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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여성과 뜨개질

이바구아지매 2007. 1. 31. 17:16

 

뜨개질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것일까?

이건 뭐 영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연상케 하기는 한다.

요컨대 표절의 혐의가 있다는 거다. 그러나 뭐 어쩌랴. 어쨌거나 저쨌거나 요즈음 나의 일상은 매일매일이 그놈의 뜨개질과의 전쟁이다. 도대체 뜨개질에 뭐가 있는 것일까. 뭐가 있기에 나의 어머니는 저렇게도 아들놈을 속상하게 하고 짜쯩나게 하고 우울하게 하는 걸까.

 

뜨개질, 소리만 나오면 나의 머릿속에서는 벌써 한 장의 그림이 그려진다. 웅크려앉은 채로 마치 금방이라도 땅 속으로 들어갈 버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모습의 여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할머니.

 

뜨개질 바늘은 어머니의 손에서 마술을 부린다. 해가 져도 모르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쩌면 그렇게도 바늘과 손과 실이 하나가 되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일까. 어둠이 짙게 깔려 사물을 완전히 식별할 수 없는 지경인데도 어머니는 웅크리고 앉아 익숙하게 손을 놀린다.

 

해가 지고 어두워졌을 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무엇인가 희미한 그림자가 내 눈에 잡힌다. 뜨개질하는 어머니. 오, 미치겠다. 두 시간마다 한 번씩은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산책도 좀 하고 그렇게 좀 운동을 하라고, 아무리 말하고 또 말해도 마이동풍이다.

 

내 무덤을 내가 판 꼴이다. 뜨개질을 하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많이 줄어든다고, 어디서 그런 맹랑한 소문을 귀얇게도 들어서는 그날로 수예점으로 달렸갔었다. 수예점 아줌마 왈 노인양반이라면 털실보다는 얄따랗고 하얀 구정뜨개실이 좋다고, 해서 그것을 사들고 왔더니만 어머니 왈 어떻게 알고 이런 것을 다 사 왔느냐고 반색이다.

 

당신이 젊었을 때,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바로 그 구정뜨개라는 걸로 매리야스 같은 것을 떠서 입혔노라고, 그런데 그놈의 구정뜨개가 이렇게 내 뒤통수를 확확 칠 줄이야.

 

아침에 눈을 뜨면 그놈의 것을 틀어잡고, 그래서 운동부터 해야 한다고 하면 오냐, 하고 나가기는 나간다. 그래봐야. 뭐하나. 십 분도 안 되어 들어와 버린다. 아무래도 뜨개질이 안 잊혀 운동이고 뭐고 집중이 안 된다는 듯이 그렇게.

 

보는 사람마다 걱정을 한다. 저건 위험하다고.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저렇게 열성을 팔다가 만약에 앉은뱅이라도 되어 버리면 어떡하냔 말이다. 이건 뭐 내가 완전히 뒤집어쓰는 거 아니냔 말이다.

 

도대체 무엇일까. 뜨개질에 깃든 특별한 그놈의 것이 뭐냔 말이다. 연구를 하고,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건 바로, 어느 한때 나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이다. 문학을 한다고, 글을 쓴다고, 처음 시작했을 때 하루가 한 시간처럼 금방 가버렸던 기억,

 

시간이 그토록 빨리 갔던,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 가지다. 뭔가를 쓴다고 낑낑거릴 때, 풀리든 풀리지 않든, 나는 그 하나의 주제에 모든 것을 걸고 집중하고 있었던 거다. 뜨개질도 결국은, 그와 하나도 다르지 않으리라.

 

수많은 그림에서, 문학에서, 영화에서 우리는 뜨개질하는 여인을 무시로 만나게 된다. 그런 장면들은 길쌈이 오랜 시절 전부터 여인들의 아주 중요한 작업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을 암시하기는 한다. 그렇다 해도, 나의 고민과 짜증과 우울이 해소되는 건 아니다.

 

저러다가 어쩌면 앉은뱅이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나의 어머니를, 아아 참 내, 이걸 어떻게 한단 말이냐.

 

 

출처 : 산지기의 웰빙터치
글쓴이 : 나무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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