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스크랩] [여행] 통영운하와 해저터널

이바구아지매 2007. 4. 25. 12:11
역사를 모르면 정말 볼 것 없는 곳이지!
[아름다운 항구도시, 통영 여행기2] 통영운하와 해저터널
텍스트만보기    방상철(19in) 기자   
▲ 통영시 당동에서 미수동까지 연결된 해저터널, 이곳은 1931년에 착공, 1932년에 준공, 그리고 1996년에 1차 보수했다고 합니다.
ⓒ 방상철
10여 년 전 아내와 처음 통영에 왔을 때 해저터널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데, 관광시설로 지어놓은 터널인 줄 알고 바다 속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들어간 기억이 납니다.

입장료가 없을 때 알았어야 했는데, 결국 중간쯤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 나왔죠. 하지만 이곳에 대한 역사를 알고 다시 찾으니 아무것도 모르던 예전 기억이 새삼 부끄러워지더군요.

해저터널은 통영시내와 미륵도를 바다 밑으로 연결한 터널입니다. 그 위가 바로 통영운하이고, 운하를 가로질러 충무교가 놓여 있습니다. 이 중 통영운하와 해저터널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직접 만들진 않았을 거고, 당연히 우리 조상님들이 고생을 했겠죠.

▲ 통영시 당동 해저터널 입구에 ‘윤이상 거리’가 있습니다.
ⓒ 방상철
해안도로를 따라 여객선 터미널에서 충무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해저터널 이정표가 큼지막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찾기는 쉬운 반면, 차 세울 만한 장소는 그리 넉넉하지 않습니다. 한참을 빙빙 돌다가 좀 멀리 떨어진 곳에 간신히 차를 세우고 터널 입구를 향해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바로 '윤이상 거리'였습니다.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 그는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았던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양과 서양음악의 조화를 이뤄낸 세계적인 음악가입니다.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추방된 뒤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10여 년 전, 안타깝게도 독일에서 타계하셨습니다. 그런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 통영이었다고 합니다.

'윤이상 거리'를 다 지나 이제 해저터널 입구에 섰습니다. '용문달양'이란 문구가 적혀 있는 터널로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처음엔 아이가 한자를 보고, '해.저.터.널'이라고 또박 또박 읽는 것을 보고 기특해 했는데, 자세히 보니 전혀 다른 글이어서 크게 웃기도 했습니다.

▲ 해저터널 입구, ‘용문달양’(龍門達陽)이란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용문’은 중국고사에 나오는 여울목으로, 잉어가 통과하면 용이 된다는 곳이고, 산양은 터널 반대편에 있는 미륵도의 한 지명입니다.
ⓒ 방상철
터널에 들어가기 전에 왼편에 마련된 안내문을 잠시 보았습니다. 예전엔 이곳을 '판데목'이라고 불렀나 봅니다. 물이 들면 미륵도가 섬이 되고 물이 나가면 육지로 연결되던 목이 바로 이곳이라는군요. 잠깐 안내문에 적힌 내용을 옮겨보겠습니다.

"옛날부터 이곳을 '착량' '굴량' '판데' 혹은 '폰데'라고도 불렸는데, 이 목은 풍수학상 통영의 목구멍에 해당하는 곳이라 틔우면 길하고 막히면 흉하다하여 제208대 홍남주 통제사가 막혔던 목을 틔우고 그 위에 다리를 놓았다.

10여년 후 이 다리가 풍우로 허물어지자 당시 통영의 독지가 김삼주씨가 사비로 다시 나무다리를 놓았다. 1915년경 이 다리마저 태풍으로 허물어지자 다시 김삼주씨가 사재를 털어 이곳에 석교(착량교)를 건설했다. 그 후 1927년 일제는 이 다리를 허물고 판데목 아래 터널을 팠는데, 지금의 해저터널이 그것이다."


▲ 해저터널 위가 바로 통영운하입니다.
ⓒ 방상철
그러니까 일제가 1927년에 통영운하를 만들면서 해저터널을 함께 공사했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를 놓지 않고 왜 어렵게 바다 밑에 길을 만들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여기서 통영운하는 통영반도의 남단과 미륵도 사이의 좁을 수로를 말합니다. 위 안내문에서처럼, 원래는 모래톱으로 육지와 연결된 곳으로 한산대첩 때, 도망치던 왜선들이 이 좁은 목에서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의해 무수히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송장목'이라고도 불렸다는군요.

역사적인 사건들을 떠올리며 해저터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내부는 보기에도 튼튼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사방에 둘러져 있고, 천장에는 조명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지상에서부터 천천히 밑으로 쭉 내려가면서 천천히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터널의 제일 밑쯤에 도착하니 한쪽 벽면에 터널 공사하던 당시 사진과 통영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해저터널 내부
ⓒ 방상철

▲ 터널 중간쯤에 마련된 사진들, 통영 관련 자료와 일제시대 이 터널을 공사하던 모습들이 전시돼있습니다.
ⓒ 방상철
우선 해저터널 공사는 양쪽 물막이 공사, 호안석축 공사, 기초 굴삭공사, 본격적인 바닥 굴착, 기초 콘크리트 타설, 거푸집 설치, 철근 배근, 바닥 콘크리트 타설로 구조물이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공사에 흰옷 차림에, 물론 삽을 들고 있는 모습도 보이긴 합니다만, 거의 맨손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요즘 같은 중장비가 없는 시기에 저런 대단한 공사를 진행했으니 얼마나 고초가 심했겠습니까? 전하는 말로는 공사 중에 다치거나 죽은 경우도 많았다고 하네요.

▲ 바닥콘크리트 타설 공사 모습,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본인 감독관이 아닌가 싶습니다.
ⓒ 방상철
발길을 재촉해 터널을 다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엔 처음 우리가 들어갔던 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구나 출구가 똑같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확인하기 위해서 바닷가로 걸어 나갔습니다.

▲ 처음 들어왔던 곳과 똑 같은 모양의 출입구입니다.
ⓒ 방상철

▲ 저희 가족이 지금, 이 바다 밑을 걸어서 건너왔습니다.
ⓒ 방상철
우뚝 솟은 굴뚝이 보이는 저 곳이 바로 좀 전에 저희가 들어왔던 곳입니다. 약 15분 정도 걸어왔습니다만, 해저터널이 아니라면 걸어서 다시 저 곳까지 갈 엄두가 나질 않는군요. 도보로 제일 빠른 길이 바로 이 터널입니다.

다시 아까와 똑같은 길을 걸어 '윤이상 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길에서 예전 저희 부부처럼 연인으로 보이는 두 쌍의 남녀가, 해저터널에 들어왔다가 중간쯤에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상상했던 풍경이 아니라 실망한 듯합니다. 나중에 그들도 이곳의 역사를 알고 찾는다면 결코 모든 것을 쉽게 보진 않을 겁니다.
출처 : 풀꽃향기 머무는 자리
글쓴이 : 서영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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