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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아들의 새해 선물 - 랭보 -

이바구아지매 2007. 7. 12. 07:36
 

고아들의 새해 선물


                              - 랭보 -





  방안은 온통 어둠에 묻혀 있다. 두 어린아이의
  서글프고 다소곳한 밀어가 들려올 뿐.
  길게 늘어뜨린 백색 커튼 자락이 흔들리고 있는 근처에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꿈의 무게로 하여 두 아이의 이마는 수그러지기만 한다.
  밖에서는 작은 새들이, 추위 때문에 서로 몸을 비벼대면서,
  회색빛 하늘을 향해 차마 무거운 날개로 날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구나. 신년은 깊은 안개를 몸에 휘감고,
  눈의 옷섶을 길게 끌고 가면서
  눈물로 가득히 고인 눈으로 미소 짓기도 하고, 또한 오들오들 떨면서 노래 부르기도 한다.



  흔들리는 커튼 아래 자리 잡았던 두 어린아이는,
  어른들이 캄캄한 밤에 하듯 나직한 목소리로 소곤거린다.
  그들은 마치 멀리서 들리는 소곤거림처럼, 깊은 생각에 잠겨,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이따금 새벽을 알리는 괘종시계가 유리 덮개 안에서
  언제까지나 울려 퍼지는 드높은 금속성 소리의 밝고 되풀이되는 음향에 놀라 몇 번이나 몸을 떤다.
  게다가 방안은 얼음처럼 차갑다......
  침상 주위에 헝클어진 것들은 흡사 상복(喪服) 같구나.
  살을 에는 듯한 겨울의 북풍은, 문간에서 탄식하고,
  방안에 음산한 숨결을 가득히 불어넣는다.
  한 차례 휘둘러보기만 하여도 무엇이 부족한가는 누구나 알 수 있다.
  이곳에 두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자애로움에 넘친 미소로, 자랑스런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어쩐 일인지 어머니는, 밤이 되면서 혼자서 열심히 재 속에서 꺼져가는 불을 살리면서,
  화로의 불을 일으키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어린아이들 몸 위에 손바닥으로나 이불을 자상하게 덮어주는 일도 잊었단 말인가.
  “미안하다!”라고 말 한 마디 말한 다음, 떠나기 전에,
  새벽녘의 추위로 어린아이들이 감기 들지 않도록
  북풍을 막는 문을 꼭꼭 닫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 어머니의 꿈, 그것보다 더 따뜻한 침구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새들이,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듯이,
  손발이 얼어버린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운 환영으로 가득 찬 감미로운 꿈을 장만한다.
  부드러운 침상은 어머니의 꿈이어늘, 어쩐 일로, 이 둥지엔 깃털도 없고 따뜻함도 없으니,
  어린아이들은 추워서, 잠 못 이루고, 두려움에 떨고 있을 뿐,
  사나운 삭풍에 얼어붙은 둥지란 말인가......



  벌써 눈치 챘으리라 생각하지만, 이 어린아이들은 고아입니다.
  집안을 온통 다 찾아보아도 어머니는 안 계시고,
  아버지도 어딘가 멀리 떠나버렸다.
  할 수 없이 어린아이들만이 얼어붙은 듯한 이 집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고아들은 겨우 네 살.
그런데 두 어린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렴풋하게나마 무언가 즐거운 추억들이, 마치 기도하면서 손을 점점 높이 들 듯이 천천히
조금씩 눈을 뜨고 있구나.
  아, 얼마나 좋은 아침이었는가 말이다. 선물이 있었던 그날 아침은.
  밤사이, 두 어린아이는 각각 받게 될 선물을 생각하면서 잠 못 이루는 것이었다.
  금종이 은종이로 싼 과자랑, 장난감이랑,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이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발을 굴리면서 춤추는 것을 보게 되는가 하면,
  금방 커튼 밑으로 숨기도 하고, 다시 또 다시 나타나기도 하는
  그런 묘한 꿈도 꾸었다.
  이른 아침이면 눈을 활짝 떴다.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욕심스럽게 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졸리운 눈을 부비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그대로 한 채, 명절날처럼 즐겁게 눈을 반짝이면서,
  작은 맨발로, 마룻바닥 위를 가볍게 발소리를 내면서,
  양친이 계신 방 밖에까지 와서는 가만히 문간을 만진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부모에게 인사말을 올린다...... 잠옷바람으로,
  되풀이되는 입맞춤, 거칠 것이 없는 기쁨이로다.



