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故 피천득의 소설 '인연'을 이야기 하다

이바구아지매 2011. 5. 25. 08:18

 

 

 

28726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

 

 

 

 

 

* 1989년 서울 안암동 동방서적에서 남편이 사다 준 '금아문선 '*

 

 

 

  고 피천득 할아버지의 소설  '인연'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한번  해 보고자 한다.

 

오늘은  고 피천득할아버지 추모 4주기가 되는 날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얼만 전 그의 제자 석경징(75) 서울대 명예교수가  

피천득의 '인연'은 수필이 아닌 소설로 분류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글을 서울신문 기사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513025003로 읽은 적이 있다.

석교수는 이렇게 된 까닭에 대해 1959년 모 출판사에서 '금아문선'을 발간할 때 

 시가 아닌 작품은 모두  수필로 분류하면서  소설로 쓴  '인연'도 그렇게 되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선생님 생전에 '인연'은 소설로 바로잡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 드렸더니 선생님의 성격상 빙그레 웃고 넘기셨다고 한다

국민 수필가로 알려진 금아 피천득의 대표작' 인연'에 등장하는 여인 아사코는

  금아가 애타게 보고 싶어했던 여인이 아니며  단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

그 동안 '인연'은 교과서에 소개 될 만큼 유명세를 탔고 ,  연민의 정을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한  자전적 수필로 알려져 있었다.

석 교수는 서울대 영문과 재학시절 '금아문선'을 출간 할 때 금아의 원고를 교정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학창시절 ,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수필을 꼽으라고 선생님께서 물으셨다면     피천득의 '인연'을 주저없이 꼽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아릿한 첫사랑의 시작은 피천득의 수필 속에서 수줍게 미소 짓는   성심여학교에 다녔던 소녀  아사코처럼

시작해야 한다고, 무조건 우겼던 시간이 있었다.

오늘부터 나에게 '인연'은 수필이 아니라 소설이 된다는 사실을 괴롭지만  기억해야한다.

소설이라는것도  결국 현실세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수십년간 개인적으로도  연인처럼  좋아했던 수필 '인연'에 대한 슬픈  인연의 바톤을 이제  소설쪽으로

넘기면서 한마디 푸념의 주절거림도  없다면  그 또한 허망할테지.

 

오래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는 순간 우리반 어떤 남학생으로부터 졸업선물로 받았던' 금아문선'

정확히 누가 선물하였는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책이 내게로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닌 학교에서 유일하게 남녀공학반이었던 우리반은 여학생의 숫자는 고작 12명이었다

남학생은 27~8명 정도로 졸업하는 우리들만의 특별한 추억이 될만한 선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누군가의 의견에 따라

남학생은 시집과 수필집을 여학생들에게 선물하게 되었고 여학생들은 정성을 쏟아 짠  목도리를 남학생들에게 선물하게 되었는데

그 때 남학생들이 무작위로 선물한 책을 골라 잡은 것이  바로 '금아문선'이었다.

어떤 남학생의 탁월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에  갖고 싶었던 책이었기에  퍽이나 기분 좋았었다.

고운 포장지를 뜯고 책을 열자 피천득의 대표작 수필  '인연' 이 튀어나와 반겨 주었다 .

학창시절 이미 교과서에서   배우기도 하여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좋은 책

가까이 두고 언제든지 보게 된 것은 작은 설렘이 되기도 하였다 ..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책을 친구가 빌려 가서 달라고 두세차례 독촉해 보다가  주지 않아 결국 받지 못하고 말았다

금아문선 속 수필  '인연'은 그기서 끝나는듯 하였지만  

훗날  결혼을 하여 서울에서 살 때 독서광이었던   남편이  어느 날  ' 금아문선'을 학교 옆 동방서적에서 샀다며

이번에는 샘터가 아닌 일조각에서 출판된 양장본 수필집을 건네었다 .

팍팍하고 각박한  서울생활에서도 가끔씩 피천득의 수필집을 꺼내  읽을때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밑줄 그어 가며  읽고 또  읽으며 좋은 수필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나도 저자의 말처럼 서른 여섯 살이  되면 수필이란 걸 한 번 써봐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우유체로 씌어 진 금아 피천득의 인연,  소년 같은 순수하고 맑은  그의 표정 또한

글의 진실된  힘이 되어 주었다고 믿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여우 같은 데가 있어

이제는그런 글들이 다 위선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속았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가 쓴 글들을 하나하나 다시 밑줄 그어 가며

어디가 어떻게 허구인지 찾아내기에 또 몰입하는 얄궂은 버릇이 생겨났다

소박한 인생관을 지닌 그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사후에 대해 작은 바램을 말한 적이 있다

'죽어서 천당에 가더라도 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억울할것도 없고 남의

가슴 아프게 한 일도 없고  신기한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살아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하다고 생각하며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 ,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는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죠  그것도 염치없는 짓이지만...'

이 글은 오랫동안 피천득을 대변하는 글로 한번도 만나보지 않았음에도

글이 주는 힘에 빠져 들게 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보니

이런 표현은 대한민국 전국민을 상대로 한 기만의 말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사코라는 여자는 있었지만 소설속의 거짓 인물이었고  세번의 만남은 없었고, 애틋한 사랑도 없었다니...

2002년에는 수필의 실제 주인공인 아사코를 소개하는   방송도 했다는데 ...

소설임을 이미 알면서 방송을 본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방송을 본 많은  시청자들은 또 어떤 느낌을 받았을는지?

그 뿐만 아니다

 

주옥같은 수필이란 이름으로 교과서에 당당하게 실려서   몇 십 년 동안 엉터리로 공부한 학생들은 또 어떻게 되는가?

 

'사람의 향기' (나무와 숲)를 쓴 박영선 기자의 인터뷰를 보면

"아사코와 연락은 무슨 연락 .. 그 때 마지막으로 본거지요 소식을 알려면 알 수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냥 기억으로만 남기지

지금 찾아 만나봐야 서로 환멸만 느끼지 않겠어요  또 그녀가 살아있을지도 의문이고...'

이런 인터뷰를 했던 금아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작가 최인호와  

이광수도 속았고 대한민국 국민 우리 모두가 아름답게 속았다 .

 

  금아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우리는 거짓이란 말을 생각 해 본 일도 없었다.

 

수필은 중년 고개를 넘어 선 36세 이상을 산 사람의  글이어야 한다고 하시더니

이제 아름다운 수필 한 편을  소설로 시집 보내는 마음이  답답해진다.

한 동안  그 허허로움을 어디서 보상 받을지 또 고민하게 되겠지

 

지금쯤  부천에 있다는 성심캠퍼스는  푸르름의 옷을 갈아 입고  그 곳에 기숙하고 있는 허구의 아사코를 찾아 가는

누군가가 또 있을까?

소설속의 아사코가 내게로 다시 찾아와 미소 지을 날은 또 언제일지...

그런 아사코를 만나러 부천으로 가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겠지

 

오는 주말에는 나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거제대학에 다녀와야겠다.

 그 곳의 여름은 초록으로 아름다울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