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순애씨-아줌마는 인생의 막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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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요 순애씨
SBS (수, 목) 오후 09:55~
장소: 실내 포장마차
철수와 영희 닭똥집과 소주를 앞에 두고 서로를 마주보며 앉아 있다. 심란한 표정으로 한 번에 소주를
털어 넣는 영희와 그런 영희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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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안주 좀 먹어가면서 마셔.
영희: 걱정돼?
철수: 너 취하면 대책이 없잖냐. 저번엔 초저녁부터 길가는 초딩한테 뭘 꼬라보냐고
시비를 걸었잖아. 누구한테 술을 배웠는지... 너 같은 개진상도 참 드물 거야 그치?
영희: 지옥에나 가버려!
철수: 야 농담 좀 한 거 가지고 말이 좀 심하다.
영희: 너 말고 오늘 전화한 그 놈 말이야.
철수: 누구한테 전화 왔는데? 혹시 그 유부남한테 또 전화 왔니?
영희: 아내하고 이혼하겠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1년이나 질질 끌었잖아. 결국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용서해달라고 무릎 꿇고 질질 짰잖아. 그래서 헤어져줬잖아. 근데 왜 자꾸 전화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건
나뿐이라는 거야?
철수: 마누라 궁둥이 두들기는 것만으로는 뭔가 허전했나 보지.
영희: 오늘 개진상이 병 깨는 거 한번 볼래?
철수: 농담이야~ 넌 술 들어가면 지나치게 과격해지더라. 일단 그 병부터 좀 내려놔.
그래도 그 작자하고 헤어진 덕분에 또 나하고 만나게 되었잖아.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영희: 좋게? 그 인간하고 헤어진 이후부터 내 인생은 언제나 비참했다구. 길 닦아
놓으니 똥차 지나간다고 기껏 불륜에서 벗어났다고 안도했더니 그 다음에 만난 게 너라니...
철수: 아 아무리 취했어도 너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야?
영희: 큰소리는 취직이나 한 다음에 치셔.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철수: 그래도 넌 그 작자 와이프 보다는 낫잖아.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이 젊은
여자한테 껄떡대는 그 순간에도 가족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한다고 남편 몸보신 시킬 걱정하고 있단 말이야. 말 그대로 죽 쑤어서 개주는
꼴이지...
영희: 뭐야? 그럼 내가 개란 말이야?
철수: 넌 대학물씩이나 먹었다는 아이가 어떻게 비유법도 모르니? 어 텔레비전에서
‘돌아와요 순애씨’ 한다. 그야말로 너를 위한 드라마구나.
영희: 나를 위한 드라마?
철수: 너 저 드라마 본 적 없어? 바람난 남편을 둔 아줌마하고, 그 남편과 바람이
난 스튜어디스하고 육체가 뒤바뀌는 이야기잖아. 저 드라마처럼 지독하게 한국적인 판타지를 재현해 놓은 드라마도 없지.
영희: 저런 이야기 많잖아? 미국 영화 보면 쎄고 쎈게 두 사람 사이에 영혼과 육체가
바뀌는 판타지인데 뭐... 노인과 청년의 몸이 바뀌는 ‘18 어게인’ 이라는 영화도 있었고, 딸하고 영혼이 바뀌는 ‘비밀’이라는 영화도
있었고... 또 빙의하고는 좀 다른 설정이기는 하지만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여자가 되어버리는 ‘스위치’라는 영화도 있었고 또 아이가 한순간에
어른이 되어버리는 ‘빅’이라던가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이라는 영화도 있었잖아? 저런 설정이야 할리우드에서 우려먹을 데로
우려먹은 설정인데 뭐가 한국적인 판타지라는 거야?
철수: 일단 저 드라마가 왜 지독하게 한국적인 판타지인지를 설명하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판타지 물에 대단히 인색하다는 걸 짚고 넘어가야 해. 반지의 전쟁이라던가, 해리포터 같은 외국 판타지 물은 별 거부감 없이
잘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판타지적 요소를 도입하기만 하면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단 말이야. 한마디로 ‘저게 말이
돼?’ 한마디로 얘들이나 보는 장르로 격하시킨단 말이야.
그래도 한국 영화의 경우 소재의 다원화와 맞물려서 꾸준히 시도되는 편이지만 그것이 드라마로 옮겨가면 아예 판타지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찾기가 어려워. 물론 가뭄에 콩 나듯이 한두 편씩 시도가 안 된 건 아닌데 그 결과는 처참할 지경이야.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마 작가 김수현씨 마저도 과거에 먼저 죽은 아내의 영혼이 나타나 가족들을 돌본다는 내용의 판타지 성향의 드라마를 썼다가 시청률 면에서
참패한 적이 있으니 말 다한 거지. 물론 심은하 주연의 M은 나름 선방한 드라마긴 하지만 그 드라마는 판타지물이라기 보다는 납량물이라고 봐야해.
