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스크랩] 빨래

이바구아지매 2007. 2. 5. 07:50

여친들,

고무장갑도 없이 고사리같은 손,곱디고운 손으로 냇가에서 빨래하던

그 시절 빨래터로 한 번 가 보자.

 

식구들은 모두 한꺼번에 옷을 갈아 입었다.

그건 아마 이 박멸퇴치의 한 방편이었으리라...

요즘의 아파트 바퀴벌레 약 같은 날에 뿌리는 거랑 같은 이유가 아닐까?

 

크고 작은 빨래감이 산더미다.

이 있을만한 옷 솔기솔기마다 번쩍이는 두 눈으로 색출해내고,

터진 곳 메어진 곳 단단이 꿰메었지.

가마솥에 뜨끈하게 물 데워 애벌 빨래하고

옴마는 큰 다리이 큰 빨래들, 언니 다라이는 삶을 빨래들

내 세숫대야는 양말들과 걸레 담아 빨래터로 향한다.

"회수으네 오늘 총 출동이네. 여 자리 있네.."

먼저 온 아지매들 좋은 빨래판 돌 차지하고 있지만 자연적으로 

차례가 오는 것은 기계만큼이나 정확했다.

물 길어 대는 것이 내 일이다.(커서는 혼자서 다 했지만)

우리 빨래통 뿐아니라 아지매들 빨래통에도 새 물을 길어주었지.

방망이 소리, 이바구 소리, 하하 호호

빨래터는 여인들만의 성역으로 휴게소,사랑방, 충전소였고

생동감 넘치는 삶의 현장이었다.

 

마당 가득 빨래줄에 옷을 걸치면 요즘처럼 추울때는 금방 고드름이

생기곤 했제. 밤이면 이방저방으로 옮겨가  만국기가 휘날리고

요즘의 가습기 역활을 톡톡히 했제.

 

이불호청 배게호청 다 뜯어 며칠째 양잿물 받쳐놓은 물에 푹 담가

비벼서 이번에는 냇가(고랑) 빨래터로 가야제.

호청들의 천은 대개 광목, 옥양목, 뽀뿌링(포플린), 여름에는 삼베,모시

참으로 손이 많은 천이었제.

비가 많이 왔을 때는 용동골 고랑에 갔기도 했지만 우린 주로

저건너 큰 냇가까지 이고 갔었제.

관암에서 들어오서 큰 다리, 1구와 2구로 갈아지는 갈림길

(우리 칭구 경근이네 집이 있었는데..) 그 고랑은 양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이 많아 늘 빨래하기에 참 좋았지. 빨래판 납짝돌도 많았고,,

크고 작은 돌에는 작은 고동도 많이 붙어 있었지.

 

흐르는 물에 빨래하는 것은 그래도 쉬운 편이었다.

겨울철 두꺼운 옷, 이불호청 빨래는 둘이서 잡고 비트느라 힘들었다.

방망이로 두드리고, 물 속에서흔들고, 비틀고,비비고,짜고 참 난리다.

깨끗이(신선거치) 씻어 집에 이고 와서는

또 가마솥에 푹푹 삶아 또 고랑에 씻으로 갔제..

옛날 빨래는 씻는데만도 하루해가 모자랐던 거 같다.

 

빨래줄에 널어논 이불호청이 혹시라로 흙이나 티가 묻을까봐 그런날은

조신하게 마당을 다녀야했다.

 

네모 반듯하게 차곡차곡 갠 호청은 씻을때도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는데

이번엔 다듬이돌에서도 며칠을 맞는다. 이리저리 뒤집어가면서,,

아침 저녁으로 온 식구들이 돌려가며 장난치듯 두들겨 본다.

마주 앉아 둘이서 두들기도 하고 혼자 두들기도 하고,

 똑딱뚝딱....

울엄마 다들이질 소리는 그 시절 최고의 감미로운 생음악이었제.

 

 

밀가루 풀 곱게 써서 큰 다라이에 덩어리 하나 없게 손으로 잘 

문질러야한다.(요즘거품기로 한두번 휘저으면 될걸)

물과 풀의 조화가 잘 이루어야 한다.

풀이 너무 많으면 빡빡하고 풀이 너무 적으면 흐느적 거릴수 있으니까

능숙한 솜씨로 골고루 풀물이 가게 주물러고 또 주물런다.

풀 먹은 호청 다시 빨래줄에 널어 빼득하게 마를 즈음

차곡차곡 곱게 접어 이번엔 며칠을 뒤집혀가며 온 식구들이 밟아 제낀다.

혼자서 또는 엄마 발 위에 내발까지 합쳐

요리조리 구석구석 밟았다.

 

이음새 길따라 적당한 거리두어 둘이서 잡아당기기도 했제.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가며 힘차게 당기는데 한사람이 잘못하여 천을

놓아버리면 한사람 뒤로 벌렁 나자빠지니까 호흡이 잘 맞아야했다.

참 재밌어 보이는 데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은 오빠도 언니도 없었던지 영 시원찮은 내가 못마땅했던지

울 할부지와 엄마가 하는데 울 할부지 엄청 잘 했다 아이가,,

(울 할부지 못하는게 없었던거 같다)

 

 

한 입 가득 머금은 물은 엄마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순간

호청 구석구석 뿌려지는데  예술이 따로 없었제.

엄마입 스프레이라고 들어봤을랑가?

참 환상이었어. 그 넓고 큰 호청에 입으로 푸우~~푸우~

 

여름철 삼베,모시는 다림질까지 하였더랬지.

철거덕거리는 쇠 다리미

속에는 새빨간  숯이 이글거리고, 다리미가 지나가는 길은

금방 고속도로가 생기는걸 신기해했지

 

큰방에서 이불 꿰메는 날은 나의 또하나이 큰 즐거움이었제.

이불을 펴 놓으면 나만의 놀이터가 생긴것마냥

한참동안 뒹굴고 뛰고 솟고 놀았제.

엄마가 일단 바느질이 시작되면 귀퉁머리에서 조신하게 구경만했는데

그래도 내가 없음 안되제. 바늘에 실 꿰어 주어야하니까,,

네개의 귀퉁이서 삼각형으로 선을 만들어 꿰멜때는 참 신기했지

이리 접기고 하고 저리 접기도 하고

긴 사각형에 바늘이 지나가고 똑 같은 자국으로 실이 보이고

깔끔하고 단정한 어여쁜 이불이 탄생되었제..

장농(단스)속 이불들이 새 단장을 하면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지.

 

은은한 풀 냄새, 빳빳한 감촉, 새 하얀  그 이불 그리워라.

 

그 시절의 빨래들,

여러날 동안 옴마의 노고와 정성 사랑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옷이며

이불을 생각하니 요즘 초 스피드식 하는 빨래와 비교된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출처 : 연초중학교18회동기회
글쓴이 : 허수아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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