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야기

[스크랩] 첫사랑에게..

이바구아지매 2006. 11. 25. 16:10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을게다
갈피갈피 
기쁨과 한숨과 눈물과 
비릿한 젖내와 희미한 오줌 얼룩과
풋내기 어미의 하얀 솜털 간지러운 
스물네 해 
오롯이 저당 잡힌 비망록
그 무렵
내 하루는 온통 너뿐이었다.
첫사랑 앓는 단발머리 계집애처럼
온 마음을 사로잡은 
작은 우주, 너를 향한 경배
황홀한 홀림의 날들
꽃잎 같은 네 작은 입술
꽃망울 터지듯 신비로운 첫 옹알이
앙증맞은 작은 발로 세상을 뒤흔들던
첫 걸음마의 환희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열 감기에
홧홧한 어린 몸 어루만지며
근심으로 지새우던 숱한 밤의 기억
세월이 주는 선물로 아기는 
봉긋한 가슴의 작은 숙녀가 되고 
손 뻗으면 닿지 못할 곳으로
조금씩 멀어져 가는데
자라지 못한 앉은뱅이 어미 
엉겅퀴처럼 휘감는 욕심에 눈멀어 
살가운 말 한 마디
따듯한 포옹조차 인색했구나.
너를 위한다는 변명으로 구속했던
옹졸함을 용서해라
동일시의 이유를 들어 전횡을 일삼던
어리석음을 용서해라
고백하거니와 
가파른 희망일수록 절망은 더 깊다는 걸
알면서도 집착하는
여전히 못난 어미일 것임을 용서해라
차라리
등 뒤를 지키는 그림자 되어
네가 뒤돌아볼 때마다
환한 얼굴로 배냇짓 하는
갓난아이고 싶다,
백치 같은 어미이고 싶다.
 - 글. 조영조 -

출처 : 경남북 중년의 행복찾기
글쓴이 : 그란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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