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소 나 기

이바구아지매 2007. 8. 15. 10:29

 

8월의 날씨는 늘 그렇다

 

쨍쟁 해가 내리쬐다가도 금방 어두컴컴한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먼 산 자락에 비를 왕창 뿌리고

 

오늘만해도 그렇다

 

서너번째 소나기가  지나갔다

 

8월의 소나기는 잠시도 얌전치 못하다

 

오죽하면 '호랑이 장가간다?'  할까

 

 

차분히 진덕하게 내리지 못하고  앞산자락에 팍 뿌리고

 

앞냇가 방천에도 햇살펼치더니 여우비  흘리고...

 

 

 

진 종일 비가 오락가락 하려나보다

 

하도 소나기를 흘려사니  지나간 기억속의 괜찮은 소나기의 수채화 하나가

 

울컥 솟아 눈앞에 딱 멈춘다

 

지금부터 추억의 흑백사진속을 구경하러 오세요

 

이야기가 재미 있을려나???

 

내가 만든 이야기속으로...

 

 

 

스무여덟해전

 

8월15일 아침부터 햇살은 쨍쨍 소리를 냈다

 

가족들이 김해의 포도밭으로  갔다

 

잘 익은 단맛나는 포도맛을 즐기려고 ...

 

포도밭의 포도는 탐스럽고 덩쿨도,이파리도  햇살을 그네타듯 넘실대고

 

포도 따는 아지매들의 얼굴에도 햇살과 웃음이 뒤섞혀서 얼마나 고운지...

 

포도밭에 온 손님들이,  포도밭아저씨의 얼굴에도  구리빛 미소가  환하고...

 

 

 

그 날 나는 약속이 있었다

 

낮12:30분 부산역 시계탑 앞에서...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나중에 오는 사람을 기다려주기"

 

누가 먼저 오더라도 기다려주는 것

 

이 약속을 내가 잊은 건 아니었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집을 보겠다고 하자  꼭 변명이고 핑계대는 것 같아서

 

혹 나의 약속을 눈치라도 채면 곤란하니, 아무일 없는 듯 먼 길을 갔다

 

둘째오빠랑, 새언니, 나

 

물방울 무늬의 원피스에 끝단이 프릴이 달려서 꼭 공주같은 옷

 

그날 나는 좀 예뻤다 옷이 날개라고...

 

부산을 떠나 근교인 김해로 갔고 그기서 낙동강의 나룻배를 탔다

 

강을 따라 나룻배를 타고 잔잔한 강물이랑을 보며 가는 것도 운치있는

 

모습이지만 그날만은 내 머릿속은 낭만대신 초조함이  딩굴고 있었다

 

노 젓는 아저씨도 손님이 많아선지 기분이 좋아서 누런 옹니를 드러내고

 

웃음을 가득 날리고

 

그렇게 김해의 넓고 넓은 포도밭에 도착하고 원두막, 평상에도 사람들이 가득

 

하고 포도밭나들이에 나선 울긋불긋한 차림새의 사람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

 

이고 하늘은 뭉개구름을 띄워놓고

 

 

그날 풍경은 유별나게 아름다운 여름 수채화로 분명했다

 

"어이 참 보기 좋은 가족들입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먹포도가 지금 젤 맛있을땝니다 실컷 드시소"

 

하며 아저씨가 포도를 금방 성큼성큼 따서 채반에 씻어 건져주며

 

"넌 참 귀엽게 생겼네 몇살이야?"

 

"18살이에요"

 

"어째그리 이뿌냐 ? 피부도 좋고 우리 아들이 있었으면 며느리 삼고 싶다야"

 

이 정도면 오늘 포도는 양껏 먹고 또 횡재할 수도...

 

장사꾼들의 정해진 말투인가?

 

 

 

한 알, 두 알 먹어 보니 달콤하긴 진짜 달콤하고

 

"얘야, 너 포도 따 볼래? 니가 딴 건 그냥 가져가도 된다"

 

포도밭아저씨 인심한번 좋다. 장사를 그리하면 안될 것 같은데?

 

내 마음은 지금 포도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콩밭에  가 있는데...

 

그래도 못이긴척 아저씨를  따라간다. 소쿠리에  햇살과 숨바꼭질하는

 

포도송이를 가위로  살금살금 잘라  먹음직스런 포도가 소쿠리에 놓았다.

 

"아가씨, 옷에 포도물들면 안 지니 조심하세요"

 

새 언니의 이쁜 목소리가 포도덩쿨사이로 들려오고, 마음속은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내려다보고 12:00 아니 벌써???

 

이 일을 어쩌나 큰일났어

 

그 애가 기다릴텐데 어쩌나 여기서 부산역까지 가려면 몇시간이나 걸릴텐데...

 

소쿠리엔 포도가 탐스럽게 얹히고

 

"얘야, 그건 니 먹어라 내 돈 안받을끼고마는 ..."

