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론 아주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살기도 하고
때로는 남들이 들으면 별 것도 아닌 것을 나는 평생 기억하고 살기도 한다.
내가 기억속에 담아 놓은 것 중에서도 누구에게 말해보지 않은
그러나 소중하고 예쁜 이런 추억을 경험한 사람은 그리 흔치 않으리란
생각을 하면서 잊어먹기 전에 내 블로그에 담아 놓으려고 한다.
내가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였다.
셋째오빠가 방학을 맞아 친구랑 집에 왔다.
함께 온 친구는 여자친구로 같은 대학은 아니지만 국문과에 다니던
고향이 밀양이었던 언니는 아주 귀한 무남독녀로
큰오빠의 친구네집에 세들어 살았다 성희언니네는
양장점을 하던 엄마랑 1층에
죽으라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하던 울오빠는 3층에 살았다.
한집에 산다는 인연으로 성희언니는 울오빠한테 참 잘해 주었다.
울오빠랑 성희언니는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되었다.
자취를 하던 울오빠한테 추운 방에 연탄불도 갈아 주고
김치도 가져 다 주고 ...
맘씨가 곱고 착하다고 울아부지, 엄마는 너무도 좋아했다.
대학에서 국문과를 다니던 언니는 나랑, 언니, 동생에게도
꽃무늬가 고운 편지지에 열심히 공부하여 꿈을 이루라는 격려편지며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등을 편지지에 적어선 보내곤 했는데
드디어 방학을 맞아 오빠랑 울집에 왔었다.
언니가 우리 집에 도착 했을 때 모습은
하이힐을 신고 판타롱 긴바지를 입고
머리는 긴머리로 웨이브를 살짝 넣고 목에는 하얀 털목도리랑
회색 코트를 입었었다.
손에는 그 당시에 부산 서면에서 젤 잘나가던 '감로당제과'의
맛난 양과자가 가득 든 누런색 빵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성희언니가 사 온 양과자를 맛있게 먹고
밤늦도록 아부지랑, 엄마, 오빠, 성희언니, 울언니, 남동생이
둘러 앉아서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
나는 그 때 큰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젤 부러웠다.
동네방네 내게도 언니가 생겼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고 싶었다.
그 날 밤
나, 울언니, 성희언니가 꽃무니 이불을 덮고 손을 잡고 이야기하며 잠들었다.
다음 날은 우리집 열녀천산에 겨울 땔깜 나무를 하는 날이었다.
장정몇을 삯을 주고 한꺼번에 엄청난 양의 나무를 베어서 산에도 나무볃가리를 두서너군데 쌓아 놓고
집에도 가져 와서 큰방 뒤 쪽 부엌 옆에 한볃가리. 작은방 뒷쪽에도 한 볃가리를 쌓아 올렸다.
해마다 한 번 씩 겨울에 하는 우리집 행사였다.
다른 집에는 그냥 나무를 산에 가서 해다 날라선 밥도 하고 쇠죽도 끓이고 군불도 지폈지만
울아부지는 일을 잘 못하셨다.
훗날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는 울아부지도 산에 가서 나무도 할 줄 알게 되셨지만
그 당시엔 그런 것은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니신 줄 아셨다.
나무치는 날에는 이런저런 번거로움과 여자들이 먹거리 준비한다고 얼마나 바빴던지
그 날 성희언니는 나와 언니보다 일을 훨씬 많이 하고 잘도 했다.
엄마가 밥과 반찬, 막걸리, 숭늉이며 여러가지 산에 인부들이 먹을 음식을 잔뜩 하셨고
큰 다라에다 그 많은 음식을 담아서 이고 꼬불 거리는 산길로 가는 것은 예사일이 아니었다.
성희언니는 도회지에서 왔고 귀한 무남독녀아닌가???
그런데도 성희언니는 엄마의 몸빼를 입고 넓은 다라이에 가득 담고 또아리를 머리에 얹어 중심을
잘잡고 길을 나섰다.
나는 숭늉이 든 주전자와 탁주가 든 주전자를 들고 따라 가고
울언니는 작은 다라를 또 이고 갔다.
산길로 올라서려니 동네 아지매들이 한마디씩 했다.
"아이구야, 홍포애인이가 참 참하다."
"대학생이라쿠더마는 몸배를 입고 다라이까지 다 이고??? 대학생도
일을 하나?"
아지매들이 신기해서 쳐다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 날 산에서 우리는 불피워놓고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밤이 또 어김없이 찾아 왔다.
낮에 많은 일을 한 언니도 피곤했으리라
그래도 젊음은 좋았다.
삼경이 되어도 언니랑 오빠는 잘 생각을 안 했다.
참 좋아하는 사이었다.
그냥 같이 있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그 때 엄마가
"인자 자거라. 피곤할끼다."
"예 주무시소"
성희언니가 대답하였다.
우리집에 규율은 참 엄해서 오빠의 여자친구가 와도 한방에 자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것이 울아부지의 원칙이셨다.
그래도 좋은사람은 같이 있고 싶은 것인가?
오빠랑 언니가 나에게 같이 자자고했다.
"좋아 난 좋아"
이틀째 언니랑 함께 잔다고 생각하니 넘 기뻐서 벌렁 드러누웠다.
불을 껐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나를 중간에 누우라고 했다.
오빠와 언니사이에 누운 나
깜깜한 어둠속에서 어찌 된 것이 가운데에 누우니
통잠이 들지 않았다. 아예 잠이 안 왔다. 나는 두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둘사이의 간격은 자꾸 좁아져 오고 난 가깝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머리맡을 만져 보니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질 않나.
두사람이 손을 꼬옥 잡고 있고 말은 없었다.
나는 오줌까지 마려워서 참기 힘들었고???
그렇게 그 밤을 하얗게 새웠다.
긴긴 겨울밤을...
세월이 엄청많이 흘렀다.
오빠는 성희언니의 고운 심성을 군대에 가면서 멀리 햇다.
동갑인 언니가 오빠한텐 부담이 되기 시작 햇다.
너무 착하고 자상했던 언니를 멀리 하자 우리집에선 오빠에게 뭐라고 했다.
어쨋든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그 날밤 애틋하게 손만 잡아 본 두사람은 결국 헤어졌고...
난 오십을 바라보는 불혹이 되었다.
고운 사랑을 하다 이별한 그날 밤 그 낮은 숨소리를 잊을 수 없다.
참 아름답고 풋풋한 이야기다. 사랑이란 감정이 생기려고 하는 것 말이다.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소중해 보이는 솜사탕같은 것
...그립다 단지 그리운 삽화라고 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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