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여름비는 나를, 그리고 너를 잊지 않는다

이바구아지매 2013. 7. 29. 18:53

 

 

 

 

 

 

 

 

 영화, 클래식 ' 비 내리는 장면 

        

 

Hi 너에게 난 해 질 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

 

 

 

다시 태양의 계절,  찬란한  7월의 끄트머리다.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내게  올해도 잊지 않고  찾아드는 여름앓이.... 

그런데 그게 참 이상하다 .

  고작 열여덟살 여름에 있었던  참으로 소소한 풍경의 하나였을뿐인데

그해 여름이   잊혀지기는 커녕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래 , 잊을 수 없다면 다시 한번  반추 해 보기...

 

 

 

    

   오래전  7월29일 

 사람들은 작열하는 태양을  즐기며  추억을 만들기 위해 나처럼  여름방학을  이용하거나

 혹은 직장에서  휴가를 받아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사는 것이 풍요로울 때는   아니었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다도해가 있는  남해바다를 찾거나   탁트인  동해바다를  만나러 떠나는 여름이었다.

.

 

 

거제도 옥포, 장승포를  경유 부산을 오갔던 ' 새마을호 여객선 (1시간40분 소요)

 

 

 

열여덟살  여름방학을 맞은

나는 칠월의 꽃으로  피어나서  7가지  신나는 별명을 가진 자귀나무 

 위로 올라 앉아 그네를 타는듯 아름다운 칠월의 꽃을  

 기억하며

옥포항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고 있있다.

 거제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나는 방학이 시작되면  곧장 P시에 가서  자취를 하며

대학을 다니던 오빠와 , 수학선생님이셨던  오빠를 위해  방학 동안   밥도 해 주고  빨래를 하고  또

오빠가  과외수업을  하는 동안  칠판을 닦아 분필가루를 털어내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런 다음 학원에 가서 공부도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가 담궈주신  김치 한바케스와 쌀  예닐곱되가 든 자루를 들고  

여학생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짐꾼의 모습을 하고  배를 탔다.

게다가  교복을 입고  배를 타는 건 정말  속상하고  답답했다.

시골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아서 교복차림이 정말이지 싫었다.

물론 방학이 끝날즈음이면  그 동안 수고했다며 보답하는 뜻으로  

 오빠는 백화점에 데려가서  근사한 옷을  사 주었고 

 나는  뽀얀   소녀로  촌티를 확 벗어던지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그 날도 내가 탔던 새마을호에는  서울 혹은 부산 그리고 다른  도시에서

 학동, 구조라 , 명사, 와현 해수욕장으로  캠핑을 왔다 돌어가는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로 넘쳐났다.

 

 

비틀즈의 ' Let it be '

 

 

그들은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배의  2층 갑판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자유롭게 퍼질러 앉아

  세고비아 기타를  뜯으며 비틀즈의 노래  '렛 잇 비 '를 신나게 불렀다.

 영국 리버풀 지방의  노동자 가족으로 태어난 4명의 청년들로 결성된 비틀즈는 워낙 유명해서

 나도 비틀즈가 부르는 팝송 정도는 조금  알고 있었다.

존 레논, 폴 메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등의 모습은 동네 오빠들처럼   친근한 모습이라 편하고  좋았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한테

가끔씩 비틀즈를 들려 주기도 했었다.

그 날도  햇살은 바다를 향해  쨍쨍거리고  구릿빛으로  태운  도시의 젊은 그들의 모습이

 나름 보기좋았고 노래하며  바다를 달려가는 배안은 음악이 있고  젊음이 있어  싱그럽고 낭만적이었다.

순간  김치바케스와 쌀뭉탱이를 든 나의 촌스럽고  어색한  행동을 그들한테   들킬까봐

스스로 어색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간신히 짐뭉텡이들을  구석베기로  

 밀쳐놓고 나와는 무관한듯 음악을 들으며 자유로웠다.

하지만  배가  너무 복잡해서  마땅히 길곳이 없어   뻘쭘하게 뱃전에 기대 선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눈 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뿌린   뱃길로 부서지는 하얀 포말은 

내 영혼까지  맑은 바람으로  상쾌하고  행복하게  해 주었다.

