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

[스크랩] 내가 바라보는 것이 나를 만들었구나 [해바라기]

이바구아지매 2007. 7. 9. 11:31
내가 바라보는 것이 나를 만들었구나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131] 해바라기
텍스트만보기   김민수(dach) 기자   
ⓒ 김민수
해바라기는 국화과의 식물로 북미원산의 한해살이풀입니다. 우리가 흔히 씨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열매'고, 작은 꽃들이 모여 큰 통꽃을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해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꽃의 방향이 바뀌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꽃이 피고 나면 줄기가 딱딱하게 굳어져서 해를 향하질 못하고 그냥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해바라기(sunflower)는 해를 바라보는 꽃이 아니라 해를 닮은 꽃일 것입니다.

ⓒ 김민수
해바라기의 꽃말은 여러가지인데 '기다림, 그리움'이라는 꽃말이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키 작던 어린 시절 까치발을 들고 잘 익은 해바라기 열매를 쏙쏙 빼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 시절 이제나 저제나 열매 익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노란 해바라기가 둘러쳐진 시골 집, 그런 집이 그립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다림, 그리움'이라는 꽃말이 마음에 와 닿는 것입니다.

ⓒ 김민수
해바라기와 관련된 전설 한 토막은 이렇습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는 두 딸이 있었습니다. 포세이돈은 두 딸에게 절대로 세상에 나가서 놀지 말 것을 명했지요. 그러나 두 딸은 어느 날 밤 몰래 세상에 나가 놀다가 너무 재미있어 동이 터올 때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두 딸은 동이 터올 때 태양의 신 아폴론을 보았고, 둘 다 아폴론을 사랑하게 되었지요.

언니는 아폴론을 독차지할 속셈으로 아버지에게 동생이 세상에 나가서 놀았노라고 고자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폴론은 그 언니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아 외면했고, 결국 아폴론을 그리며 태양만 바라보던 언니는 꽃이 되었더랍니다. 그것이 해바라기지요.

ⓒ 김민수
지난 봄 해바라기 열매 기름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 들은 어머님이 시장에 가서 해바라기 씨앗을 사오셨습니다. 정성껏 싹을 틔워 강원도 물골에 있는 밭 근처에 심었는데 함께 심었던 호박모종이나 고추모종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성장속도는 무척이나 빨랐고 두어 달 되니 그 작은 모종에서 자란 것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큰 키로 자랐습니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꽃은 또 얼마나 큰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꽃으로 자라났습니다.

ⓒ 김민수
뜨거운 여름햇살에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해바라기, 정말 그가 해를 따라 움직이는지 보고 싶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틈나는 대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일 한 곳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꽃이 핀 후에는 줄기가 굳어지면서 해를 따라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 '해바라기'가 주는 의미는 남달랐습니다. 여기에서의 '바라기'는 '바라본다'라는 동사와 관련이 있겠지요. 해를 바라보는 꽃, 그래서 해를 닮은 꽃입니다.

ⓒ 김민수
그 꽃을 가만히 살펴보니 작은 통꽃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큰 꽃에는 대략 2천 개 정도의 작은 꽃이 피어 있다고 합니다.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바깥쪽에서부터 안쪽으로 피어가고 있는 모습은 옹골차 보였습니다. 그 작은 꽃 하나하나가 열매가 되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그 작은 꽃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아는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작은 꽃들 하나하나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그를 그렇게 큰 꽃으로 만들어주었고, 태양을 닮은 꽃으로 만들어주었구나 상상해 보았습니다.

ⓒ 김민수
해바라기에는 많은 곤충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워낙 꽃이 크다보니 그들을 넉넉하게 받아줄 뿐 아니라 살포시 숙이고 있는 꽃의 형상과 커다란 꽃잎이 담장역할을 하면서 바람도 막아주고, 빗방울도 막아줍니다. 작은 꽃들 하나하나 수정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친절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 겸손한 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김민수
우리의 눈으로 무엇을 보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라는 것, 보는 것이 그 사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도 결국에는 바라는 것들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관심 밖에 있는 것들은 아무리 주변에 많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들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까 들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멀리 있었던 것들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주변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관심을 갖자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귀가 열리게 된 것이지요.

ⓒ 김민수
저는 이것은 눈뜸의 기적이요,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는 기적이요, 벙어리의 혀가 풀리는 기적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물론 이 기적들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바라보는 순간에 무의미한 기적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적은 일회성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지요. 종교에서의 구원도 마찬가지구요.

ⓒ 김민수
가끔 거울을 봅니다. 그런데 그 얼굴은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만든 얼굴입니다. 내가 바라보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지요.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의미 있는 것들, 선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볼 것을 그랬습니다.'

이런 후회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얼굴, 또 내일의 얼굴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들이 투영될 테니까요.
이 기사는 개인홈페이지 <달팽이 목사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7-04 15:47
ⓒ 2007 OhmyNews
출처 : 풀꽃향기 머무는 자리
글쓴이 : 서영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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