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가을걷이 , 벼낟가리 가득한 들녘에서.

이바구아지매 2010. 10. 2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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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  23(토)

 

 

부산으로 가는 길에 고성 어디쯤?

그러니까 고성 톨게이트 부근이었던 것 같다

날씨는 잿빛으로 찬기가 묻어 나는 시월이 하순으로 내달리는 어느 토요일 오후

피곤하여 운전을 계속하기 힘들다며

부산까지 대신  운전 해 가자고 남편이 부탁한다.

"가딱 잘못하여 "운수 좋은 날"이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냥 여기서 잠깐 눈 부치고 있어요   그 동안  논길로 내려가서 가을걷이 구경 좀 하고 올테니..."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길에서 한참을  들길 걷게 될줄이야

그것도 낯선 들길 혼자 걷는  기분도 가을속으로 어우러지니 바라보는 그림으로 운치가 그만이다.

 

 

 

 

 

 

 

 

  익은 씨앗 주머니를 도톰하게  달고 앉은뱅이처럼 야트막한 언덕에 기대어  부비대는 들풀들과

갈바람에 한들거리는  억새의 춤을 지그시 바라보다 한길을  내려서자  생각지도 않은   굴다리가 반긴다.

사각공간으로 내다 보는 재미를 보태 주는 굴다리 밑을 살짝 지나가 보니

그 옛날 소가야의  명성을 잊지 않고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 온 고성의 너른 들판이

바둑판처럼 이어진다. 

언젠가 이런 풍경을 무심코 사진속에 담아 본 일이 있었는데

역시 생각지도 않은  사진속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떡하니 서서 피리를 불고  있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비록 연출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사진속에서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멋진 사진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토요일이라  고향집을 마음 먹고 다녀 가는지 빨강지붕집에서 나온 사람들이

차의 뒷트렁크에  바리바리 고향의 가을을  싣는 풍경도 운치있어 좋았지만

그 곱고 넉넉한  풍경을 보느라고 그만 그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말았다.

 

 

 

 고성IC에서 오른쪽  들녘을 바라보니

제법 쌀쌀한 초겨울 기운이 느껴진다

농로길을 따라 걸어가니 벼탈곡하느라

 눈,코 뜰사이없이 바쁜 모습이 눈에 밟힌다

꽃무늬 프릴 달린 원피스와 하이힐만 신지 않았어도  그냥 달려가서

몸배 하나 얻어 입고  일 도와 주는건데 ...

 

 

 

 

 

 

 

농로길을 따라 가을을 밟고 지나 가 본다

택택거리는 탈곡기 소리를 들으며

 

 

 아직 베지 못한 벼이삭이 논배미를 가득 채우고 서 있어 그나마  들판이 아직은 황량하지 않다

곧 텅 빈 들판의 황량함을 마주할  시간이  오겠지

아니 저 탈곡기 뒷벽에  겨울빛깔이 벌써   묻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억새들은 또 잘 말라서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지키고 섰던

논둑을 남겨두고  바람 타고 훨훨 날아가고 말겠지.

 

 

 

 

 

 

 그림속으로 들어 온 벼 낟가리

어린시절 논바닥에 벼 낟가리를 쌓느라고 꼬막손으로 볏단을 날라다

언니와 오빠를 도와 쌓던 기억도 잘 그린 수채화처럼  떠 오른다.

달빛이  논골에 훤히 내리 비추던   11월의 쌀쌀했던  달밤도

반달배미 논바닥에서  뛰놀았던 유년의 놀이터였던  물뺀   논배미도...

 

 

 

가을도 이제 고개 숙이고   꼬랑지를 내리며 오그라진다.

논둑에 베어 눕혀 놓은 벼는  하얀 엑기스를 모은  열매 맺어 찰랑이며 뽐내던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할 시간이 곧 도착할 모양이다

가을이 짧았던  시간여행을 마치고 떠나면 긴  겨울이   곧 도착하여 들녘을 점령할테고

 고성의 어느 들녘은 가을을 거두어 들이는 중이다.

 

 

 

 

 우연히 낯선 들길에서 ... 

이런  색다른체험 해 보는 것   알싸하고  낭만적이다 .

 

 

 

 

 

 

 

 

벼 낟가리 잘 쌓으면 내년봄까지 갈까? 

농부는 여전히  벼 낟가리 쌓아  놓고 겨울을 날까?

 

 

 

 

 

 

 

 

 

 

이제 소가야의 어느 마을 사람이 떠나가려나 보다

시골집에서 가을을 수북히  챙겼는지  흐뭇한 미소 한자락  마을길에 뿌려놓고...

갈길 바쁜 차엔진소리가 조용한 들녘으로  스며든다.

 

 

 

 

 

가을  들국화도   이제 꽃잎 말려 떠날 채비를 하는 마지막 꽃춤을 

 한바탕 추려고 지나가는 바람 불러 세운다.

 

 

 

 

 

 

 

 

 

 

들길 걷다가 그만 바삐 가도 시간에 쫓길터인 토요일 오후 시간에

이렇게 한가로이 가을을 밟고 서서 독백을 해도 괜찮을까? 

 

  

 

 

 

  해는 막  서산을 넘어 달아나고

뉘집에선가  하얀연기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여름이 지났으니  모깃불은 아닐테고

타작하고 지푸라기 모아서 태우는걸까? 

차를 타고 달리다 만난 하얀연기 창문 열어 코끝으로 들이마셔본다.

지푸라기 타는 냄새가 코끝에 스미니 기분 알싸하니 좋다.

 지푸라기 작두에 싹득싹둑  썰어 콩껍질과  왕겨,쌀겨 넣고 

쇠죽끓이면  잉거불에 뜨끈해진 방바닥,

그 찜질방에서   배 깔고 누워 장작불 타닥거리는

소리 들으며 흙내와 ,불내 맡으며 스르르 잠들어도 좋으리.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로 들어서는  소녀의 뒷모습은  

마치 엄마가 막한밥 차려 놓아 김  솔솔나는  고봉밥과 된장찌개가

  기다리는 집으로 달려 가는  듯 .그 모습이 밝고 환하다.

 

 

 

 

 

 

 

 

 

 시월의  끝자락이 달력에서  달랑거리는 토요일 오후

차창밖으로 다가왔다 지나가는 시골풍경은

 마음 바쁜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놓아 주질 않는다.

 

 

 

 

 

 

어느새 어둑발이 커튼되어 드리우는 시간,  마창대교를 지나간다 

가야 할 곳은 아직 멀기만하고

생각은  늦가을이란 그물에 휘감겨서   빠져 나가지를 못한채  다리위에서 춤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