 

 

1977년 교복스타일

 

 

그 때  어디선가  구릿빛으로 단단히 탄  모습의  남학생 한명이 내게 다가왔다.

"저 안녕하세요  B시로  가세요 ? 저는  D시에서 온 000 입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와현해수욕장에서

캠핑하고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그렇게 너는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말이야   그정도로  말을  쉽게 받아주지 않아  난 우리학교에서 소문난 새침데기였다.

남학생은  몇번이고  말을 걸어왔지만  관심없다는듯 외면했다.

그런데 왠걸  함께왔다는  일곱명의  남학생들이 차례로 와서 말을 걸었다 .

하지만 모두  내 무거운 입을 열지는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선생님께서  적극 나서 자존심 센 여학생의 콧대를 꺾어  보겠다고 동참하셨다.

선생님께서는  까맣게 태운 남학생들을 다시 차례로  내게로  보내셨고  ,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  도도하게 굴었다.

  그들은  시골여학생쯤이야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을 쉽게  열지 못한채  실패하고 돌아갔고  선생님께서도 오기가 생기셨는지 

여학생의 무거운 입을 열게 하면   부산가서 크게 한턱을 쏘겠다고... 히셨다.

자신들은 질나쁜 남학생들이 아니라고  변명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블량해 보였다.

 여튼  그들은 두어번씩  퇴짜를 맞고 돌아갔다.

그런데   처음 내게로 와서 말을 걸었던  그남학생이   다시 내게 와서

작은 종이한장을 내밀더니

"저기요  이게 뭐예요  "

하고  예비승선표를  .빤히  보여 주었다. 

"이건  배 탈 때 검표원한테 주고 타는건데 왜 가지고 있어요 ?  혹시 사고라도 나는

경우에  종이에 적힌  주소와 이름을 보고

찾아서 신원을 확인시켜  주는 거죠 "

"우아  드디어  말을 했어요  예쁜 여학생이  말을 했어요 선생님"
"뭐예요 지금  사람 놀려요  하하하   "

그렇게   운수 좋은 남학생의 재치에 입을 열었고 

 우리는  B시로  가는  1시간  40분동안   음악, 영화, 문학,  학교이야기등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법 친해졌다고 생각한 남학생은  주소를 적어 달라고 종이를 내밀었고  ,편지하고 싶다고 또 우기기 시작했다.

 

배가 B시항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산판으로 내리기 시작하였고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한 남학생은  내게 혹시 들고 가는 무거운 짐이라도 있으면  들어주겠다고

했지만  그럴필요 없다고 했다 .키가 훤칠한 남학생은 헤어지기  아쉽다며  악수를 신청했는데

나는 그만 사정없이  빰을 때려주고 말았다.

 

그만한 일로 뺨을 때려주다니  나도 착한 여학생은 못되는  것 같다.

악수를 신청하다가 퇴짜를 맞은 남학생은 멋적어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배에서 내렸다.

내가 순간적으로 뺨을 때려준데는  아마  김치바케스와 쌀뭉탱이 때문에 자존심이 몹시 상했던 것   같다.

남들처럼 낭만적으로 예쁜 가방 하나 메고 부산에 가고 싶었지만  여학생한테 어울리지 않는 얄궂은 짐뭉탱이라니

누군가처럼 스타일 구기는  김치와 쌀은  영도다리 아래로  던져버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바른생활 소녀였던 나는  그런 일따윈  꿈도 꾸지 못했다.

배에서 내려서  당감동 가는 17번 버스를 타려고  낑낑거리며  짐을 들고 가니

이번에는  버스정류장에 그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어휴 가는곳마다 나를 난처하게 한  일들만 벌어졌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함께 버스를 탔고  나는  서면에서 내렸다.

그들은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그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고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낸 나는   집으로  돌아았다  

집에서는 놀랍게도  배에서 만났던 남학생들이 보냈다는 편지가

외글와글 쏟아진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채 ...

그런데 답장도 없는 편지를 끈질기게 보낸  한남학생이 있었는데

편지를 뜯어 읽어보니  자신은 악수를 신청하다 퇴짜를 맞은 남학생이라고, 하였으며

 답장을 보내줄때까지

계속 편지를 보내겠다는  베짱좋은 결심도  잊지 않았다.

