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

[스크랩] 목련

이바구아지매 2007. 4. 1. 16:11

 

 

목련을 보면 할 말이 많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내 빈곤한 언어로 어찌 저 순결한 생의 일장춘몽을 묘사한단 말인가.

스스로 말하기를 포기하고 어느 문장가에게 목련의 정수를 듣는다.

그의 글을 통해 명치끝에 매달린 사어들이 배설된다.

아, 이 신묘한 카타르시스!!

함께 누리시길........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차 있다.

그 꽃은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김훈 <자전거 여행> 중.

 

 

 

 

출처 : 마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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