 처자느라고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요란했을 거다. 참고로 말하자면, 토끼는 거의 소리를 내지 않지만 위험을 느낄 때 찌이찍 소리를 낸다. 영낙없는 쥐소리다. 그러니까 고양이의 습격을 받던 순간에, 어린 토끼들은 밤새 그렇게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냈을 것이고, 그 옆에 다른 방에서 갓 낳은 새끼를 품고 있던 어미 토끼가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미 토끼는, 어쩌면 눈물을 머금고, 갓 낳은 새끼를 모두 살해해 버린다. 왜? 어떻게?
기억한다. 또렷이 기억한다. 그날 나는, 토끼 먹이를 주려고 갔다가, 이틀 전에 새끼를 낳은 토끼가 꼼짝도 안 하고 방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 나는 애기들 젖 주느라고 저 밥먹을 생각이 없는 거라고 여겼더랬다.
그리고 한두 시간 뒤에 다시 갔는데, 어미 토끼는 여전히 그대로다. 여전히 그대로 방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내가 보기에는 아기들 젖 주는 모양새로.
그리고 또 한두 시간 뒤에 다시 가보고, 그때서야 나는 이거 이상하다, 생각하고 어미토끼를 밖으로 끌어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아 참, 어미가 새끼를 품고 있었으면 당연히 온기가 풍겨야 할 그 자리에서 썰렁하게 올라오는 냉기, 그리고 축 늘어진, 손으로 만지면 어름처럼 차가운 새끼들의 시체가 있는 거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놈을 들었다가 놓고 저놈을 들었다가 놓고, 하는 어느 순간 미미하게 다리를 꼼지락거리는 한 마리가 있어서, 나는 그 한 마리를 내 겨드랑이 넣고, 그 차디찬 것을, 겨드랑이에 넣었다가, 쫌 머시기한 얘기 같지만 겨드랑이보다는 사타구니가 더 따뜻하겠다 싶어 거기에 넣었다가, 그렇게 저렇게 등등 오만 가지 방식으로 얼음 같은 그러나 아직 완전히는 얼어버리지 않은 새끼 토끼 한 마리를 회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살리기는 살렸는데, 밤새 젖도 안 주고 깔고 앉아서 죽이고나 있었던 어미 토끼가 새삼스레 젖을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면 뭘 먹여야 한단 말이냐. 나는 젖이 나오는 인간도 아니고, 우유 같은 것이 아기토끼에 맞으려나 어쩌려나, 궁리궁리 하다가 꿀을 물에 풀에 몇 방울 입에 넣어주고, 한나절쯤 뒤에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어미에게 데려다 주었는데, 그리고 그 뒤에 누가 왔던가 어쨌던가, 깜빡 잊고 있다가 두어 시간이 지난 뒤에 가서 보니, 아이고 이런 비러나머글, 간신히 살아남은 그 한 마리마저도, 어미는 가차없이 죽여놓고 있었다.
이게 뭐냐. 어이 이런 잔혹한 심사가 발동되는 거냐.
바로 이 문제, 이것이 지난 한 달여 동안 나를 괴롭혔는데, 이제야 풀린 거다.
그 간단한 대답, 토끼는, 천적에게 나의 이쁜 애기를 밥으로 내주느니 내가 죽인다, 뭐 이런 것이었던 것을, 나는 자전거채로 달팍 엎어진 뒤에야 알아차린 거다.
그런데 나의 넘어짐과 그것의 연관은?
그것을 내가 알면 어이 이런 끌적거림을 할까.
여하튼 콘크리는, 재미 없다. 그런 뜻에서 이명박씨의 콘크리트 부활 프로젝트는 내 개인적으로 영 싹수없는 짓거리다. 이거는 또 뭔 봉창? 하여간 그렇다는 거다. 내 생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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