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
외가는 이름만으로도 참 정겹다.
우리집에서 15분정도의 거리에 있었는데 요즘보면 운동삼아 뛰어 갔다 와도 좋을 거리...
나는 외가에 대한 그리움을 평생 첫사랑의 연애편지처럼 꼭 가슴에 안고 산다.
한 번 씩 꺼내보는 연애편지의 콩닥거림과 외가에서 있었던 유년의 동화가 우째그리 닮았을꼬
지금부터 과거로가는 기억열차에 타고 추억여행 시작...
나보다 2살 위인 언니랑 꼬부랑길을 한쪽손엔 바구니하나씩 들로 비틀비틀 달리다가
걷다가 도깨비이야기, 귀신이야기,꿈이야기를 함서 어느새 외갓집 대문께에 도착했다.
외가는 대나무로 얼기설기 짠 대문과 대문깐주위엔 온통 꽃으로 외가에 가는 즐거움은
대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깨끗하고 단정한 집, 석류나무가 시루대랑 함께 보기 좋게 서 있고
석류나무 옆에는 도구(절구)가 얌전히 찰떡 찧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랑 언니는 외가에 잘 오다가 막상 도착하모 서로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등을 떠 밀었다.
"언니야, 언니가 먼저 들어 가라"
"아이다 요번엔 니가 먼저 들어 갈 차례다. 저번에 나가 먼저 안 드갔나?"
"우째 저번에 내가 먼저 드갔제? 까문는가베 "
'아이다 나가 먼저 드갔다."
"그라모 장겐보이 해서 진 사람이 먼저 드가자."
" 밖에 누고 ? 정숙이, 맹수기가 들온나 빨리 들온나? 밥 묵자."
우리가 서로 들어가라고 시끄럽게 조잘대고 있는 걸 본 외숙모가 발견하고
우리를 손짓하여 차린밥을 묵자고 불렀다.
바구니는 엉덩이에 붙이고 부끄럼을 애쓰 참고
"외숙모 잘 있었소?"
"아, 그라모 어서 청에 올라 앉아라 밥이 따시다 배고푸제?"
우리 외숙모는 우리 배고픈 것도 귀신같이 딱 알아맞추었다.
"와, 바구니는 고래 작은 거 갖고 왔노
뒷골에 가모 감이 쌔빗는데 많이 갖고 가라."
우리는 배불리 밥묵었는데 우리외숙모가 해 주는 반찬은 우찌그리 맛있던고
밥은 김이 모락모락 하고 쌀밥냄새가 코에 스며들 땐 행복해지기조차 했다.
"희야, 니도 바기미랑 다라이까지 갖고가서 감 따서 가오이라."
외가엔 언니랑 동갑인 희야언니가 있어 더 가고 싶었던 곳
뒷골엔 계단으로 된 밭들도 많고 밭에는 콩들이 익어 가고 넓은 밭 곳곳에는 감나무가 엄청많았다.
감나무가 몇십그루? 그 이상이었을까?
콩밭에는 콩잎냄새랑 감냄새로 기분은 벌써 하늘나라로 날아 올랐다.
"희야언니야, 언니가 주운 홍시감은 다 내 도?"
"저기 머라쿠노 만천기 다 지껀가 희야, 주지마라. 똑 같이 갈라 주어야 된다."
"나는 마이 묵고 커야제 작게 무모 키가 안 컨다아이가"
"말은 잘하네 순 욕심재이가 " '
우리는 하하호호 하며 홍시감을 억수로 주워 담았다.
바구니는 금방 다 차고 감냄새랑 홍시는 뱃속에서 고만 들어오라고 거부할 대까지
묵고 또 묵었다.
옷에는 감물을 잔뜩 묻히고 ... 감물은 절대로 빠지지 않고 영원토록 핏자국처럼 흔적을 옷에 남겼다.
그래도 그 감물이 싫지 않았다.
내 기억속에는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는 없다.
본일이 없으므로...
대신 외가엔 늘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반겨 주는 외숙모가 있었다.
외숙모는 인심이 후덕하여 시누의 아이들은 물론 셋째외삼촌이 돌아가시자
아들인 영천, 영진오빠도 함께 키우면서 학교를 보냈다.
외가엔 늘 식솔들이 많았고 밥 먹는 식구는 더욱 많아서 이웃집 사람들이며 외가의 농사를, 혹은
책임지고 일해 주는 머슴내외며... 우리 외숙모는 참 가난한 집에서 입은 옷에 시집을 왔다고 할
정도로 , 하지만 고운 심성덕에 외가는 하는 일마다 잘 되었다.
외가의 영목이오빠는 지금 우리나라의 민물고기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신 '손영목'교수이시다.
어릴 때 우리가 밥상에 앉아서 밥묵을라쿠모
"손 내 봐 자 손톱밑에 때가 낀 사람 은 비누로 깨끗이 씻고 와서 밥을 먹어야 한다.
때는 비위생적으로 사람몸에 들어가면 병이 생긴다."
서울대학교에 다니던 오빠가 오는 방학 땐 우린 밥상머리에서 긴장을 했다.
고놈의 손톱밑 때는 얼매나 잘 끼이는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제사때나, 잔치음식이 있는 날엔 우리가 외가에서 실컷 먹는 것 외에도
희야언니가 다라이에 가득 맛난 음식을 담아서 이고 우리집까지 가져 다 주어서 늘 우리는
외숙모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감동했다.
그런 후덕함 때문에 조상이 돌보아서 자식들이 잘 풀린다고 동네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긴 울 외삼촌들은 그 당시에 대학을 다 나온 최고의 지성인들이었고 생김새도 배우들처럼 잘 생겼다.
아주 훌륭한 외가에 외숙모의 품이 넓어 추억속에 나는 그 잘난 외삼촌들보다 외숙모가 훨씬 좋았다.
내가 돈을 벌면 외숙모 용돈을 꼭 드리려고 다짐했는데 외숙모는 내 용돈을 받아보지도 못한채
서울 아들네집에 갔다가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 하셨다.
외숙모 ... 그리운 외숙모를 생각해 보면서 한 줄 글로 옮겨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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