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아침이 살짝 한가해지려니 전화벨이 울린다
받아보니
" 지은에미야,,나 혼자 마늘을 달려니 몬 달것다 심이 딸려서 어서 오이라 알았제 "
그리고 전화가 툭 끊긴다.
어머니의 호출은 언제나 땡비다.
무슨 핑계를 댈 시간도 주지 않고 ...
입은 옷에 그대로 달렸더니 때마침 버스가 기다렸다는듯 태워준다. 1,000원짜리 한장 낼넘 받아 먹는 머니박스가
넘 웃긴다. 돈만 밝히는 머니박스~~~
텅 빈 차의 그늘쪽으로 골라 창가에 앉자 이내 졸음이 스르르 달려드는지라 쫒지도 못하고 잠속으로 빠져 들었다..
차를 타자마자 조는 건 멀미라던데.....맞나?
향긋한 잠속으로 빠져들어 달콤한 낮잠을 즐기다가
어디쯤에선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눈을 번쩍 떠 보니 송정이다. 얼마나 다행한지...
버스에서 훌쩍 뛰어 내려서 휴 하고 안도의 숨을 내 쉬며 마을길로 곧장 들어서니
송정의 들녘이 새파랗다.
초록이가 점령한 들녘을 보며 터벅터벅 걸어가니
송원네 아저씨가 논에서 혼자 일을 하신다
아저씨께 인사하고 하나씩 벌려 놓은 모판이 신기하여 여쭤보니
이양기로 모를 낼거라신다.
넓은 논바닥에서 아저씨 혼자서 일을 하시면 힘들고 심술도 날텐데...
몇개나 되는 삽은 왜 논바닥에 꽂아 놓으셨는지?
아저씨는 폰으로 걸려 오는 전화도 받으신다 .
요즘 모내기 하는 풍경은 예전과는 달리 참으로 느긋하고 한가롭게 보인다
논바닥을 쓰데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렇게 보이나?
주황색 긴 고무장화를 신고 괭이를 든 영혜네아저씨는
늙으막에 온 동네 농사일을 도맡아 하신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배를 타시더니...
농사일은 정말 바쁘고 몸도 피곤하게 한다.
게다가 돈도 안되는 일인데
묵묵히 잘도 하신다 . 어질고 착한 아저씨
송정마을에 아저씨가 안계시면 농사일은 누가할까???
송정에서 맨 꼭대기에 터 잡은 어머니댁은 꼭 등산하는 기분이 든다.
한 동안 딱딱한 시멘트길을 걸어가다가 또 오르막 길을 오르다가
꼬불꼬불 돌다가 ...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보니 아직도 송원네아저씨는 폰전화로 여전히 통화를 하신다
전화 받는다고 저렇게 많은 논일을 언제 다할까?
길 가는 사람이 괜한 걱정을 사서 하나?
햇살은 벌써부터 머리위를 톡톡 쏘아댄다 고작 오전 10:14분인데 ...
머리밑이 갑갑하여 모자를 한번 벗어 머리를 흔드니 상쾌하다.
다시 모자를 눌러 쓰며 부지런히 걸어가니
영혜엄마가 마늘밭에서 마늘을 캐는 풍경이 나타난다.
샘이네 할머니와 응화아저씨 아지매는 다리가 아파서 일을 못 거들고 언덕에 앉아서
애도문상을 가야하지 않겠느냐고도 하시고
옛날같으면 국상중이 아니냐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하신다.
노인들의 복지정책을 잘 펴 준 멋진 대통령이었다고 나름대로 평가도 내리고...
마늘캐는 일이 지겹지 말라고 말동무가 되어 주는 풍경도 정겹다.
쪼그리고 앉아서 마늘 캐는 아지매들이 땡볕에서 하는 일은 인내를 끝없이 요구한다.
밤에는 삭신이 쑤셔서 끙끙 앓을 아지매들.
두 할머니는 집으로 가신다
가만이 앉아 있어도 다리가 아프시다고?
젊은 날 얼마나 심한 노동을 하였는지 안 봐도 알겠다.
송정리
모내기를 하고 남은 모춤을 논바닥에 심어 두었다
혹시 땜질할 공간이 생기면 다시 심으려고...
연꽃인가?
작은 암자
감로사를 지나다가...
어머니네 집에 도착하니 언덕위의 감나무에서 감꽃이 툭툭 떨어진다.
올해도 감이 주렁주렁 열릴까?
집에 도착하여
소리쳐 불러도 어머니의 낭낭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집안을 한바퀴 휘돌다가 뒷밭으로 올라가다
오디가 주렁주렁 달린 뽕나무를 보고
꽃만큼이나 예쁜 오디에 홀딱 반해
손이 저절로 뽕나무 가지로 간다.
ㅎㅎ 이 뽕잎을 따서 며칠전 구조라에 가져갔는데
억새서 못싸먹겠다고 그랬지
그냥 싸서 먹으면 되는 줄 알고. 얼마나 많이 따갔는데...
열매야, 너는 이름이 모냐
살구냐? 매실이냐?
벌써 빨갛게 익어 가는 것도 있으니
햇살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때죽나무의 별꽃이 툭툭 떨어져 취나물 위에 누웠다.
하얀꽃이 시리도록 곱다.
때죽나무꽃이 지고말면 ...
햇살 쨍쨍 쏘는 여름이 온다.
탱자도 탱글탱글 익어 가고.
탱자, 가라사대...
꼬불꼬불 언덕길 올라 뒷밭으로 올라 어머니를 찾아 불러 본다.
"어무이예, 어디 계세요?"
"응 나 요기 있다 깨밭에, 요기로 온나 깨밭 매고 안 있나""
어머니를 찾았다
깨밭에 계시다네 ...그럼 깨밭으로 또 올라가야지 층층이 계단인 깨밭으로...
2009/05/28 10:25분에 ...앤
그러고 보니 노무현대통령이 작년 오월에 서거하셨구나
세월 한번 빠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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