 지난여름 까맣게 타서 불량배같이 보이던 모습이 아닌

전혀다른  학구파스타일의 멋진 사진도 두장 편지속에  함께 보냈다.

편지를 읽어보니 상당히 똑똑하고  괜찮은 남학생 같아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지만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는  몹시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성적은 자꾸만 추락했고   선생님께 몇번이나  불려가서  왜 성적이 자꾸 떨어지느냐고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기대했던 학생의  추락하는 성적을 보고 실망하셨던 선생님,

하루는 이렇게 타일렀다.

  대학생이 되면  선생님의 잘 생긴  동생을 남자친구로 소개 해 주겠다고...

그런 선생님의 조언 따위는 이미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3학년 여름 방학이 되었고 다니고 있었던 학원을 하루 빼 먹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7월29일

을 기념이라도 하듯  꼭 1년만에 D시에서  다시   만났다.

 

 

 

D시에서 보았던  영화' 미드웨이 '

 

 

우리는 B시보다 한달 먼저  상영한  영화 '미드웨이'를  보았는데   감독  잭 스마이트

찰튼 헤스톤, 헨리 폰다 주연의  이 영화는  1942년  6월 5일( 미국 시간 6월 4일)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바꾼 해전으로 화자되는  전투를 다룬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의 전략 요충 미드웨이섬을 공격하려던 일본 제국 참모전단이

벌떼처럼 달려든 미국 전투기 공격을 받아 궤멸되어 참패를 당한 해전이다.

나는 그 때  영화를 보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던 

 K대생  오빠의 어깨에 기댄체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영화를 보면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돌아보고  깜짝놀라

나를 대신해서

" 형, 00가 고3이라  피곤해서 잠시 졸았나 봅니다 " 

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우리는 극장을 나와

 시원한 팥빙수를 먹으며  이과를 선택했던   너는 ' 삼각함수'와  '너랑 나랑  통하는  미분적분'도  알기 쉽게 가르쳐 주었다.

아쉬움을  머금은채  곧  헤어져서   쏟아지는 여름소나비를 맞으며 다시 B시로  가는 새마을호 열차를 탔다

그날 나는 열차에서 쏟아지는 비를 내다보며 나도 몰래  울고 말았다. 

 고3 수험생이라는 부담은  늘 따라다니며  우리의 우젇을 방해했다.

 

그해 여름  8월15일 다시 한번  B시역 시계탑 아래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날 나는 12시 30분에 만나기로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가족들과  B시의 근교에 있는 K시 포도밭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정말 빨리 만나고 싶었는데  , 만나면  작년 여름에 빰 때린것  미안했었다고 

 진심을 담아  사과하려고 했었는데

비록 약속시간은  어겼지만  너를 만나려고  부산역으로 바쁘게 달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억수같이 퍼 붓는 거야

  ' 이시간까지  바보처럼 기다리고 있겠어  

 없을거야  어쩌면 비를 핑계대고 오지 않을지도 몰라 '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약속 시간은 이미   5시간 전에 달아나버린  뒤였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네가  내 앞으로  걸어오지  않겠어....

순간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어  네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

난 언제나 네게  함부로였다.

그 날도 시시콜콜  핑계와 변명만 마구  늘어 놓았지 ...

그리고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 오늘이 끝이라고 덜컥 말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양과빵을 가득 사서 공부하면서  먹으라고  안겨 주었지

그리고 이 한마디를 빗속에 남기고 손흔들며 기차를 향해  달려가더라

"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  네가 올때끼지  언제까지나  오래오래 기다리려고했어 , . 공부 열심히  해 "

 , 그날 비 내려도 너무 많이  내리더라

영화를 보면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이별을 암시하듯

 우리도  영화처럼 비를 맞으며  슬프게   이별을  하고 말았지.

 오래전...

 

 

 

 

 

 

오늘은  너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는...  7월29일

우리가  함께 타고 B시를  향해  갔던 그 뱃길은  2010년 12월 역사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으며,

 해마다 내게로 오는 여름이면   네가 생각나고 , 그래서  미안하고 , 안타까운 마음  절절한 계절이 되고...

 

너는 여전히  열여덟살 고등학생으로  성장이  멈춰버린채   액자 속의  그리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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