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나홀로 호황' 거제도의 힘은…
거제도는 ‘크게(巨) 구하는(濟)’ 섬이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을 격퇴하는 요충지였고, 한국전쟁 때는 3만 전쟁포로와 15만 피란민이 이곳에서 새 삶을 찾았다. 2007년 거제는 한국 경제의 구원(救援) 모델로 주목 받고 있다.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는 속에서, 거제만은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며 이미 소득 3만달러 시대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희망 특구(特區)’ 거제, 그 현장을 가보았다.
토요일 오후 6시 거제시 신현읍의 4차로 도로는 외식하러 나선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섬마을 읍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신호등 색깔이 몇 번이 바뀌도록 차들이 옴짝달싹 못하자 택시기사가 불평을 늘어놓는다.
“인구 20만명에 차가 6만대라니 말이 됩니까. 거제도에는 돈 버는 사람치고 차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경차나 소형차는 10대 중 2~3대꼴. 중형 승용차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가 대세다.
소득 3만달러시대에 진입한 거제도는 불황을 모른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서 허덕이는 동안에도 거제에는 10년째 호황이 계속되고 있다. 2001년 이후 4년 간 거제의 연평균 지역총생산(GRDP) 성장률은 9.1%. 한국 경제의 지난 4년 성장률(4.25%)보다 2배 이상 높다.
거제도의 힘은 2개의 조선(造船) 기업.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기업임을 알려주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불황 무풍지대
초장기 호황 덕에 거제에서는 ‘실업’이라는 말을 듣기 힘들다. 지난해 거제의 실업률은 2.3%로 전국 평균 실업률(3.7%)보다 1.4%포인트 낮다. 2000년 이후 계속 자연실업률(3%대·장기적으로 물가 압력을 유발하지 않는 최저 수준 실업률) 이하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고용 못지 않게 소득 증가도 가파르다. 김한겸 거제시장은 “거제지역의 1인당 소득은 2003년 2만달러를 돌파했고, 올해는 3만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전국의 1인당 소득이 올해 중 2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것과 비교하면 거제는 4년 이상 앞서 나가고 있는 셈이다.
기적 같은 거제 경제의 엔진은 고현과 옥포에 자리잡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양대 조선소다. 이들은 매출 기준으로 현대중공업에 이어 세계 2위와 3위를 기록하고 있는 초우량 기업들이다. 전 세계에서 건조되는 배 5척 중 1척(2006년 기준)이 두 조선소에 의해 거제에서 탄생한다.
두 조선소에 대한 거제 경제의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지난해 양대 조선소는 거제 인구의 24%인 4만8000여명(삼성중공업 2만2000여명, 대우조선해양 2만6000여명)을 고용, 1년 간 총 2조5000억원의 임금을 지불했다. 이는 같은 해 거제시 총생산액(약 6조원 추정)의 42%에 이른다.
거제 경제에 대한 주민들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상인 김홍연(58)씨는 “조선소가 들어선 이후 거제에는 이렇다 할 큰 불황이 닥친 적이 없다”며 “외지 출신 주민들 간에는 ‘불황 무풍지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성과는 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이뤄낸 것이다. 삼성중공업 전태흥 상무는 “기업은 지역사회라는 토양에 뿌리박고 있는 나무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거제와 두 조선기업은 서로 윈·윈(win·win)하며 기업과 지역사회의 이상적인 상생(相生)모델을 실현해냈다. 거제시는 두 조선소에 인력과 기업하기 편한 환경을 주고, 삼성·대우 조선소는 일자리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을 제공하면서 선(善)순환의 구조를 만들었다.
대우조선해양은 17년 연속 무분규를 이어가고 있다. 노사가 대립하면 서로가 손해임을 알기 때문에 웬만한 노사 갈등요인은 대화로 다 해결한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삼성중공업은 전 직원의 40%가 넘는 9000여명이 참여하는 사회 봉사단을 만들어 각종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우해양조선은 1980년대 초부터 거제 최초의 종합병원(옥포대우병원)과 사립학교(거제대학과 옥포초·중·고등학교) 등을 설립해 운영해 왔다. 여기에 거제시는 시청 내에 ‘조선과’를 설치, 조선 기업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3만달러의 힘
지금도 거제에는 매달 300여개의 새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대부분 조선소와 조선 협력업체들의 신규 고용 수요다. 거제 내에서는 인력 수요를 충족할 수 없으므로 끊임없이 외지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 결과 매달 400~500여명이 새로 주민등록 전입을 해온다고 거제시청 신삼남 계장은 전했다.
거제의 경제력은 창원·부산과 함께 경상남도 경제를 떠받드는 큰 축이 됐다. 거제 조선소 협력업체들은 거제의 부지난을 피해 인근 통영과 고성까지 진출, 거대한 ‘배후 공단’을 이뤘다. 3만달러 거제의 실력은 소비 패턴에서 잘 나타난다. 할인점 ‘홈플러스’ 거제점은 전국 300여개 대형 할인점 중 유일하게 소주·양주보다 와인이 더 많이 팔리는 매장이다. 주류 매출 중 와인 비중이 전국 평균(10%)을 훌쩍 뛰어넘는 25~40%에 이른다.
홈플러스 거제점의 어동일 부점장은 “이는 고소득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웰빙형 소비 경향”이라며 “지난 추석에는 1병당 8만원짜리 고급 와인이 불티나게 팔려나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거제=정철환 기자 ploma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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