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양이 오랜만에 밤버스를 타고 고현으로 간다
키는 작지만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당당하게 버스비 550원을 내고
아빠, 엄마가 사는 집으로 간다.
엄마랑 약속한
일요일 아침산책도 하고, 이야기책도 만들고 ,밀린 방학숙제도 할겸.
일요일 아침 ,
"엄마, 빨리 아침산책 가야지 어제 약속한 아침 산책말이야"
녀석 기특하다 간밤에 한 약속쯤은 깡그리 잊어먹고 아침이 늘어지도록 늦잠을 잘줄 알았는데 ...
달랑 물한병 챙겨 들고 초록불(보행자불)이 4초 남은 시간 쏜살같이 뛰어 횡단보도를 건넜다
급하게 뛰어 건너는 모습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을테지만 더운 여름날에 다음 불을 다시
기다리는건 그리 유쾌한 일이 못된다.
곧 수빙공원 가는 둑길로 올라서서
운무속 에 갇힌 계룡산의 반쪽짜리 초록산을 바라보며 걷는다.
"그기 나무 뒤에 누구야? 오호라 가나공주님이구나 "
"엄미, 또 사진 찍었지 "
"그럼 이번 여름에 가나랑 사진일기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사진일기? 그것도 재미있겠네 햇살둥지방 친구들이랑 여름이야기를 ..."
" 맹콩자,기팔이, 뚱딴지, 삼식이, 달구,멸구, 뚝배. 클리브랜드다 !!!"
"도대체 얘들은 다 누구냐 "
"누구긴 ? 모두 가나공주지 ㅋㅋ 일인 다역을 하는 유명한 가나배우를 엄만 몰라?"
" 글쎄다 우리 가나양이 배우였다고???
"클리브랜드는 미국의 22대 24대 대통령이었는데 어린시절 친구랑 도둑질도 하고 담배도 피우는
불량청소년이었대 그런데 하느님께 기도하며 착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였고 열심히 공부하여
대통령이 되었대 "
"우리가나 책도 많이 읽었구나 학교에 가더니 똑똑해졌네"
라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어마마마 빨리 오시지요 "
못본 사이에 가나의 말솜씨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학교에 보내길 참 잘했구나 .
이쯤에서 덥다고 꼬마배우가 그만 시큰둥하며 인상이 일그러진다.
더워 엄마, 걷기 싫어 ...
하긴 어른이 걸어도 갑갑하고 등에 땀띠가 나는지 콕콕 쏘는데...
수빙공원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더 이상 나아가기를 포기한 가나는 흘러가는 강물만 바라본다.
강의 언덕을 휘휘 감고 올라오다 혹은 옆으로 줄기를 세포분열하듯 펼쳐나아간 박꽃넝쿨들이
하얀 박꽃을 달고 치렁치렁 넓은 강둑을 넘쳐난다
달밤에 초가집 지붕에 피어나면 슬프도록 고운 꽃...박꽃
사내와 여자가 빈 박스를 가득 싣고 텅 빈 아스팔트 길 위를 지나간다
문득 뒷집에 사는 실직한 사내 생각이 난다
저 사람들 실직한 가족들은 아니겠지...
다리난간에 매달려 새로운 관심거리를 찾는 작은아이
오잉 저 강물에 헤엄치는 건 뭐야
소금쟁인가? 장수하늘소인가?몰라몰라
엄마 가르쳐 줘
마침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가는 할아버지께 여쭈어본다
"할아버지, 물 위에 둥둥 떠 가는 저것들이 뭔가요?"
"저것은 소금쟁이 같기도 하고 거미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는데. 곤충은 잘 몰라 .."
"파브르는 곤충박사니까 그럼 책에서 찾아봐야지 뭐 "
하고 중얼대는 가나.
어른들은 가나가 궁금해 하는 강물위에 둥둥 떠 다니는 곤충의 이름을 시원하게 알려 주지 못했다
너무 멀리 있어 줌으로 끌어 당겨보지만 여전히 고 작은 것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강아지풀이 스프링같네 ㅎㅎ
라며 언제 강아지풀을 뜯어 손바닥에 올려 놓고 한참을 들여 다 본다.
강아지풀~~~
고현천 바닥은 부유물이 가득 쌓여 있고
그기서 사는 곤충들은 참 행복하겠다.저들만의 세상이라서...
여름 햇살도 강물속으로 기어든다
부유물이 가득 쌓인 강물속에 다이빙한 햇살은 시원할까?
그래도 좋다
자연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으니...
이제 곱던 자귀나무꽃이 지고 만다
멀찌감치서 바라보아야 고운 꽃이 되어버린 자귀나무꽃.
계룡중학교는 그래도 좋겠다
고현천이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으니...
더워서 물한모금 꿀꺽
아예 입에 대고 빨아대는 갈증난 가나
힘이 빠지는 모양
고작 40분 정도 걸었나?
아이들의 관심사는 고작10여분 그 이상이면 집념이 강한 아이라는데...
7월도 벌써 다 흘러가버리고 밀려버린 일기며
숙제도 많은데 하고 싶은 것은 정작 새로운 것들이니 .
책 읽고 등장인물 따라 하기
요즘 가나는 배우가 되고 싶단다
그래 올 여름방학은 책 많이 읽고 방문 걸어 잠그고 혼자서 실컷 배우가 되어 보거라
가나가 하고 싶은것이 연극이라면 해봐야지
엄마도 어린시절 소꼽놀이하면서 공주님도 되어 보고 성냥팔이소녀며
빨강머리앤도 해 보았지 정말 재미있었어
그래 가나도 해 보는거야 공주,왕자, 대통령,검사,판사 그리고 바다로 고기잡이
나가는 어부며,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을 다
연기 해 보는거야 야쿠르트 배달하는 아주머니도 되어 보고.
설령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
과학자가 되고 싶다던 첫번째 꿈이 바뀌는 순간이다(1학년 여름방학 때)
"꿈 꾸는 한스"를 읽고 나더니 (안데르센)
너무 재미있어 한스처럼 살고 싶어졌단다
가난한 구둣방집 아들이었던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은 어린시절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했고
14살 때 고향 '오덴세'를 떠나 '코펜하겐'으로 가서 좌충우돌 멋진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 책"꿈 꾸는 한스"를 읽자 한스가 너무 좋아져서
날마다 한스로 살고 싶어진 아이 .한스에 빠져버린 아이...
겨울방학때쯤이면 가나는 또 다른 꿈 꾸는 한스가 되어 키를 한뼘 더 성큼 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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