  아!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던 그 말은,
  ― 그러나 어찌하여 이렇게도 변해버렸단 말인가, 그 옛날의 이 집은! 난로에는 그토록 많은 장작이 진홍빛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방안은 온통 구석까지 빛나고 있다.
  큰 난로에서 올라오는 진홍빛 불빛의 반사가 옻칠을 한 가구들 위에서 춤추는 것이 즐겁기 그지없었다.
  찬장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았다. 자물쇠가 없었던 큰 찬장!
  검게 빛나는 갈색의 문을 몇 차례나 지켜보곤 하였다.
  이상하게도 열쇠는 없었다. 자물쇠가 없었던 찬장의 목제로 된 내부에 잠자고 있었던 신비로움을 두 어린아이는 몇 번이나 꿈꾸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귀 기울였다. 활짝 열린 자물쇠의 깊은 내부로부터 들려오는
  막연한 즐거운 소리에......
  양친의 거실은, 지금은 텅 비었구나!
  문간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없구나.
  양친도 없고, 난로도 없고, 소용없는 열쇠도 없다.
  그러므로 입맞춤도 없고, 뜻하지 않은 선물도 있을 리 없다.
  일 년의 시작이라고 하는 이 새날이 두 어린아이에게는 얼마나 쓸쓸한 날이겠는가.
  ― 완전히 슬픔에 젖은 두 어린아이들의 까만 눈에서는 쓰디쓴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 떨어지고, 그들은 다 함께 중얼거렸다.
  “우리 어머니는 언제 돌아오실까?”



  이윽고 어린아이들은 슬프게 잠들었다. 얼핏 들여다보고, 그대는 말하리라, 울다가 잠들어버렸노라고.
  잠든 그들의 두 눈꺼풀은 눈물로 부르터 오르고, 숨소리도 고통스러운 것 같구나.
  어린아이들은 너무나 민감한 마음을 가지고 있나보다!
  ― 그러나 요람 속 천사들이 내려와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거기에다 즐거운 꿈을 갖다놓는다.
  반쯤 열린 그들의 입술에는 미소가 감돌고, 중얼거리려는 듯 움직인다. 그 즐거운 꿈 때문에.
  ― 둥글고 작은 팔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잠을 깼을 때의 귀여운 모습으로, 입맞춤을 받으려는 시늉을 하고 이마를 내밀고 있다.
  꿈속의 그들 어린아이들의 눈길은, 지금은 조용히 안정되어, 그들 두 아이는 장밋빛 천국에서 잠들어 있노라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난로에는 빨간 불길이 타오르고, 불꽃은 즐겁게 노래한다.
  창 너머에는 아름답고 푸른 하늘이 있었다.
  자연은 눈 뜨고, 빛은 취하고 있었다.
  반나(半裸)의 대지(大地)는, 소생을 기뻐하고,
  태양의 입맞춤으로 하여, 환희로 몸을 떨고 있구나.
  지금 이 고풍스러운 방안에는 모든 것이 따뜻이 진홍빛으로 물들고, 상복 따위와 같은 것은, 그 어느 곳에도 흐트러져 있지 않다.
  문 밖의 삭풍도 지금은 잠들어버리고,
  마치 천사 하나가 그곳을 스치고 지나가버린 듯하였기에,
  ― 어린아이들은 기쁜 나머지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저기, 어머니의 침상 가까이, 장밋빛으로 물들고 있으며,
  저기, 커다란 융단 위에는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흑요새와 자개였다.
  검은 빛과 흰 빛으로 아로새긴
  은으로 만든 두 개의 패였다.
  검은 테두리를 한, 작은 유리의 관이 장식되어 있었고,
  금으로 새겨진 글자가 있었다.
  “우리 어머니에게!”

출처 : 손곡초당 蓀谷草堂
글쓴이 : 시골선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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