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참깨앺이 향기 날리고 예쁜 꽃 피우는 8월의 늦은 시각
칡넝쿨은 제세상을 만나 세상을 평정 해 나가고.
용초리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은
이곳에서 특별관리되었던 포로들만큼이나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소개민에서 풀려 4년만에 돌아온 그들은
포로들이 살았던 막사에서 살았다고 한다
주민들이 그터에 다시 돌아와서
살아가기위해 처절한 몸부림으로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음은 어떤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
공터에서 만난 탈곡기
이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진듯 ?
마을로 거의 다 내려 오다가 만난 언덕 위의 작은집 정원의 풍경
원위치한 지점
확실하게 포로수용소를 보지 못하고 내려오니
기분 씁쓸하다
이 안내표지판만 믿고 올라갔는데...
어라 용초도에서 차를 다 만나네
오래전에 수명을 다한 방치 된 차
영화속에 등장해도 제법 괜찮을듯한
반항아 제임스딘이 담배 빼어물고 운전석에 앉아도 잘 어울릴듯하고.
더위와 배고픔에 지쳐 마을회관으로 돌아왔다
욕지도가 친정인 아지매가 바닷일을 하고 돌아와
발을 씻는다
시원하다며 나더러도 씻으라신다 .
젊었을 때 꽃같이 예뻤을 욕지아지매
가져 온 충무김밥으로 허겁지겁 먹고
다시 길 나선다
이번에는 호두마을로 가보려고.
호두마을 가는 길
호두마을 가는 길
평화롭다
물반,배반...
해안도로에 내다 말리는 콩,고구마,옥수수 그리고 이름 알지 못하는 약초같은것들.
여름 햇살에 말라가는 먹거리들.
익어가고 말라가는 풍경들.
믈반,배반
콩포기는 이제 말라서 톡톡 튀어 날아갈 준비를 마친듯.
대문 없는 집안의 마당가에서 새빨간 고추가 더 단단해져서 태양초의 빛깔을 자랑하고.
고추말리기
이렇게 말려서 고추가루 빻아 김치담고
고추장만들면 정말 맛나겠다.
용초1길
봉선화도 피었다
벌써 콩타작을?
콩타작엔 빨래방망이가 제격
도리깨는 보이지 않네.
그늘이 그립다
목마르고.
그늘아래서 만난 가두리양식장 하는 아저씨,아주머니
여기서도 똑 같은 부탁을 해 본다
포로수용소의 흔적을 아는대로 알려 달라고
"마을이장님이 용초도를 비우고 본섬으로 가라는 통지서를 받고도 포켓에 넣고 그만 깜빡하여
용초도사람들 무지막지 고생하고
이장님(000)은 두고두고 원망만 듣다가 돌아갔어요
지금 살아계셨으면 백살이 넘어요
미군은 무인도인줄 알고 포로를 데리고 들이닥쳤고..."
한 많은 삶을 산 이곳 사람들이라며. 씁쓸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억속의 아픔을 들추어내게 한 여행자의 마음도 무거워진다.
억울하고 서럽던 시간도 무심하게 잘도 흘러 가더란다.
다시 일터인 가두리양식장으로 가는 부부의 뒷모습
멀리로 한산도와 연결된 추봉도연도교가 보인다
다음에는 추봉도로 가봐야겠다
그곳에 있었다는 또하나의 포로수용소를 만나봐야 3곳의 포로수용소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을것 같다.
호두1길과 용초1길의 갈림길
태풍 뎬무로 인해 해변가의 모래가 길위로 올라와 돌아댕긴다
바다와 길의 경계가 너무 가까운 탓으로
작은 바람에도 모래를 흠뻑 뒤집어 썼다
우루루 몰려 댕기는 모랫바람에.
호두리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얼굴을 만져 보니 온통 모래투성이며 모자는 작은 바람에도 날아가려한다
밀집모자의 가벼움이라.
저기 누가 온다
또 물어봐야지.
" 학교가 어디 있어요 호두리에 있다던데 ?"
"벌써 지나왔는데 저기 바닷가에 있어 "
"아주머니네 친정은 어디예요?"
"저 멀리 거제도 남부면 탑포리에서 시집왔어 22살에 용초도에 시집오기 싫어 발버둥을 쳤는데도
도망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섬에 발묶여서 살고 있어 섬에 나서 절대로 섬에 시집 가기 싫었는데 ... "
"고향이 같네요 반갑습니다 저는 고현에 살아요 연초에서 태어났구요 "
"그런가 반가워 고향사람 만났네 우리집에 가면 마실거라도 대접할낀데 "
"아니예요 빨리 가야해요 배를 타고 나가야 하거든요.. "
호두리,
용초도에 포로수용소가 들어 왔을 때
이곳에는 철조망으로 마을을 둘러쳤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이곳 주민들로부터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철조망울타리, 그렇다면 '위리안치'에 해당하지 않는가?
조선시대에 형벌의 하나였던 위리안치는 중죄인을 섬에 가두고 주변의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게 한
중벌이었는데 설마 마을사람들에게까지 ?
어느 블로그에서 본 내용이다
000님의 블로그에 보면 그는 이곳 용초도에서 군대생활을 하였고
당시 호두마을에는 집집마다 이곳을 찾아온 여자들에게 세를 받고
방을 빌려주었으며 군인들은 이곳으로 외박을 나갔다고 했다.
군인과 여자의 관계는 또 ?
용초도는 버림받은 섬 같다며 아무리 경치가 빼어나고 앞으로 좋아질거라는 예감이 든다고 해도
살아보니 희망은 사라지고 이제는 포기하고 그냥 섬이 되었노라며
용초마을로 조개를 파러 간단다
호두마을의 조개는 영 맛이 별로라시며 ...
같은 바다인데 그것도 바로 연결된 바다에서 맛이 다르다니 그 참
며칠뒤면 부산에서 일가친척들이 벌초하러 오실거라며
미리 찬거리를 준비해 놓으려고 개발(조개파기등을 말함)을
뜻밖에 용초에서 고향사람 만나 반가웠지만
일흔을 눈앞에 두고 섬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그녀의 우수에 찬 눈빛은 여행자의 마음까지 쓸쓸하게 만들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