 

참 마음씨 좋은 아저씨다

 

내 마음속에 약속만 자리하지 않았다면 

 

오늘은 무지무지 좋은 날...

 

아 그 때 머릿속을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멋진 생각... 그래 그렇게 하자

 

"아이고배야 아이고배야"

 

'왜그래, 어디가 아파?"

 

오빠가 놀라서 물었고

 

"아까부터 배가 실실 아파서 집에 가고 싶어요

 

가다가 약 사 먹고 집에서 쉴래요"

 

'혼자서 어찌가노 아픈데..."

 

"괜찮아요 갈 수 있어요 "

 

이렇게 살짝 포도밭 덩쿨길을 보기좋게 빠져 나왔다

 

시계는 2시가 넘었고, 햇살은 머리위에서 약을 올리고

 

다시 낙동강의 나룻배를 타고 구포에 내렸나???

 

부산역에 가는 버스를 타고 창가의 자리에 앉으니3시였다

 

이런 엉터리같은 약속에 기다리고 있을까???

 

차창으로 밀려가는 낙동감 물결, 저 멀리 김해의 들판 다 남기고

 

부산역으로 가는 차는 이런 다급한 내 마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정류장이란 정류장은 다  멈추고 사람을 태우고, 내려주고

 

손목의 시계는 5시를 가리키고 나는 종교도 없는데 내 친구가

 

지금도 기다리고 있게 해 달라고 하느님도 찾아보고

 

부처님, 공자님 다 찾아서 내가 가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부산역이 보이고 갑자기 하늘에서 소나기가 가득 퍼붓기 시작하고...

 

 

 

엄청난 소나기의 양은 기세등등하게  세상의 모든것을 흠신 때려주고

 

비에 젖게 만들었다

 

이런날씨??? 난 어쩌나??? 비비비  이건 아닌데

 

내 친구는 이런 날씨에 와서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 안 왔을지도 모르지 대구가 여기서 한두발이야?

 

이렇게 내 마음은 우왕좌왕하고 밖에는 장대비가 퍼붓고...

 

버스에서 내려도 우산 파는 곳도 안 보이고 고운 모습인가 창가에 비추어도 보

 

앗지만 사정없이 비맞은 촉새가 되었다

 

비가 오거나말거나 부산역 광장의 물살을 가르며 뛰어 간 곳

 

시계탑아래, 있을까? 없을까? 차라리 없기를 이 비에 있다면 이상한 거?

 

그냥 빗속에 우두커니섰다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샌달속 발이 물구덩이에 섰고

 

" 비를 너무 맞았구나 여기 손수건 얼른 비를 피하자"

 

그 애 목소리... 내가 할 말은 ...

 

비를 피해서서 젖은  얼굴과 머리를   그 애가 준 손수건으로 닦았다

 

"저기 제과점이 있네 빨리 들어가자  감기 걸리겠다"

 

말없이 제과점으로 따라들어가고  자리에 앉고

 

"저기요, 도너츠랑, 구리만주, 밤만주, 카스테라, 앙꼬빵이랑

 

좀 싸주세요  에쁘게 포장해주세요 선물할거에요"

 

옷이랑 머리의 물기를 어느정도 제거하고...

 

"아프면 안 돼 나 이제 가야 돼 시간이 없어6시 기차표를 탔거든

 

안 오는 줄 알았지. 온다는 걸 알았으면 기차표 안  살건데, 비도 오고..."

 

시계를 보니 5시50분  난 말 몇마디도 못했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는데

 

먼 길을 온 친구한테 내가 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 가 ... 나 가야 돼 , 꼭 ... 참많이도 내린다. 저 소나기..."

 

"잘 가 "

 

내가 한 말이라곤 고작 이것뿐  플랫포옴으로 달려가며 뒤돌아서 손 흔들며

 

가버린 그 애  내  품안엔 빵꾸러미만 가득 남기고...

 

"좋은 선물을 사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없었어  우리가 입시생이란 게 안타까워  시간이 없잖아"

 

 

그 애가 던지고 간 마지막 말...

 

기차는 부산역을 빠져나갔다.

새마을호 기차가 꽁무니를  빼고 지나간 그 자리에 어느 새 해가 뻔쩍 솟았다.

 

 

부산역에 비가 그치고, 햇살이 가득하고...

 

오랜시간이 지났다... 스무여덟해가 흘러간 지금도 그 엉성한 약속끄트머리엔

 

소나기가 있었고  그 놈의 소나기때문이라고 나는 아직도

 

변명을 둘러대고 있다

 

아직도 김해의 포도밭은 손님을 받을것이고 부산역광장 시계탑앞에는 오고가

 

는 사람들의 약속이 있을테고, 잠시 심술궂은 소나기는 또 우리들의

 

약속을  엉망으로 만들었듯 , 또 다른 사람들에게 비를 핑계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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