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야기

캐네디 맏딸 ' 가문의 부활' 꿈꾸다.

이바구아지매 2008. 12. 18. 08:04
조선일보

케네디 맏딸 '가문의 부활' 꿈꾼다

기사입력 2008-12-18 03:21 기사원문보기


언론 피하던 '수줍은 공주'의 상원직 도전

오바마 지지하며 타고난 정치 본능 깨달아


아버지 존 F 케네디(Kennedy) 대통령이 암살됐을 때 딸 캐롤라인(Caroline·51)의 나이는 여섯 살이었다. 이후 어렸을 때에는 물론 성인이 된 뒤에도 그는 언론에 자신의 활동을 노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미 언론엔 그가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직을 원한다는 얘기가 한창이다. 그는 왜 갑자기 정치에 뛰어들려는 것일까.

워싱턴포스트(WP)는 17일 측근들의 말을 인용해 '캐롤라인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를 하겠다는 꿈을 키워 왔다'고 보도했다. 친구 클라인(Klein)은 "이미 8년 전에 그녀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WP에 말했다.

수줍음이 많던 공주

아버지의 피살 이후에도 많은 미국인에게 캐롤라인은 오랫동안 '미국의 어린 공주'로 각인됐다. 대중은 늘 그를 보고 싶어했다. 백악관을 나와 워싱턴DC의 조지타운과 뉴욕 맨해튼에 살 때 사진기자들은 그녀를 촬영하려고 혈안이 됐고 그녀의 집은 관광지처럼 변했다. 하지만 그는 언론을 피했다. 어렸을 때에는 어머니 재클린(Jacqueline)의 엄격한 보호 때문에, 커서는 본인의 내성적인 성격 탓이었다.

어릴 적에 캐롤라인은 어머니가 사람들을 피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도 10세 때 삼촌 로버트 케네디마저 암살되고 11세 때 어머니가 재혼하는 등 개인적인 불행이 끊이지 않자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며 구석진 곳에 앉아 잘 나오지 않는 아이가 됐다"고 전기작가 데이비드 헤이먼(Heymann)은 말했다. 캐롤라인은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결혼해 아이 셋을 낳고 살면서 다시 대중 앞에 나가고 싶은 욕망을 느꼈지만, 1999년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 존이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서 또다시 숨게 됐다고 ABC방송은 보도했다.

껍질을 깨고 나온 케네디가의 딸

전환점은 캐롤라인의 오바마 선거운동 합류였다. 그러나 오바마 캠프 사람들도 그녀의 정치적 야망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오바마의 한 참모는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싫어했으며 지지자들과 통화하거나 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사소한 일들을 좋아했다"고 기억했다.

'검은 케네디'라고 불리는 오바마의 선거 지원 여부를 두고 캐롤라인은 막판까지 고심했다고 한다. 28년 전 작은 삼촌 에드워드 케네디(연방 상원의원)를 위해 대선 후보 경선 지지연설을 한 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서는 자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오바마가 아버지 케네디의 이상을 실현시켜 줄 인물이라는 확신에 지지연설을 했지만 그 순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숨겨둔 꿈까지 보게 됐다고 ABC방송은 보도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가이자 정치 조언가였던 시어도어 소렌슨(Sorensen)은 "당시의 스포트라이트는 캐롤라인을 껍질 밖으로 나오게 했고, 그녀는 사소한 정치 경험들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캐롤라인의 정치적 도전은 케네디 집안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보도했다. 뉴욕 데일리뉴스는 "캐롤라인이 단상에 서서 연설하는 모습은 아버지를 연상케 한다"고 표현했다. 케네디 집안에서 상원의원이 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캐롤라인은 그 전통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이제야 깨달았는지 모른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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