그 외에 장동건 김민종 주연의 고스트라던가 김태희가 나왔던 구미호외전이라던가 나름 CG 빵빵하게 써가면서 판타지 성향의 드라마를 선보이곤 했지만
언제나 결과는 시청자들의 쌩깜 모드로 막을 내리고 말았지.
영희: 이유가 뭘까? 지금 문득 드는 생각은 여태껏 시도되었던 판타지물들이 한국화
과정에서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한국 시청자들 집요할 정도로 리얼리티 따지잖아. 어쩔 때 보면 드라마를 드라마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현실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성, 등장인물과의 감정 이입에 집착하는 거 같더라고. 그런 측면에서 여태껏
시도되었던 한국형 판타지들이 한국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철수: 빙고~ 바로 맞췄어. 그게 이른바 한국화 과정이라는 거겠지. 돌아와요 순애씨가
시청률 면에서 선방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한국화 과정에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야. 판타지의 설정은 외국의 그것과 비슷할지 몰라도 그
배경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한국 드라마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고유의 것이라고.
영희: 자세하게 말해봐.
철수: 한국 드라마 시청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소재가 뭐냐? 바로 불륜이잖아. 돌아와요
순애씨가 성공한 이유는 그것이 판타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불륜 드라마를 독특하게 변주했기 때문이야. 사람들이 돌아와요 순애씨를 보는 이유는
판타지를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이 종래의 불륜 드라마를 새롭게 변주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거야.
영희: 하지만 극중에서 아줌마인 순애가 젊음을 다시 되찾게 된 후에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오잖아. 그건
인간의 보편적인 판타지. ‘다시 찾은 젊음’에 대한 욕구를 해소시켜주는 거잖아? 그런 측면에서 오직 불륜 드라마의 변주이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건
지나친 단정 아닐까?
철수: 물론 그런 측면을 부정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그 ‘다시
찾은 젊음’에 대한 판타지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묘사 했다기 보다는 ‘한국 아줌마’ 라는 한정된 인물군의 판타지를 묘사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거야.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드라마는 순애가 젊음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사는 과정이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남편과 바람을
피운 젊은 여성에게 복수하는 과정에 가깝기 때문이야. 그 증거로 드라마는 다시 젊어져서 새로운 삶을 향유하는 순애의 삶과 더불어 아줌마가 돼서
세상의 쓴맛이란 쓴 맛은 다 보게 되는 초은이의 삶을 병치해서 보여주지. 한마디로 죄를 지었으니 너도 한번 당해봐라 이거야.
근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정말로 아줌마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불행하기만 한 것일까? 드라마에서는 예스라고
말해. 초은이가 된 순애가 젊음과 일을 갖고 인생을 마음껏 즐기는 것에 비해 순애가 된 초은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상황만 맞이하게
되지. 육아도 살림도 그 어떠한 보람도 찾아볼 수 없는 쌩고생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돼. 물론 두 사람의 달라진 환경을 보다 명확하게 대비시키기
위해 과장한 측면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줌마가 된 것이 마치 형벌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종일관 비참한 모습만 부각시키는 것은 이 드라마를
보는 아줌마 시청자들의 자기 연민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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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 니 말이 일리가 없다는 건 아닌데 그건 이렇게 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어찌되었건 순애는 젊음을 되찾았단 말이야. 하지만 초은이는 한순간에 젊음을 빼앗겨버린 거라고. 거기서 오는 박탈감, 좌절 그런 것들이 초은이를
비참하게 만든 거 아닐까?
철수: 그런 일반적인 박탈감만을 표현했다기에 드라마는 시종일관 아줌마라는 존재를
근본적으로 불행한 인물 군으로 묘사해.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순애는 초은이에게 시종일관 이런 이야기를 해 ‘너도 나이 먹고 애 낳아 봐라’ 세
본건 아닌데 적어도 한 회당 1번 이상은 꼭 이 대사를 하더라고.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아줌마가 된다는 것은 형벌이고 너는 내 남편과 바람을
피운 죄로 아줌마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 근데 나는 이 지점에서 이 드라마의 기본적인 전제에 의문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어.
정말 그래? 아줌마가 된다는 게 정말로 여자에게 형벌밖에 안 되는 그런 비참한 상황인거야? 한국같이 가부장적 질서가 공고하고 여성의 자아실현에
인색한 사회에서 아줌마가 되어 세상과 단절된다는 게 물론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줌마라는 존재를 이렇게까지 부정적인 존재로
단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어.
영희: 하지만 시청률 잘 나오잖아? 그건 다시 말해서 그런 식의 단정이 주부
시청자들에게 어느 정도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반증 아닐까? 드라마의 정치적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이런 식의 해석이 공감을 얻는
한국 사회의 기본 모순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어.
