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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영남] 모슬포에서

이바구아지매 2007. 1. 15. 20:53

 

 

      모슬포에서

 

 

                                         김영남

 

 

   오래도록 그리워할 이별 있다면

 모슬포 같은 서글픈 이름으로 간직하리.

 떠날 때 슬퍼지는 제주도의 작은 포구, 모슬포.

 모-스-을 하고 뱃고동처럼 길게 발음하면

 자꾸만 몹쓸 여자란 말이 떠오르고,

 비 내리는 모슬포 가을밤도 생각이 나겠네.



 그러나 다시 만나 사랑할 게 있다면

 나는 여자를 만나는 대신

 모슬포 풍경을 만나 오래도록 사랑하겠네.

 사랑의 끝이란 아득한 낭떠러지를 가져오고

 저렇게 숭숭 뚫린 구멍이 가슴에 생긴다는 걸

 여기 방목하는 조랑말처럼 고개 끄덕이며 살겠네.

 살면서, 떠나간 여잘 그리워하는 건

 마라도 같은 섬 하나 아프게 거느리게 된다는 걸

 온몸 뒤집는 저 파도처럼 넓고 깊게 깨달으며

 늙어가겠네. 창 밖의 비바람과 함께 할 사람 없어

 더욱 서글퍼지는 이 모슬포의 작은 찻집, ‘경(景)’에서.

 

 

 

출처 : 시와 시인
글쓴이 : 이동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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