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음악

[스크랩] 영화 `각설탕`을 보고

이바구아지매 2006. 8. 12. 10:47

 이글은 KRA사보 굽소리에 실린 영화 '각설탕'을 보고 쓴 리뷰입니다. 이 글 이외에 KRA에서 일어나는 일들, 재미난 기사들이 굽소리에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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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잔디밭에 말과 함께 누워 있는 소녀, 그리고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약간의 바람이 분다.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빙긋 웃음 짓게 만드는 풍경.

 

 영화 <각설탕>의 한 장면이다. 영화를 본 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그리고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그림이다.

 

시은과 천둥이의 관계는 뭐라고 한마디로 딱 잘라서 한정지을 수 없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빈자리를 마치 엄마처럼 지켜줬던 ‘장군’이의 자마(子馬)였기에 시은에게 천둥이는 동생이었다. 또 어미를 잃은 천둥이에게 시은은 부모였으며, 영화의 후반에 이르러서는 같이 달리며 교감하는 친구였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각설탕’의 의미는 단순한 설탕덩어리가 아니라 서로를 추억하게 하고,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진심으로 시은에게 동조하고 가슴 저림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시은이 동물을 사랑하고 애정이 넘치는 완벽한 인물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화도 내고, 자신에게 실망도 하고, 또 사랑하는 상대방(아버지와 천둥이)에게 생채기를 내며, 애정에 목말라 하는 정말 평범한 소녀였던 까닭이다.

 

 

 

 

 

과연 사랑한다고 해서 끊임없이 사랑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시은의 이런 마음의 변화가 영화에서는 시의적절하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표현되었다.

 

특히 시은의 상대역인 천둥이는 이런 점을 너무나도 마음에 와 닿게 만들어 주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장면 중 하나는 시은을 먼저 발견한 천둥이가 쫓아가는 신이었다. 삶에 지친 시은이 천둥이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 갈 때, 계속 미친 듯이 따라가던 천둥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동물과의 사랑을 다룬 영화 대부분의 뻔한 스토리는 ‘연결고리가 약한 헌신적 애정과 해피엔딩’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면 대개는 쉽게 잊혀지는 감동밖에 받지 못한다. 하지만 <각설탕>에는 끈끈하고 강한 유대감과 사랑, 그리고 어쩌면 현실적인 애증이 있다.

 

아내를 말 때문에 잃었지만 말에 대한 애증을 버릴 수 없는 아버지, 그리고 딸 시은과 아버지 사이의 묘한 기류도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이렇듯 <각설탕>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살고 있는 내 주위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화가 더욱 생동적이다.

 

 

 

 

 <각설탕>의 경주 장면은 가장 박진감 넘치고 긴장감이 살아 있는 부분이었다. 이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눈물만을 짜내는 밋밋한 영화가 되었을지 모른다. 경주 장면은 경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흥분과 재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특히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기수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계속되는 트레이닝, 그리고 말과의 소통, 그것이 영화 속 시은의 ‘기수로서의 삶’이었다.

 

 약간 아쉬웠던 점은 천둥이와 시은이 사이에 흐르는 교감이 영화 후반부에 가면 이전보다 조금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천둥이를 생각하는 시은의 마음이, 그리고 시은을 위해 달리려는 천둥이의 마음이 영화 속에서 좀더 강하게 표현되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은과 천둥이와 <각설탕>. 슬프고 가슴 찡한 영화였지만, 지금은 소녀와 말의 느긋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아름다운 영화다.

 

                                                                    글 노하정 경주마보건원

출처 : 여기는 경마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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