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야기

[스크랩] 그때그가 떠올랐다, 가톨릭다이제스트-윤학변호사-

이바구아지매 2006. 12. 10. 00:25

 

 

2005년 6월 가톨릭다이제스트  <목마름의 잔치 사랑의 잔치>- 윤 학 변호사 -

 

  동네 목욕탕에 갔다가 대학 동창을 만났다.  지금 어디서 근무하느냐고 물었더니

어느 지방에서 부장검사를 하고 있다며 "이제는 출세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그가 아직도 출세에 미련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수시절 그는 참 영민했다. 지방에서 고등학교을 졸업한 나와 달리 그는 정확한 서울말을

구사했고,입는 옷이며 가져오는 도시락은 그의 집이 얼마나 윤택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영어며 수학이며 그이 모의고사 답안지를 보고 있노라면 공부깨나 한다는 나도 기가 죽었다.

대학에 가서도 그는 수위를 다투었다. 

수업시간이면 질문도 자주 하고 학회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그가 고위 법조인이 되는 건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를 볼 때마다 그의 반듯한 외모가, 그의 뚜럿한 의사표현이,  그의 비상한 실력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해 쓰여질지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의문이 솟았다.

그는 그저 혜성처럼 누구나 부러워하는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소망만 갖고 있는 건 아닐까. 

동기들의 앞선 승진을 보며 앞만 보고 뛰었을 그 친구의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그에게 무엇인가 주고 싶었다.

 다시 그를 만나던 날, 나는 가톨릭다이제스느르 건넸다.  자기에게 웬 종교잡지냐는 듯 편치

않은 눈으로 책과 나를 번가라 쳐다보았다. 나는 태연한 척 했지만 등에 땀이 났다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심심할 때 꼭 잃어보라고 부탁했다.  그 책을 그가 읽어보았을까?

 

 내가 변호사를 막 개업했을 때였다.  일간신문 기자라는 분이 친척의 송사로 내 사무실에 왔다. 

신문기자라면 좀 재기도 하고 무엇이든 좀 아는 척 마련인데, 그는 그런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기 드물게 겸손한 그에게 호감이 갔지만 없어도 있는 체,

약해도 강한 체해야  살아남는다는 요즘 세상에서 그가 성공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몇년이 지나 그는 다른 친척의 형사문제로 또 나를 찾았다.  그는 나의 염려와 달리 신문사

중요부서 부장으로 승진해 있었다.  집안에 골치  아픈  형사문제가 생기면 경찰이나

검찰의 고위층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했노라  자랑 삼아  말하는  기자들을 많이 봐온

나로서는 그런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찾아온 그가 참 요령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예의 그 수줍은 미소를 띠며 사건을 맡기고 갔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남자다운 페기,

기자다운 맛이라곤 한군데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 나는 10여 년간 그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가톨릭다이제스틀를 만들다 보니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은 하는님을 담아 내지 않고 결국은 자기를 담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좋아보이는것도 하느님이 아닌 인간을 담으면 정말 보잘것이 없었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이 절실했다.

그때 그가 떠올랐다.  그를 만났더니 그는 이미 일간신문 편집부국장이라는 높은 직책에게까지

올라 있었다.  다짜고짜 그에게 가톨릭다이제스트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가톨릭 신자도 아니고, 그가 일하는 신문사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종교잡지사에서

일하자는 나의 제안에 그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불쾌하게 하지도, 말을 더듬거리게 하지도 않았다. 그는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그와 헤어진 후 가톨릭다이제스트를 그에게 보냈다. 그는 경영이 어려울 텐데

무료구독보다는 구독신청을 하고 보겠노라며 굳이 구독료를 보내주는 것이 었다.

그가 잡지를 본 지 2년 여가 지난 어느 날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가톨릭다이제스트를 보면서 무언가 가슴에 따뜻한 것이 자라잡기 시작했고 자신의 인생이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조금씩 방향이 잡히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톨릭다이제스트를 같이

만들자는 2년 전  제안이 아직도 유효하느냐"고 내게 물엇다. 

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신문사를 그만 두고  가톨릭다이제스트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힘없는 웃음과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그러나 업무를 추진할 때 보면

그처럼 힘있는 사람이 없다. 

누구에게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너서서 조금만 일부터 한다.

 

 그를 생각하면 나는 힘이 난다, 무언가 큰 보물을 감춰두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하다. 

사무실 창밖으로 환하게 피어있는 연약한 꽃잎들이 그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앞만 보고 뛰는 내 대학동창들에게도 이런 아름다운 세계를 전해줄 날이

있으리라 는 생각을 하면 더욱 가슴이 뭉클해진다.

 

  ***  내가 이 글을 읽은건 벌써 1년하고도 몇개월...  요즘 들어 불현듯 이글을 다시 

찾아읽고 싶어졌고 결국은 이렇게  100타도 안되는 달팽이 타자 솜씨를 발휘에  글을 올렸다, 

난  윤학변호사님의  마음처럼 무언가 큰 보물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은 뿌듯함..,

큰일을 해낸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 진다...!!!

 

방랑자 외 - 박인희

 

 

출처 : 초상화클화실 그림쟁이
글쓴이 : klgaller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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