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미숙씨의 통장

이바구아지매 2007. 2. 22. 16:08

 

 

설이 지나고 그 동안은 설에 먹다 남은 이런저런 반찬으로 요며칠은 땜질을 한다

 

밥상은 그렇더라도 대학등록금이며 이런저런 공과금이며 부지런히 날아드는 고지서를

 

챙겨서 수협으로 갔다

 

통장에서 뽑아 해결하려고...

 

오랫만에 보는 창구의아가씨들

 

"안녕하세요, 설 잘 지내셨어요?"

 

미숙씨의 맑은 목소리가 낭낭하게 내 귀에 들어왔다

 

"예 미숙씨도 설 잘 보냈어요? 올 해는 시집 안 갈 거예요?"

 

"통장에 돈이 만원 밖에 없어서 시집도 못가겠어요?"

 

"그래요 설 지내고 나니 만원밖에 안 남았어요? 그럼 대출하면 되지?"

 

우리는 하하하 웃었다

 

"설 세면 나이만 한살 더 먹고 또 팍팍 늙어가는 소리만 머리에 꽃혀요"

 

"뭐 사모님은 하나도 안 늙어보여요"

 

김과장님이 한 술 더 뜬다

 

"그래요? 올 해 부터 난 이제 한살씩 깎아주세요

 

47살이에요 내년엔 46살 꼭 기억하세요"

 

"사모님 나이가 그러세요??? 37~38세 정도로 봤는데???"

 

"순 엉터리 날 놀려 먹으려고 그러죠?"

 

나이는 얼굴에 다 써 놨는데 혹 봄이 오니 연분홍 꽃내음에 취해서 내가 어려보이나?"

 

'아니에요 사모님 진짜로 어려 보여요 그 비결이라도?"

 

"미숙씨 진짜 나 젊어 보여 진짜 신나네 중매 해야겠어?"

 

"네 해 주세요 멋진 남자로요"

 

"통장에 돈이 만원 밖에 없어서 어쩌지 대출많이 하는 여자 좋아 할 남자가 어디 있을지

 

찾아봐야겠네"

 

"호호호 재미있어예"

 

"조선소 남자들이 돈 잘 버니까 신랑감은 조선소사람이 좋겠지?"

 

"원장님 같은 사람이면 좋죠"

 

"이젠 우리아저씨 원장님도 아니고 과장님이지 좌천되었어 그리고 멋은 무슨 멋 머리는

 

대머리에다 똥배는 또 어떻고"

 

"사람좋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해요"

 

"원래 그러지 사람만 좋으면 된다고  막상 보면 온갖것 다 따지지

 

참 미숙씨 통장에 만원 있다 소리하면  어서빨리 구해줘야겠다는 사람이라야 좋겠지"

 

이런저런 일로 돈 찾으러 온 사람들이 하하하 웃었다

 

어떤 사람은 설세고 나니 백만원 적자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천만원가까이 빗이 졌다고 하고

 

그래도 우리는 짧은시간에 시원하게 웃었다

 

세상 사는 맛이란 이런 거다

 

곧 죽을 것만 같은 아픔이 찾아와도, 너무 괴로워서 웃음이 나올 것 같잖아도

 

순간 우리는  이렇게 웃는다

 

"사모님 통장에는 아직도 찾을 돈이 있네요"

 

'말하지마 돈 없는 사람 기죽어"

 

행길에는 썰렁하다 설대목 기운이 팍 사그라들고 뜸하다

 

지갑도 통장도 다 비었으므로 시장도 행길도 썰렁하다

 

내 기분엔 그리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