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흐린 가을날 나에게로 쓰는 편지

이바구아지매 2010. 9. 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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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그리메가 산자락의  햇살을 거두어  가려는 오후 시간

엄마가 홀로 계신 친정으로 달려 갔다 

 

 

 

그녀가 대문을 들어서자   덩그렇게  큰 집이  반갑게  맞아준다.  

지난 여름의 더운 햇살을 그늘로 시원하게 식혀주었을법한  정문가의  팽나무도 여전하고

작은동산이 집주위로 에워쌓는지,  집이 산속으로 빨려 들어갔는지 ,  애매모호한

경계를 아직도 분명하게 하지 못한채 자연속에 야트막하게 자리잡고 서 있는

그녀의 옛집 (태어나고 자란 집)을 찾아가니

 

여든일곱살 늙은 엄마는  여전히  텃밭의 어린 배추를  돌보느라  딸의 발자국

소리도 눈치채지 못하고   다시  뒤돌아서서

작은 키속에 얼마 되지도 않는 고추말리기에 머슴같은  큰손으로 휘휘 젖으며 바쁘셨다

지는 햇살 한줄기도  아껴 쓰는 알뜰한 모습으로 분주히 오가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반긴다

"추석 잘 보냈나 ? 별일없었나?   얼마만이고 아이들은 공부 잘 하고?.."

대답도  할 사이  없이  쏟아지는 궁금함을  

빈 항아리에 담기라도 한다면  한항아리를 차고 넘치겠다.

 

 

 

오늘 친정에 발걸음한  핑계는 엄마도 보고  양하를 뽑아 가려고 걸음하였다.

남새밭  비스듬한 언덕배기에서  대나무와 죽은 밤나무 그루터기와 함께 엮여서   뿌리내린 후로

해마다 가을이면 그 독특한 향기와 알싸하게 씹히는 맛으로 입맛 돋게하는  

가을 반찬으로 양하장아찌를  먹는 즐거움을   올해도 여전하게

이어갈것 같다

생강과에 속하는 양하

 

 

 

 

 

 

 

양하잎새 ...댓잎을 닮은

                           

 

 

 

생강냄새를  닮은 향기를 날리는 양하는

꽃또한  특별하게 곱다

동양난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양하꽃,..

키큰  잎새는 하늘을 향해 있고 

꽃을 단 뿌리는 땅에 딱 붙어 햇살 구경 한번 제대로 못하고도   숨어서  예쁜 꽃을 피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려고 꽃피우는 것도 아닌것이

 

은은하고 내밀한 아름다움을  꽃대위로 피어 올리다  스스로 지고 마는 음지식물인

양하

마치 조선시대 양반집 참한 규수같다.

 

 

 

 

 

 

독특한 향을 날리는 양하

올해도 가을반찬으로 밥상위에서 사랑받겠다

그녀는 물론 그녀의 남편도 무지 좋아하는 양하 장아찌

깨끗하게

씻어  물기 꼭 짜서  고추장속에 박아 둘까보다

 양념 조물조물하여 무쳐 먹어도 별미라서

10,11월의  반찬으로  그만이다.

생강향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처음 먹어도 이내 그 아삭함에 반하고 말 색다른 반찬 .

 

 

 

 

오랜만에 온 친정집이라 집 주위도 궁금하여

 집을 나서니  곧장    윤씨정열각이 나타난다.

 가끔 지나가는 여행자들이 사진속으로 끌여 들여 가기도 하는 비각하나 ...

 

 

 

 

 

 

돌담을 에워 싸고 뻗어가는 담쟁이넝쿨이    여름을 밟고 지나가는  가을임을 확인한다.

성급한 담쟁이잎새는 이미 단풍옷을 입었다.

 

 

 

 

 

 

 그리 넓지 않은 집앞 들녘

농부네 부부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추석을 지나고 객지 가족 막 보내놓고 

 한숨 돌릴 사이도 없이  밭일을 한다

오늘 일하지 않으면 안될까?

여유 좀 부리면 안될까?

 

 

 

 

 

건넛마을 (죽동마을)  

마당 깊은 집앞에서 바라 보면 다리 건너 ...

 

 

 

 

 

마을 앞으로 흘러 가는 죽전천 

하늘이  물속으로 놀러 왔다가  그만 

나르시즘의 웅덩이에  풍덩하고  자멱질하였나?

