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머니가 마늘캐러 오라시는데 바빠서 못 간다고 거절하였다
어머니의 말씀에 거역하는 마음이 어찌 편할까?
전화 끊고 이리저리 다시 바쁜도 꼼꼼하게 챙겨보니
두어시간 공백이 생긴다
부랴부랴 압력밥솥에 오곡밥을 앉혀 부러러 끓여 뜸들이니 어찌나 바쁘던지
게다가 고작 조기 한마리 굽으면서 온 세상에 비린내를 퍼뜨리고 ...
허겁지겁 도시락에 막한 밥 싸서 가방에 넣으니 뜨거워서 까딱 잘못하면 데일뻔한 사고로 이어질 상황으로
허둥대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어찌저찌 일은 깡통 굴러가듯 잘도 굴러 가더라는...
마음 바쁘게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니 출발하던 버스가 다시 서 주네
어찌나 고마운지 기사아저씨께 몇번이나 고개 주억거리고 ...
일단은 송정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기사아저씨는 금방 송정에 떨구어주면서 일 많이 도와드리고 오라신다.
그럴게요 ... 라는 인사를 남기고 시골길을 달려갔다
밭 근처의 가파른 언덕길로 오르면서
가방속에 챙겨 간 장갑을 꺼내 끼고 가져 간 시원한 물까지 꺼내들고 밭으로 갔더니
이미 마늘밭 한 고랑씩 맡아서 부지런히 마늘을 캐고 계시는 어머니와 이모님...
사람이 오는줄도 모르고 따가운 햇살아래 오로지 마늘캐기에 열중하고 계신 뒷모습이 가슴을 찡하게 후빈다.
"어무이예, 시원한 물 가져 왔어예 한컵 마시고 하이소
이모님, 이리로 오이소 더워예 시원한 물 한모금 드시고 조금 쉬었다 하세요"
"이기 누고 지은에미가 못 온다 안 캤나 바쁜데 우찌왔노?"
"이리저리 시간을 조금 조절 해 보니 두어시간 짬이 나서... 밥도 해 왔어예"
"아이구야 고맙거로 밥은 무신 밥 그냥 와도 되는데 ..."
어머니가 무지 좋아하신다
못 오겠다고 전화로 딱 잘라 말씀 드리고 보니 마음이 영 불편하여 급히 달려오니
땡볕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갈증을 느끼며면서도 참고 마늘캐기에 바쁜 두 여인들의 뒷모습만 마주한다. ...
시이모님, 오히려 시어머니보다 나랑 더 친한 이모
친정집 옆에 살아서 어린시절부터 시시콜콜 서로를 잘 아는 엄마같은 이모님
오늘 동생의 부탁에 새벽부터 달려 와서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일하신다.
27살에 아들 하나 두고 청상이 되신 이모님...
언제나 마음이 바빠 제대로 앉아서 일도 못하시는 어머니
내일은 많은 비가 쏟을거라 하니 비 오기 전에 일 끝내 놓으려고 ...마음이 엄청 바쁘다.
어머니가 덥다고 시원하게 하얀 옷 입혀 준 허수아비는 거드럼을 피우다가 또 한들한들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기도...
젊은 시절 얼마나 예쁜 이모님이셨는지 . 이모님의 방 벽에는 27살 젊은 나이에 군인이던 남편과 찍은 사진이 아직도 걸려 있다.
어린시절, 이웃에 사는 이모님의 방에 놀러 가면 벽에 걸려 있던 예쁜 각시가 늙지도 않고 벽에 붙박이 되어 걸려 있던 것이
잊을 수 없는 한장의 흑백사진틀이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고향집으로 돌아 온 이모부가 갑자기 병이 나서 덜컥 돌아가셨다.
원인 모를 병으로...
꽃만큼이나 예쁜 아내와 두살바기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이 감겼을까?
그런 슬픔을 안고도 내색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굿굿하게 사시는 이모님의 속내는 아직도 알길이 없다.
이모님은 어머니의 윗언니로 어머니가 바쁘다 하시면 한 걸음에 달려와서 내일처럼 도와주신다.
