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

[스크랩] 내 이름은 데이비드 베컴,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이바구아지매 2008. 1. 12. 14:33

 

 지난 주에 사정상 못 올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그래도 항상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글을 적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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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데이비드 베컴,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어렸을 때부터 나는 축구가 너무 좋았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축구공이 가장 좋았지.

 

 

 

공을 원하는 곳으로 차고 싶어서

하루에 공을 수백번 차곤 했어.

 

 

 

나는 잘 때도 축구공을 항상 내 옆에 두곤 했었다니까 하하

 

 

 어렸을 때 맨유의 플레이를 보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고

 

 

 7번인 브라이언 롭슨을 동경해왔지.

 

  

토튼햄 핫스프 유스팀에서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했어.

 

 

하지만 내가 입고 싶은 유니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 유니폼이였지.

 

 

 나는 13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스팀에 합류할 수 있었지.

 

 

 

 

(어린 시절부터 고난도 시저스킥을...)

 

 

2년간 다른 팀으로도 잠시 임대되긴했지만

유소년 계약(16세 이하 선수와 장기간 계약 불가)이 끝나자마자 바로 맨유로 복귀했지.

 

 

 16살 때 맨유 선수로 합류하기위해 학교를 그만두었고

팀의 경기장 근처에 있는 집으로 홀로 살기 시작했어.

 

 

 단지 맨유의 선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지.

 

 

 1992년 맨유 청소년 팀에서 활약하며 FA컵 우승을 이끌어 주목받기 시작했고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그토록 원했던 맨유 1군 선수로 뛸 수 있었지.

 

 

93년 브라이튼 전에 하는데 데뷔전을 치르는데 성공했어. 기쁨도 잠시...

 

 

당시 맨유는 7번의 후계자로 에릭 칸토나가 뛰고 있었고

그에 비해 나는 아직 16살의 유망주에 불과했지.

 

 

퍼거슨 감독은 나에게 경험을 늘려주기 위해 2년동안 프링스턴 팀으로 임대를 보냈어.

 

 

나는 소중한 경험을 쌓았고 맨유에 복귀했을 때는 주전선수로 활약할 수 있게 되었어.

 

 

하지만 팬들에게 난 단지 평범한 선수로 기억되었어.

 

 

그러한 나에게 96년 결정적으로 나의 이름을 알리는 사건이 있었지.

 

 

 

 

 

바로 50m 장거리슛이 그대로 골로 연결되었어!

 

 

정말 엄청난 골이였어!

 

 

이후 실력있는 선수로 인정받았고

 

 

 

 

 

 

리그(95/96, 96/97), FA컵(95/96)을 들어올리며

칸토나의 후계자로 지목받고 세계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었으며

잉글랜드 대표팀에도 합류되어 국민영웅으로 떠올랐어.

 

 

또한 잘생긴 외모와 빅토리아와의 연인관계로 더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밖에 없지.

(뭐 일단 베컴이니까 그다지 뻔뻔한 건 아닌...)

 

 

정말 두려울것 없었던 최고의 시절이었지.

 

 

나는 세계최고의 미드필더로 떠올랐고 98 프랑스 월드컵 전 잉글랜드의 영웅으로 주목받았어.

 

 

 

 

조예선 콜롬비아 전 프리킥 골을 성공했을 때까지만 해도 말이야.

 

 

16강에서 만난 아르헨티나와의 운명의 대결

 

 

난 아직도 그때를 떠올려

 

 

오웬에게 환상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나는 최고의 플레이를 선보였어.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고...

 

 

경기 내내 신경전을 해온 시메오네가 뒤에서 나를 밀어 넘어지게 되었어.

 

 

화가 나는 시메오네의 발을 걷어차게 되었고 퇴장을 받게 되었지.

 

 

그 당시 난 아직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거든.

 

 

 

 

 수적열세의 잉글랜드는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에 패하게 되었고

 

 

그 사건이 내 인생의 큰 오점이 되었어.