 

 

 

 

 

나락은 익어 풍년이 들었고 자전거라이더는 폐달을 열심히 저어 마당 깊은 집앞을 지나간다. 

 

 

 

 

 

 

 둑방길에는 가을꽃이 가득 피어났고

둥글넙적한 호박한덩이는 둑방길 언덕에 터 잡고 펑퍼짐하게 널부러졌다.

 

 

 

 

 

 

 오메 풍년이 들었소 .

갑수 어메요.

 

 

 

 

 

 

 감낭개에 드문드문 매달린 감은 추석날 따내릴까봐 간이 콩알만했을게다.

가을이 다가도록 감낭개에 올라 앉아 세상 구경하는 재미 얼마일까?

감   들   은    참    좋    겠    다.

석달열흘동안  옹기종기 매달려서  쫑알거리며 찬란한 가을햇살에  

빨가니 익어가면    되는 녀석들이니...

 

 

 

 

 

 

 

 그녀의 늙은 엄마도

담너머  이웃에 사는 갑수네의  거름손

(  별 성의없이 함부로 하는 듯 하지만   곡식이  잘 되는 손)도 

깻단 털며  비설거지를 거든다.

하늘은 먹장구름을 가득 이고   오락가락하며 겁을 주는 시간.

 

 

 

 

 

어둠 마당 깊은 집을 감싸고 돈다

그녀가 태어나서  자란   한옥집  초록색 기와집이었다가

이제 빨강 지붕으로 스케치한 집

백살도  훨씬 넘은 역사를 주렁주렁 꿰어 찬 집

그녀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

 고종황제 재위기간(1863~1907) 중 후반기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집.

일제강점기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6.25 한국전쟁때  흥남피난민들을  받아 들여 보듬어 준  마당 깊은 집

그녀가  뛰놀며 꿈을 키운 집

할아버지,아버지, 그녀, 그리고  대를 이어    손자와   그 손자의 아들,딸들이 지켜가야 할

 반석 단단한 집 .

 

 

 

 

 

 

 

 보기에는 평범한 집이지만

뿌리 깊은 집 

그 집에 그녀의 늙은 엄마가 살고 계신다

고추,  무, 상추  배추 심고 들깨향 날리며 자고 일어나면  

날마다 텃밭으로, 동산으로, 왔다갔다 분주한 일상

   

  20리길은   됨직한 거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걷는 진정한    도보꾼  엄마.

그녀의 여든 일곱살  추석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

 

 

 

 

 

 

 

 

 

 

그런데  순간 참으로 이상하리만큼 뇌리에 언듯 스치는   기묘한  기분

 

 무심코 들어 보니  엄마의 목소리가 수상하다  목이 꽉 잠긴듯한 ...

"엄마,   목소리가 왜그래요  혹시 우셨어요?"

"  자꾸만 눈물이 나네   ...할말이 생각나지 않고 목이 잠기네"

"왜 눈물이 나요 즐거운 명절끝에...?" 

"네 동생댁이 많이 아프다는구나 위급한 중병이라네 "

그 말 듣는 순간 앞이 캄캄해진다

"할수없지  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  받아 병원비로 보태주어야지

아니면  팔아볼까?

며칠후면   수술을 한다는데 

내가  가진거라고는  이 집 밖에 없으니 ..."

 

이게 웬 날벼락인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

 울컥하고  화가 먼저 치밀어 오른다.

"엄마는 왜 이 집을  팔려고  하세요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을텐데

  집은 꼭 지켜야 해요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들의 추억과  , 가족사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돈과 바꿀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집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위로의 말로 안심을 시켜 드려야 함에도 오히려 오기만 생긴다.

그녀는 아직 철들이 않은 모양이다.

 엄마는   슬픈 마음으로 등을 보이며 딸에게 미안한 마음 들키지 않으려고

어둠속으로  말없이   걸어가신다  

결심을 굳게  하셨는지.

 

마당 깊은 집을 나서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아낌없이 주기만  했던 집

엄마가 밉다. 

 야속하다 .

빌려 쓴 집 깨끗하게 쓰다가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 할 이유가 분명한데

 

 

사람이 먼저라는 ,  며느리 사랑이 하늘에 닿았음을  

 

 받아 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가 사는 집은 또 어떤  존재인가? 

 

 

올 추석은 그렇게 쓸쓸하게 지나간다.

달도 뜨지 않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