평생을 홀로 사셨지만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기쁨을 주는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개그우먼을 하였어도 손색이 없을법한 아까운 재능도 겸비하셨는데...
나 없을때 어머니랑 내 이야기 얼마나 하셨을까?
흉은 또 얼마나 보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괜찮다 그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다 .
해마다 마늘을 캘 때쯤이면 더위가 확 몰려온다.
그렇게 더워야 마늘에 약이 올라 더 매워지고 단단해 진단다.
허수아비가 입은 옷이 아주 시원 해 보인다.
어머니는 허수아비도 계절마다 옷을 갈아 입혀 주신다
허수아비는 복도 많다 손끝맵시 좋은 주인을 만나서 깨끗하고 시원한 여름옷도 입어보니...
작년 가을에 마늘 심는다고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어제같은데 벌써 마늘을 판다.
어머니, 김말연여사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 오신 분
순엉터리인 며느리 앞에서도 이렇게 선듯 모델이 되어 주신다.
내가 끌고 가겠다고 하니 언덕길로 끌고 갈때는 요령이 필요하다시며 시범도 보여 주시고...
에구 그만 쏟으셨다
소쿠리안의 마늘이 앞 뒤의 균형감각이 깨어진듯 ...또 다시 주워 담고 ...
"요것도 담을때 잘못 담아서 그런기라 인생길이 실패가 얼매나 많더노 마늘담기 또한 그와 마찬가지제 ..."
어머니의 인생길에 끼여들어 훼방을 놓는것이 어디 소쿠리에 담긴 마늘이 쏟아지는 것 뿐이랴?
아무리 생각해도 이모님은 미인이시다 .
갑자기 생각에 잠기는 어머니
양귀비꽃 , 마늘밭에는 종종 양귀비꽃이 마늘과 함께 피어난다
정말 예쁜 꽃 ...요것이 아편, 마약의 원료가 되는 것
잎사귀에 밥 싸서 먹어도 맛있다 조금 억새긴 해도...
어린시절 배앓이를 종종 하였는데 그럴때면 엄마가 양귀비 말린것을 가져다가 가루내어
먹으라고 하셨다 그러면 아프던 배가 언제 아팠냐는듯 감쪽같이
괜찮아지던 기억 ...지금 생각해보면 아편? 집집마다 상비약으로 아주 조금씩 있었는데...
양귀비는 마늘밭에서 잘 자란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
요 한뿌리의 양귀비는 단속대상이 아니라니 다행이다.
만약 마늘밭 전체가 양귀비라면 분명 정찰기가 뜬다 들키면 벌금을 물게 되고...
하지만 양귀비꽃 예쁘긴 정말 예쁜 꽃이다
(서양에서는 파피꽃이라 하여 축제도 열리는 것으로 아는데)
빨간 양귀꽃이 마늘밭을 점령한다면 너무도 고와서 탄성을 내지르고 만다.
정말 예쁜꽃 ...예쁘다 못해 고혹적인 꽃 ...
양귀비를 사랑한 당현종이 생각난다. 당현종이 훗날 양귀비를 목졸라 죽였다는데
아름다운 양귀비가 죽어 간 모습은 어떠했을까?
마늘밭에서도 엉뚱한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 드는 것은 어찌해야 하나?
어머니의 마늘밭 언덕 위로는 백령도아지매의 마늘밭이다
아지매는 햇살에 타지 않으려고 칭칭 동여매었다.
그렇다고 햇살이 얼굴로 기어들지 못할까?
올해도 마늘풍년이 들었을까?
별도움도 안되는 며느리는 슬그머니 밭을 내려온다.
고작 몇번인가 마늘을 날라다 주고 몇 뿌리 파 보는 것으로 열심히 일한 생색을 낸다면 크나큰 착각일테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달아나려는 핑계쟁이에 불과한 며느리의 마음을 어머니는 읽으셨겠지만
아무런 내색않고
흙묻은 손으로 어여가라고 손을 내 저으신다 .
떠나면서도 당당하게 마늘에게 던지는 이 한마디
" 더 단단해져라 , 그리고 더 매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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