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다 가시기전에 손빨래를 해서 헹구고 , 비틀어짰다
요즘같이 좋은세상에 왜 손빨래를 해서 팔에 알통베기고
어깨가 빠질듯한 아픔을 구태여 자초하는가?
내가 못나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할일이 없어서?
내가 빨래를 손으로 비벼빠는 건 습관이다 어려서부터
냇가에 가서 돌에 비누칠해서 거품내서 하던 그 빨래가
지금까지 습관이 되어 발래판에 비벼 빤다
빨래를 다 하는 동안 다리를 쪼그리고 앉아서 하노라면
무릎도 아프고 장딴지도 더 넓어지는 느낌이 드는데도 말이다
겨울엔 빨래하는것이 귀찮고 재미없는 것은 사실이다 왜?
한마디로 말하면 추우니까?...
어둠을 물에 빨아내듯 그래서 맑은 물이 되듯 물도 맑아지
고 어둠도 가고 환한 아침이 온다
너른 대야에 가득찬 가족들의 빨래를 비틀어 짜서 담아
옥상으로 올라갔다 부지런한 참새가 빈 빨래줄에서 포르르
날아 올랐다
자리를 양보할 줄 아는 참새도 고맙고 이른아침 건너편 이
층집 벽에 붙어서 울어대는 매미, 왜 그매미는 이렇게 울까?
"아씨아씨... 앗시이~~"
기분 나쁘다는투로... 실컷 지멋대로 울면서 기분이 나쁘
긴 무엇때문에...?
듣는 나도 기분 나빠져서 길다란 간짓대로 매미에게
쫓는 시늉을 하니
"아씨아씨"
하며 오줌 한 번 갈기고 날아 오르더니
바라보이는 앞산으로 날아갔다
다라이 가득한 빛깔고운 원색의 옷들을 하나씩 훌훌 털어서
축 늘어진 초록색 빨래줄 가운데의 대간짓대를 조절하여
줄의 중심을 잘 잡고 집게 물려서 아침에 빨래꽃을 피웠다
간간히 부는 바람에 초록색 빨래줄에 화들짝 빨래꽃
이 피어서 바람결에 날아오는 빨래꽃 냄새가 은은하게
날아오고 , 옆집 옥상에도 품이 너른 이불호청들이
먼저 하늘바라기를 하며 춤추고 베갯닛, 수건, 브래지어
꽃무늬팬티들이 그네를 타고 날아 오르는 듯
내 눈을 즐겁게 하고, 날마다 보는데도 이웃집 아지매의
빨래 너는 솜씨도 참 정갈하고 다 넌 빨랫줄에는 색깔도
곱게 잘 어울리는, 어쩌면 선녀가 하늘로 날아 오르는 듯...
아지매가 피워 올린 빨래꽃은 하늘거리는 폼새가
너무 곱다
아지매는 무당이다 신당의 그 화려한 빛깔이 아니라
은은하게 피워 올리는 빨래줄의 풍경은 집안 신당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내가 이곳에 이사 왔을 때 한 집 건너 이 집이 무당집이란
말에 흠짓 놀랐는데 어째 기분도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한 동안 쳐다 보아도 아는 척을 못했다
그냥 귀신이 따라 댕기는 느낌이 들어서...
뒷집 윤별이 할머니한테 사연을 들어보니 내가 잘못 생각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도 인사란 것이 처음부터 안면을 잘못
트면 잘 안되는 게 사실이다
괜히 쑥쓰러웠던 것 그 해 겨울은 그냥 지나고 봄 햇살이
약간 따땃할 때 소파방석이며 보료를 옥상에 널었다
힘 없는 빨래줄에, 그날따라 봄바람이 제법 쎄게 불어
집게를 가득 물렸는데도 그냥 그 중 서너개가 집개를 달고
바람에 춤추다가 휑하니 날아서 그집 옥상옆 장독대로 가
떨어졌다
이 일로 인해서 인사를 하게 되었고 꽃무늬 자잘한 보료가
예쁘다며 어디서 샀냐고 물어오길래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
누었다
"시집 올 때 만들어왔어요"
"아니 어찌 썼길래 아직도 새 것 같아? 안 쓴 것 같아"
"많이는 안 썼어요 그래도 20년이 넘었으니 요즘 이런 보료
누가 쓰나요?"
'예쁘기만 한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2살에 신이 내려서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되어 한 많은 세상을 살게 되었다했다
아들이 둘인데 자식은 무당자식이란 소리 안 듣게 하려고
열심히 공부 시켜서 큰 아들은 의과대학을 나와서 서울대병
원에 근무를 하고 작은 아들은 대기업에 근무를 하는 참 자
랑스런 자식들이란 말을 듣게 되었고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우리는 자연스레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으며 작은아들이 결혼할 때 결혼식장에도 갔었다
아저씨는 다른여자를 구해서 한 집에 사는데 내가 아무리
이해를 하려해도 좀 그랬다
신을 모시는 사람은 남편과 한 방에서 자지 않는다고 하던가?
신이 질투를 한다고 했다
어쨋든 한이 참 많은 여인이 아닌가?
날마다 불경을 읽고 목탁을 치고 제사를 지내며 향불을 피
워 올리는 무당아지매의 모습을 보는 새로운 날이 간간히
생겼다
손님들도 종종 찾아 오는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았다
누가 아파서 병원에선 차도가 없어서, 누군가가 자살을 하
여서, 또 상사병이 나서 이렇게 무당집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연이 외롭거나,아프거나, 슬프거나 그런 일들로
찾아왔는데 그런 날엔 무당아지매는 오색 무당옷을 입고
춤을 추기도하고, 빌기도하고, 절을 하기도하고 ,대를 흔들
기도 하는 모습을 집 건너에서 보곤 했다
찾아 온 사람들은 신당에 복채를 놓고 절을 하고...
그런 날 그런 의식이 끝나고 나면 무당아지매는 춤추던 오
색 옷을 빨아서 옥상 빨래줄에 치렁치렁 널었다
빨래줄은 그 화려한 오색 당복을 바람에 나부끼며
공중에 한을 풀어 날리는 듯 ...
내가 이 동네에 이사와서 제일 인상깊은 모습이 바로 무당
집 빨래줄에서 휘날리는 당복이 춤추는 모습이다
처음엔 얼마나 신기한지 어느 잡지에서 본 무당 신금화? 김
금화인지 그 무속인의 모습을 직접 보는 듯 하여 한 동안 정
신이 다 놀랐는지 멍했다
시간이 점차 흐르고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자
평온해지고 이젠 가끔씩 바람타고 춤추는 빨랫줄이
곱기만하다
춘향이와 향단이가 그네 타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
무당아지매는 한 동안 아파서 병원에 입원 한 일이 있었는
데 그 때도 그 집 옥상 빨랫줄에는 오색 당복이 춤을 추었다
동생이 와서 빨래줄에 널어둔다고 했는데 특별한 빨랫줄 풍
경이 인상적이고 강한 느낌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또 며칠 후면 향내나는 무당복이 빨래줄에서 그네를 타겠지...
이곳에 이사 와서 집집마다 옥상에 빨래줄에 가득 널어 말
리는 빨래꽃이 참 다양하는 생각과 함께 특별한 풍경을 보
는 색다른 재미를 느끼는 아침도 이웃집들의 빨
래줄 풍경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