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소 담 이

이바구아지매 2007. 2. 13. 07:54

 

 

오늘  둘째딸  소담이가  혜화사관학원에 학원생이 되어 공부하는 첫 날이다

 

부산에 나가 있어 챙겨 주지도 못하고 알아서 학원엘 간다

 

새벽부터 내 맘이 바빴다

 

전화해서 깨워줄까 하고 전화를 들었다놓았다

 

'아니야 지각을 하더라도  스스로 하기로 한 이상 자립을 하도록 철저히 혼자하도록

 

이미 남보다 일찍 독립심을 키우는 수련과정이라고 생각해야지 암 그래야하고말고'

 

시계는 벌서 7시50분을 가리키고 있다

 

아침잠이 많은 소담이  아침잠이 많은 이유야 뻔하다

 

밤잠이 충뷴하지 못하니 그럴 수 밖에

 

아침밥은 또 어찌 해결하는지...

 

지금쯤 지하철를 타기 위해서 양정역으로 가고 있겠다

 

자퇴를 결심하고 남은 1년의 고등학교 생활을 가감히 접은 아이

 

우리집은 큰 애도 고등학교2학년 때 자퇴를 하고 독학으로 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땐 가슴아프게도 우리집이 엄청난 빗에 쪼달리고 있어 큰 애가 그냥 혼자 공부하겠다고 했고

 

눈물 흘리며 외로운 독학을 했다

 

그 때 당시로는 그 많은 빗을 갚아 낼 힘이 도저히 생길 것 같잖아서

 

가족회의를 했다

 

고등학교부턴 독학으로 공부하고 대학도 스스로 해결하기로...

 

우리집엔 아이가 다섯이나 있다

 

우리신랑이랑 함께 학원을 하다가 접고 난 후라서 우리에게 수입이라곤 일원도 없었다

 

오로지  그 많은 빗과 이자만이 우리에게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살아야 했다

 

먹고 사는 게 가장 급한 일인데 어찌 학교에서 아이들이 남들처럼 똑같은 생활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래서  가족회의가 끝나고 일주일 뒤에 큰애가

 

"아빠, 엄마 저 자퇴하겠어요"

 

이렇게해서 우리집은 남다른 생활을 하게 되었다

 

큰 애는 집에서 공부하며 글쓰기와 제과제빵에 관련 된 서적으로 직접 만들어 보고  좋아하는 글도

 

많이 쓰게 되었다

 

늘 독서를 함은 당연했다

 

둘째인 소담이는 그 때 중3이었는데 교복을 입고 아파트분양 전단지를 돌리려고 하루에 3~4시간을

 

헤매고 다녔다 한 장 돌리는데 20원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때 눈물의 라면을 먹었다

 

나는 늦둥이를 안고 있었고...

 

우리집은 이야기속에 나오는 흥부네집이었다

 

아이들을 배 골게 하지 않으려고 집에서 호떡믹서 가루를 한 포씩 사 놓고 매일 호떡을 굽다 보니

 

그 해 겨울이 끝나 갈 무렵 나는 호떡 굽는 도사가 되어 있었다

 

근근히 학부모들을 통해서 몇명의  중고등학생 과외를 애들아빠가 하게 되었다

 

참 다행한 일이었다

 

오랫만에 파란색의 돈을 만져보게 되었다

 

우리가 서울에 살 때 사람들이 나 보고 고향을 물으면 거제도라고 대답하면

 

"거제도에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면서요???"

 

하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우리집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서 수습을 해 가야 될지 모를 정도로 수억의 빗이

 

있었다

 

이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눈물도 나지만 웃음을 하루종일 웃어라고 해도 못 할 일이 아니다

 

그 정도로 나는 마음의 부자가 되었다

 

많고 많은 시련의 길은 차차 풀어나갈 것이고

 

 

이런저런 시련의 시기를 겪으며 아이들의 마음의 키는 이미 어른이 되었다 어찌되었거나

 

애들아빠는 조선소에 취직을 하였고 급여가 많지는 않지만 지금은 말 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다

 

다행히 어제 혜화사관학원 상담실장님이 전화를 해 주셨는데

 

"소담이가 반편성고사에서 성적이 아주 잘 나왔어요 재수생들은 수능성적이 있어

 

성적을 알 수 잇는데 소담이는 이제 고3이라서 반편성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요"

 

이러셨다

 

"선생님, 소담이가 원하는대로 해 주세요"

 

"네 그래야겠습니다 열심히 지도하겠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야지요"

 

우리 소담이는 집념이 강한 아이다

 

뭔가 해 낼 아이라고 판단 한다

 

고등학교 자퇴한 건 수업에 효율을 위해서 스스로 결정 한 것이니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목표가 뚜렷하다

 

우리아이들이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집안사정에 굴곡이 심했다는 것이다

 

사업이란 것은 굴곡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금은 그 많던 빗을 거의 다 갚았으니  휴 하고 숨을 내 쉴 여우가 생긴다

 

지금부턴 아껴쓰고 대학은 실력을 확실히 쌓아서 국립대학으로 가고 학비가 많이 들지 않는 쪽으로

 

해야 한다

 

나는 말했다

 

"우리집에선 고등학교까지 시켜 주고 대학부턴 스스로 학비를 해결해야 한다"

 

이렇게 확고하게  했으니 열심히 안 하고는 될 일인가?

 

때로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는 일이기도하다

 

"소담아, 너는 할 수 있어  니가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선 오늘의 이런 시련은 참아 낼 수 있지?"

 

우리집에선 그리 힘든 일이 아니잖아"

 

이젠 학원에 도착 했을 시간이네

 

다들 선배들일텐데  좋은 후배되기를 바란다

 

"소담아, 너는 캔디소녀지??? 캔디는 웃는 거야  힘내라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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