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늙은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이바구아지매 2009. 5. 8. 10:47

  늙은 엄마가 살고 있는 친정에 간다.

어버이날이라고...

 엄마가 좋아하는 빵을 가득 사 들고...

어린시절부터 수 없이 걸었던 그 길로 ...

 돌부리에 채이고 넘어지면서도 날마다 걸었던  기억속에서  가글가를대던 신작로의 자갈길...

이제 시커멓게 아스팔트로  화장하고  작은 아짐더러  밟고 지나가라 한다.

연초삼거리에서 죽전으로 ...

 눈을 감고 걸어도 빈틈없는 감각으로 찾아 갈 수 있는 작디작은 마을  그리고  늙은 엄마가 혼자 사는 집 ...

 야트막한 산 하나를 집안에 덩그렇게  들여놓고 사는  엄마는 아직도 펄펄 날아 다닌다.

밭에 가서 고추도 심고,상추며,열무도 심고, 조금 있으면  매운 맛  단단히 오른 마늘도 캘테고 ...

기억은 갈수록 초롱초롱하여

생각하는 힘은 5학년인  막내딸보다 더 세다.

세월은  참으로 신기한 마법같은 힘을 발휘하는지라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엄마와 딸이 함께  늙어가는 풍경을 가끔씩 마딱뜨리기도 한다

 앞으로 1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 ...그리고 그 때도 엄마가 살아계신다면

누가 엄마며 누가 딸인가 하고 궁금 해 하는 사람들도 생기겠지...

 간혹 보았던  풍경,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늙어가고, 엄마와 딸이  함께 늙어가는 그 이해 할 수

 없는  시간의  무차별한 공격을  허허로이 바라본 적도 있다.

연두빛이 곱던 산과들은 이제 짙은 초록으로  자전거 폐달을 세차게  밟으며    쌩쌩 굴려가듯  

여름속으로 달리는 5월...

연초삼거리에서  북쪽대로를 따라 50m정도 걸었을까? 

마을을  들어서는  죽전교를 만나고...

   송사리가 떼 지어 헤엄치고

은빛은어.금빛 붕어가  살판난 맑은 물이 마을앞을 흘러내리던

호수같은 마을, 나 살았던 마을, 우리동네 죽전리 ...

그  마을에 늙은 엄마가 살고 있다.

가끔씩 전화로 퉁퉁핑핑 쏘아대는 막내딸의 불평불만을  산 같은 마음으로 받아주는

늙은 엄마 ...

오늘 하루만이라도 투덜대지 말자

단 하루만이라도 ...

 엄마의 철 없던 막내딸도 결혼하여  아들,딸 줄줄이 낳아서 에미가 된지 오래되어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이제  함께 늙어가는  못난 딸은  늙은 엄마의 끝 없는  애정의 깊이를 잠시나마 마음의 줄자로 재어본다.

 

 

 

 

 

 

 

 

 

 

 

 

 

 

 

 

 

 

 

 

 

 

 

 

 

 

 엄마의 집에 도착하여 ...

 

엄마, 하고 소리쳐 불러 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

마루끝에 대롱대롱  호미가 걸려 있고

꽃밭의 장미는 장독대까지 얽켜 있고

언덕 위의 마늘밭에는 다 자란 마늘이 진닢 가득 달고 땡볕에 여물어져 가는 풍경을 만나서 미소보내고

엄마를 부르며 뒤란으로  달려  가 봐도 바스락거림 하나 없다.

때마침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댓잎들만 스르르 사르르 부비대고...

참으로 심심하고 한적한 어버이날  찾아 간 친정집 풍경

덩그런  집을 지키는 건 곰살맞게 짖어대는 개 한마리와  교미를 하고 싶어  얄궂은 소리지르고 달아나는 고양이 한마리 뿐

그리고 꽃밭의 장미,함박꽃, 모란꽃들...

노란 송홧가루가 바람에  날려 와 마당가 구석을 이리저리 몰려 다니는  신기한 풍경을  빤히 바라보다

 엄마의 방 창호지 발린 봉창문을  힘껏 열어 젖히고 빵 봉지만 덜렁 내려놓고

다시 집을 나선다 .

아주 심심한 집 ...

축담위에는 제멋대로 벗어 놓은 흙 묻은 슬리퍼 두짝만이  마루밑을 지키고..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오늘 분명 막내딸이 올거라고 온 종일 기다렸을텐데...

 오래 전 뒷동산으로 이사 간  아버지의  뜨락에도 보이지 않았는데 ...

 참 투덜대는 막내딸의  심술이 겁나서  피해 개고지 마을로 도망을 가셨는지? ...

그렇담 또 성질 날라네  열통터지기전에  나도  얼른 도망가야지

오늘은 분명 심술 부리지 않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

엄마는 내 마음을 기어코 몰라주네.

엄마, 건강하고 기쁜 마음으로 사세요

이 빵 드시고 ...

엄마가 좋아하는 빵 또 많이 사 드릴게요 ^^*

 

2009/5/8 ... 텅 빈 친정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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