 

 

 

(10명의 영웅과 한명의 미친 놈...)

 

 

그후 나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지.

 

 

나를 칭찬했던 각종 언론과 많은 팬들이

등을 돌리며 하나같이 나에게 비난을 해댔어.

 

 

심지어 살해위협을 받기도 하며 불안에 떨고 지냈지.

 

 

인생에서 가장 가혹하고 힘든 시기였어.

 

 

그러나 나는 가족과 아내의 도움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어.

 

 

 

 

재기를 시작한 나는 98/99 시즌에 뛰어난 활약으로

맨유의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엄청난 업적에 이바지했어.

 

 

99/00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잉글랜드 주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어.

 

 

하지만 모두가 못 마땅해 했던 것이 당연했지.

불과 2년 전 국민역적이 주장이 되니까말야.

 

 

 

2001년 10월 그리스 전...

 

 

2002 한일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잉글랜드는 그리스와의 마지막 경기를 가지게 되었고

최소한 비기면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였어.

 

 

그러나 전광판의 시계 90분은 모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코어는 1 : 2

 

 

그리고 찾아온 페널티 부근에서의 마지막 프리킥 찬스,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지.

 

 

하늘이 주신 기회였어.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려 있었고

 

 

모두가 숨죽여 나를 지켜보았어.

 

 

동료들은 나에게 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주었고

 

 

나는 자신감있게 공을 찼어.

 

 

공을 포물선을 그리며...

 

 

 

 

 

골네트에 꽂혔지!

 

 

나는 단지 잉글랜드를 월드컵에 진출 시켰다는 것에 기뻤고

 

 

골세레머니를 그냥 뛰어가며 기뻐하는 것으로 할 생각이였는데

 

 

그때 나는 느꼈어.

 

 

수많은 관중들이 나에게 그렇게 큰 환호성을 준 적은 그 때가 처음이였거든.

 

 

나는 너무나 기뻤고

 

 

모두가 나에게 박수를 쳐주기 시작했어.

 

 

 

 

나는 너무 기뻐 그들을 향해 힘껏 뛰어올았지.

 

 

그리고 당당하게 다 팔을 펼치며 소리를 질렀어.

 

 

날 욕하던 사람들에게 환호 받는다는거


그거 정말 엄청난 기분이더라구

 

국민역적에서 다시 국민영웅이 된 기분이란...

 

 

그후 다시 한번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는데

 

 

어두운 동굴 속을 헤메다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기분이랄까?

 

 

다가오는 2002 월드컵을 앞두고 국민역적 주장이 아닌

인정받은 주장으로 팀을 이끌 수 있게 되었지.

 

 

00/01 시즌에도 맨유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부상을 당해 월드컵 진출이 불투명했어.

 

 

하지만 잉글랜드 팬들은 나의 재기를 바라고 있었고

 

 

비록 완벽하게 회복되진 않았지만 월드컵에 출전하기로 결정했지.

 

 

 

(2002 월드컵 때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베컴의 본좌헤어스타일 ㅎㄷㄷ)

 

 

아르헨티나 전에 골을 성공시키며

 

 

다행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었어.

 

 

그러나 월드컵 후 나는 또 한번 시련기를 맞았어.

 

 

 

 

비록 02/03 시즌에도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퍼거슨 감독과의 마찰이 계속되면서 축구에 흥미를 잃고 방황했었어.

 

 

내 삶의 불행은 축구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쳐서 은퇴하기로 마음먹었었지.

 

 

그랬던 내가 축구선수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건

 

 

아내 빅토리아 덕분이였어.

 

 

빅토리아의 이해와 설득 덕분에 나는 자신감을 얻고 다시 축구화를 신을 수 있었어.

 

 

98 월드컵 후 모두가 나를 비난했을 때도 내가

축구선수 생활을 계속 할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과 아내 덕분이였지. 

 

 

퍼거슨 감독은 나를 어린 아이를 보듯이 했고

내가 평범한 여자가 아닌 인기스타와 결혼한 것에 줄곧 불만을
표시했고 여전히 내 사생활에 일일이 간섭하려 했지.

