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이야기

[스크랩] 내가 담근 김치

이바구아지매 2006. 12. 28. 10:13

 

 가을이 깊어갑니다. 오늘 아침 기온이 떨어진다고 해서 옥상에 있던 꽃과 선인장을 다락방으로 옮겼습니다. 가을 따뜻한 햇볕에 선인장이 부쩍 자랐습니다.

지난해 사온 국화를 그대로 키웠더니 올해도 꽃이 피었습니다. 다년생 화초라고 하더니 잘 자라주었습니다.

국화중에서는 노란 국화가 가장 좋습니다. 물론 흰색 국화도 좋습니다.

어떻게 저런 기하학을 만들어냈을까요? 완벽한 균형을 보여줍니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인간이라는 것이 그리 유능한 종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이 없을 듯한 식물이 저런 기하학적 배치를 하는 걸 보면

 

 지난 8월에 심었던 무우를 몇 개 뽑아왔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무우보다 훨씬 작습니다만...참 대견합니다. 가을 가뭄에도 불구하고, 비료 한주먹도 주지 않았는데 곱게 자라주었습니다.

밭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내가 해 주는 것이 없는데, 배추도 무우도 스스로 잘 자라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무우를 키우기 위해서 잔손이 많이 갔습니다. 풀도 뽑아주고, 호스로 물도 대주었죠..북주기도 했습니다. 내 정성이 들어간 것이라서 애착이 갑니다.

어제 장에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 것보다 훨씬 큰 무우가 3개 천원입니다. 정말 어린아이 머리보다 큰 것이 그렇습니다. 배추도 2개 천원씩 팔았습니다. 기가 막히더군요. 그 무나 배추를 키우기 위해서 8월 9월을 고생했을 터인데..가뭄에 물주느라고..새벽에 일어나서 벌레 잡아주는라고..

그런 배추를 아이스크림 한 개값에도 못미치는 돈을 받고 팔다니..

전에는 왜 농부들이 트렉터로 밭을 갈아엎는지 몰랐습니다. 헐값이라도 그냥 넘기지 왜 그걸 갈아엎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런데 이젠 이해가 됩니다. 내가 키운 배추나 무는 그냥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입니다...자식 같고. 제자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 개에 300원이라니..

자존심이 상하죠. 내 자식이 남들에게 푸대접받는 것 같아서...그래서 300원 헐값에 넘기느니 그냥 내 밭애 갈아엎자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그건 이익과 손해를 넘어서는 자존심입니다.

전에는 수박서리나 참외서리가 미풍양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키워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정말 남의 정성..남의 피땀을 그냥 빼앗이 가는 도적질입니다.  

 

지난 8월에 심어놨던 쑥갓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쑥갓의 향은 시장에서 사온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강하지도 않으면서 길 게 여운이 남습니다.  함께 심었던 상추도 맛있습니다. 적상추의 부드러운 맛은 파란 상추와 또 다릅니다. ..상추에 쑥갓을 올려놓고 쌈을 싸먹으면 처음에는 상추맛이 나중에는 쑥갓의 향이 ...으...쥑입니다.

 봄에 심은 가지가 지금까지 열립니다. 기특합니다. 너무 많아서 요즘은 썰어서 말리고 있습니다. 서리내릴 때까지 꽃피고 열매를 맺을 듯합니다..고놈..기특한 거...

 더욱 기특한 것은 방울토마토입니다. 가을 토마토는 좀 맛이 다른 듯합니다..고맙고 고마운 일이지요.

 크...그 바로..그 당근입니다.. 이제 제법 굵어지고 있습니다..당근도 모르고 농사를 짓던 제가 당근을 뽑아왔습니다..그런데..이것도 역시 시장에서 사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습니다..달콤한 맛이 납니다..비료없이 농약없이 자라서 그런 모양입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김치를 담갔습니다. 현선생이 학교나간지 보름이 지났습니다만, 아직도 피곤해합니다. 아침에는 그런데로 생생한데...저녁에는 완전히 파김치가 됩니다..그래서 왠만한 것은 제가 해야 합니다.

밭에 갔다 올 때마다 열무 뽑아오고, 배추 솎아오고, 무도 솎아오는데 3식구가 다 먹지 못하니까 이걸 김치로 담아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김치를 담았습니다. ..절이고..씻어내고..여름에 갈아서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했던 빨간고추를 꺼내어서 녹이고..마을까서 빻고...양파 갈고..풀 쑤고..그래서 김치를 담았습니다.

우리집에는 원래 현선생이 담았던 김치가 있습니다..열무김치..하지만 제가 김치를 담은 이후에는 그 열무김치는 찬밥신세입니다..제것이 더 맛있거든요..(이건 나의 주장과 예슬이의 평가임)

물론 최근 어머니가 담아주신 배추김치의 등장으로 잠시 그 인기 순위에서 밀리는 듯 하였으나, 다시 김치가 맛들었는지..어머니의 김치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내친 김에 깍두기도 담고..예슬이 도시락 반찬을 하라고..콩자반도 만들었습니다. ..이러다가 식당내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송선생의 허튼소리
글쓴이 : 송선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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