철수: 니 말도 일리가 있다.
영희: 드라마 자체는 어때? 뒤로 갈수록 뭔가 좀 맥이 풀리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철수: 그건 애초에 16부작이라는 규모에 비해 드라마 자체가 갖고 있는 이야기가 작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어. 사실 드라마가 갈 수 있는 길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 육체가 바뀐다. 서로 바뀐 육체에 적응한다. 근데 그
다음에 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거야. 그 다음은 그냥 다시 자신의 육체로 돌아온다. 가 와야 맞는데 아직 채워야 할 분량이 한참 남아있거든.
그러니까 그 비어있는 분량을 채우기 위해 기본 줄기와는 상관없는 곁다리들이 달라붙게 되는 거야. 순애가 꿈속에서 자신의 육체로 돌아왔다는 것을
숨기고 남편에게 멋지게 복수하는 이야기로 한회를 다 채워버린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 상상 씬이라던가 영화 패러디 같은 것들이
드라마의 소소한 재미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사용된다는 건 사실 이야기 자체가 빈약하다는 것의 자기 고백이거든.
돌아와요 순애씨의 경우 애초에 정해놓은 분량과 이야기 자체가 갖고 있는 분량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사족에
불과한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야. 그 예로는 서로의 육체가 바뀌었다고 커밍아웃을 한 다음에 각자의 가족에게로 돌아간 다음에
이대로는 못살 거 같으니 한 달만 서로 다시 육체가 바뀐 척하며 살자고 음모 비스무레한 걸 꾸미는 부분을 들 수가 있어. 물론 그 설정으로 인해
윤다훈이 그렇게 나쁜 놈만은 아니다 라는 모습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이야기 자체로만 봤을 때는 진도 나가는데 별다른 영향을 끼치는 설정이
아니거든. 그냥 되돌이표처럼 새로운 해프닝들만 펼쳐질 뿐이지. 그런 측면에서 초은이의 첫사랑과 순애 그리고 초은이와의 삼각관계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드는데 그럴 경우 불륜의 피해자였던 순애가 어느새 불륜의 가해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중간에서 흐지부지
마무리를 짓더라고.
영희: 배우들 연기는 어때? 난 그럭저럭 다들 잘 하는 거
같던데.
철수: 어 다들 기본빵은 하지. 특히 윤다훈은 이번 작품을 통해 완전 부활했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아. 세친구
이후로 캐릭터 변신한다고 비열남도 해보고 터프가이도 해봤는데 별 소득이 없었잖아.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완전 세친구 때 캐릭터를 그대로
살리더라고. 근데 그게 꽤 잘 어울리거든. 연기 변신도 좋지만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꾸준히 살리는 것도 배우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이건 연기력하고는 별개의 문젠데 심혜진이 과연 순애라는 캐릭터에 맞는 캐스팅인지는 좀 의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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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 왜 터프한 아줌마 연기 곧 잘 하던데.
철수: 연기야 곧 잘 하지. 근데 순애는 대한민국 대표 억척 아줌마라는 설정이잖아.
드라마에서 순애는 이쁘지도 않고, 몸매도 꽝이고, 매력 같은 것도 사라진 말 그대로 평범한 아줌마라고. 근데 심혜진은 이쁘잖아? 박진희 보다
키도 크고 몸도 늘씬하고. 드라마 중간 중간 자기 순애가 자기 몸에 대해 한탄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되게 공감이 안되더라. 난 안문숙 같이 평범한
외모의 배우가 순애 역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심혜진은 순애 역할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미시스럽다고.
영희: 박진희는 어때?
철수: 어 사실 이 드라마의 실질적인 주연은 박진희야. 드라마의 주인공은 순애지만
주연 배우는 초은이 역을 맡은 박진희라는 아이러니한 현상이지. 드라마가 코믹 드라마인데다가 설정 자체가 특이해서 기본적으로 과장된 연기가 많이
요구되는데 나름 잘 표현하더라. 젊은 여자 연기자로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텐데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망가지는 모습 보기
좋더라고.
영희: 어찌되었건 철수야 난 괴롭다. 앞에는 호랑이요 뒤에는 절벽이라고. 유부남
아니면 백수라니... 내 인생은 왜 이리 박복한 걸까?
철수: 너 핸드폰 울린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전화나
받으시지?
영희: 여보세요? 전화 그만하라고 했죠? 전 이제 당신 안 봐요. 그러니까 그냥 부인한테 돌아가시란 말이예요.
... 불륜이 싫은 게 아니에요. 나한테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구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난 지금 당신이 아니라 내 앞의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단 말이 예요. 더 이상 전화지 마세요. 해도 안 받을 거예요. 그럼 끊어요.
철수: 너.... 나 사랑하니?
영희: 닥치고 술이나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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