 

 
그에 대한 내 존경은 변함없지만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야.

 

 

 

 

 

결국 나는 2003년 레알 마드리드행을 택했지.

 

 

세계적인 선수들이 있는 레알에서도

나는 주전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었어.

 

 

그러나 레알의 조직력은 어딘가가 불안했고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어.

 

 

유로 2004에는 또한번 오점을 남기고 말았어.

 

 

프랑스와의 조별 경기에서 나의 페널티킥을

바르테즈가 손쉽게 막아내 역전을 허용했어.

 

 

그리고 8강에서 주최국 포르투갈과의 승부차기

 

 

나는 주장으로써 1번째 키커로 나섰지.

 

 

 

 

그러나 공은 어이없게 떠버리며 이번에도 실축하고 말았어.

 

 

결국 잉글랜드는 탈락하고 말았지.

 

 

페널티킥 실축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였어.

 

 

그후 페널티킥은 나서고 싶지 않아졌어.

 

 

오죽하면 프리킥이 더 쉬웠다니까.

 

 

 

 

레알에서 많은 활동량을 소화하며 맨유에서처럼

레알의 플레이도 언제부턴가 나의 발에서 시작되었지.

 

 

 

(빅토리아 옷을 베컴이 직접 사주는 거야?)

 

 

 

날이 갈수록 나와 빅토리아를 둘러싼 파파라치들의 행동은 심해져갔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을 즐기며 자기 관리에도 노력했어.

 

 

언론의 노출로 사생활에 큰 타격을 입은 선수들이 허다한 걸 생각해봐.

 

 

나는 밖에만 나오면 파파라치들에게 목격당해 언론에 노출되기 일쑤였어.

 

 

피할 수 없으니 그냥 즐겨야지, 어쩌겠어?

 

 

 

그리고 2006 독일월드컵

나에게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였어.

 

 

리그 우승, 챔스 우승은 해 봤지만

선수로써 원했던 것 중 하나가 월드컵 우승이였어.

 

 

 

 

1골 2어시를 기록했지만 잉글랜드는 또다시 8강에서 탈락하며 우승의 꿈을 뒤로 했어.

 

 

월드컵이 끝난후 또 한번의 시련기

 

 

이놈의 시련기는 왜 월드컵만 끝나고 오는 건지...

 

 

잉글랜드 새 지휘봉을 받게된 맥클라렌 감독은

세대교체의 이유로 나를 호출하지 않았어.

 

 

또한 레알의 카펠로 감독 역시 나를 전술상의 문제로 제외했고

이번 시즌 벤치도 아닌 관중석에서 팀을 지켜보았어.

 

 

그리고 나는 결정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어.

 

 

미국 MLS로 진출!

 

 

모두가 나의 결정에 경악하고 조롱했지.

 

 

미국에 가서 할리우드에 진출할거냐? 아니면 미국물 좀 먹어보려고?

 

 

아니.

난 단지 새로운 도전을 원했을 뿐이야.

 

 

나는 LA 갤럭시와 협상을 체결하였고 출전기회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어졌어.

 

 

구단주와 카펠로 감독은 절대 경기에 뛸 수 없을 것이라 선언했고...

 

 

내가 출전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건 다름아닌 팬들 덕분이였어.

 

 

팬들이 나를 국대와 소속팀에서 경기를 뛸수 있도록 감독에게 압박을 넣었지.

 

 

맥클라렌, 카펠로 감독 모두 팬들과 언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했고

때마침 부진하고 있을 때라 나에게 출전 기회가 오게 되었어.

 

 

나는 팬들에게 너무나 고마웠고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었어.

 

 

다시 잉글랜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된 나는

 

 

 

아르헨 전, 에스토니아 전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복귀전에서 소중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레알의 우승에 발판을 마련했어.

