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내가 살았던 서울 안암동을 생각 해 내면
그 마을에 어울리는 동네이름이 따로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안암동??? 동네에 고려대학교가 있어서 사람들은 고대생들을 보고 안암동호랑이라고
불렀다.
뭔가 허전한 이름이었다. 전체를 지칭한 게 아니고 대학생 일부만 부르는 모양새가 아닌가?
한동안 생각 해 보았는데 오늘에야 생각났다.
'꼬방동네 사람들'...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작가가 쓴 책이름이다.
그 책을 읽어보지도 못했다.
제목에서 풍겨 나는 것이 일단 서민들이 사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 된다.
내가 이름 지은 꼬방동네로 함 가보자.
89년 우리는 안암로타리의 옆골목으로 1분쯤 걸어 들어 가면 안암동호랑이가 설쳐대는
고려대학교 이공대정문이 나오는 그 벽에 붙은 집을 구하게 되엇다.
우리집은 기와집으로 상당히 큰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큰 건물에 비해선
참 작아 보였다.
집 주위엔 기와집들이 즐비했고 옆동네인 보문동은 거의가 다 한옥이었다.
역시 이웃동네인 용두동도 마찬가지로...
집 밖엔 다 연탄재를 버려서 허연 연탄이 무더기로 혹은 널부러져 있고 쓰레기도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하던 때라서 그냥 버리기가 일수였던 그 시절
쓰레기차가 당연히 다녔던 시절이지만 상인들이 함부로 버린 쓰레기며
지나가는 사람들조차도 쓰레기며 담배공초 심지어 토악질까지
참으로 길거리 풍경이 밝지 못햇다.
우리집에서 나와 길 건너엔 열채 정도의 아주 고급집도 있었다.
그 주위엔 이상하게도 그런 보기 흉한 것들은 없었다.
오월이면 담장위에 흐드러진 장미가 만발하고 너른 정원 잔디위엔 한 번도 사람이
나와 앉아 있거나 거닐지 않아도 운치있고 멋지기만 했다.
'저 그림같은 집에는 누가 살까?'
이런 생각도 그 집들을 지날 때면 으례히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내가 본 그 때의 안암동 거리는 대학생들의 데모로 늘 체류탄 냄새가 가득해서
눈이 매웠고 콧물이, 눈물이 우리를 울게 하였다.
분노하는 젊은 지성들 ...
고려대학교 운동장엔 연일 대자보가 나 붙었다.
젊은 학생들이 많이 희생되었던 그 시절 대학가엔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빛깔로 붉은 띠를 이마에 동여 맨 그들...
평양으로 간 임수경의 모습... 평양에서 통일의 꽃이라며 열열히 환영 받던 모습
5.18광주항쟁의 피비린내나는 잔인한 모습...
이것들은 긴 빨래줄처럼 학교 운동장에 가득 늘려 있었다.
젊은 지성들은 공부보다 정의를 의해서 화염병앞에,체류탄 앞에
맨몸으로 나서야 했다.
운동권들의 생활은 참으로 내가 말한 꼬방동네의 사람들 모습이엇다.
운동권의 주류는 시골학생들... 시골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가난하지만 정의에
불타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시기가 학생데모의 최고조를 이룰 때가 아니었는가 생각 된다.
86,87.88년까지는 서울대근처에 살았으니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죽고 뒤이어 이한열... 민주열사라고 부
렀던 그들...
우리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잘 지켜 보았다.
나는 그 시절 고생스러웠지만 서울에 살면서 우리 역사가 민주주의로 가는 데 큰 몫을 한 젊은
대학생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머리에 기억하려 애썼다.
기록도 했고... 내가 작가라서도 아니고 시인도 그 무엇도 아니지만 내가 몸 담았던 시대의
역사는 꼭 기억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고려대이공대 농활장엔 밤낮이 따로 없었다.
북소리, 꽹가리소리...
그기서 운동권학생들은 숙식도 해결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씻지도 못하면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목청 높여 외쳤다.
우리 큰애랑 둘째는 그곳에서 몇년을 보냈으니 이런 모습으로 서울의 기억이 남아 있을것이다.
너른 학교 캠프스는 그래도 봄이면 진달래와 개나리가 가득 피워 올랐다.
자유, 정의, 진리의 민족고대답게 학교엔 온통 순수한 우리꽃 진달래와 개나리가
온 학교를 감쌌다.
민족의식을 담은 학교라서 술을 마셔도 막걸리를 주로 마셨다.
막걸리와 안암동호랑이는 수더분하게 잘 살지 못하는 하지만 정이 넘쳐 나는
모양을 한 꼬방동네 사람들의 모양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다시 찾은 2003년 안암동는 내가 산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기와집들도 많이 사라지고 빌딩들만 가득했고 대학에서도 언제 그런 체류탄냄새와
전경들이 학교교문을 에워싸고 있었냐는 듯 그냥 평화만 있었다.
취직 걱정하는 학생들의 면학분위가 단연 돗보이는 분위기로...
캠퍼스 정중앙의 인촌동상은 안암동의 역사를 말없이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참 생소한 기분이 들었던 다시 찾은 그 느낌...
오늘 아침에 잊지 못할 기억속의 안암동이야기를 풀어 보았다.
그 땐 내 나이도 많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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