 

 

나의 출전을 거부했던 맥클라렌, 카펠로 감독 모두 나를 인정해주었고

 

 

나는 레알에서 마지막 시즌을 불태우고자 매경기 활약하며

 

 

 

 

 

 

4년만에 레알이 리그 우승을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어.

 

 

그리고...

 

 

 

 

LA 갤럭시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어!

 

 

아직도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결정을 했냐고 물어보곤 해.

 

 

그러나 내게는 아직 높은 레벨의 플레이를 할 수 있을 때 이곳에 오는 것이 중요했어.

 

 

과연 내 수준이 떨어졌을 때 이곳에 온다고 뭔가를 보여줄 수 있겠어?

 

 

비록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진 못하며 시즌을 마감했지만

 

 

아직 다음 시즌 나의 모습을 보지 않고서 그런 말 하면 곤란하지.

 

 

 내가 미국에서 축구를 야구(MLB), 농구(NBA)와 같이 거대스포츠로 성장시키길 원할 것이라고?

 

 

천만에! 나 때문에 미국에서 그럴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야.

 

 

난 단지 미국 어린이들이 다른 스포츠에 기죽지 않고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싶어.

 

 

 

그리고 운명의 크로아티아 전

 

 

잉글랜드는 최소한 비겨야 올라가는 상황이였어.

 

 

맥클라렌 감독은 경기시작 전 끝내 나를 벤치에 앉혀 두게 했지.

 

 

나는 후반에야 출전해 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너무나도 어색한 17번...)

 

 

결과는 너무나도 가슴아팠지.

 

 

이젠 은퇴라고?

 

 

누가 그래? 난 아직 그런 생각도 못해봤는데

 

 

비록 빠르지도 않고 상대를 제치는 티입은 아니고 내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나는 누구보다 정확하게 공을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지.

 

 

 

사실 난 누구보다 경기장을 많이 뛰어다녀.

 

 

다만 그것이 나의 오른발에 가릴 뿐이야.

 

 

지금 자랑하는거냐고?

 

 

그래. 난 이 오른발을 얻기 위해

비가오나 눈이오나 매일 프리킥 연습 2시간 이상만은 거른 적이 없어.

 

 

모두가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도 프리킥 훈련이 남았으면 마저하고 가야 속이 시원했거든.

 

 

 

 

 

 

1998년 월드컵에 갈 때 나는 정점에 있었고, 돌아올 때는 밑바닥이었어.

 

그러나 나는 경력을 다시 끌어올렸고 늘 전환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15년의 경력 동안 언제나 굴곡이 있었어.

 

때로는 훌륭했고 때로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 같았고 때로는 극복하기 힘들었지만, 언제나 헤쳐나갈 길을 찾았어.

 

중요한 건 그 시련에 꺾이지 않는거야.

 


 

 

 

"나는 일부사람들의 편견을 바꾸고 싶다"

-데이비드 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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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컴 스페셜 동영상

 

 

 

(짧은 거)

 

 

(긴거)

 

베컴 프리킥 동영상

 

 

 

 사진으로 본 내 이름은 데이비드 베컴,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베컴 사진 대방출

 

 

부상당한 상대편 선수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베컴...

 

 

너무 잘 어울리는 베컴 부부

 

 

베컴머리 잡아당기는 루니 ㄷㄷㄷ 사실 유럽에서는 친한 사이니까 가능하다네요

 

 

오해하지 마세요! 빅토리아의 짧은 치마를 찍으려는 파파라치 때문에 가려주는 겁니다. 알고보면 자상한 남편이죠.^^

 

 

잉글랜드 주장은 베컴이 최고였는데 말이죠...

 

 

고객만족도 1위, 정확해요! 베컴 택배

 

 

베컴 사진은 찾으면 너무많아서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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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출저 - dntrlwl (I Love Soccer)

 

 알고보면 정말 험난했던 베컴의 인생, 그래서 그가 더욱 멋져보이네요

 

 감사합니다. -bdh92-

 

 

 

 http://blog.daum.net/chiwoopyein(<-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시리즈)

 

출처 :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글쓴이 : 치우폐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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