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참 많은 생각을 한 날이오
참말로 오랫만에 당신을 많이 생각 해 본 날이라구요
조금 전에만 해도 당신이 전화해서
"뭐 하노? 밥 묵었나?"
참 멋대가리 없는 당신만의 관심법으로 내게 전화를 했어요
'나 아무 한 일 없이 밥 묵기가 넘 미안해서 그냥 밥 굶었다아이가"
" 와 굶으모 되나?"
"와 당신이 밤낮으로 아푸면서 회사에 나가는데 내가 우째 밥을 실컷 묵을 수가 있노 맘이 아파서
그리 몬한다 당신이 너무 안되어서 눈물이 안 나나"
"무신소리고? 그런 소리마라 퇴근함서 물리치료 받으로 가모 안되나"
"꼭 그래야 된다 뱅원 안 가모 안된대이"
전화 끊고나니 갑자기 보름동안 고통속에 몸무게가7kg정도 빠진 당신의 배가, 얼굴이
꼭 다른 사람같아 보여서 내 가슴이 찡했다오
우리는 둘 다 오리지날 경상도 사람들이라 살가운데가 없어서 아파도 그냥 힘들어도
서울사람 들처럼 애교떨면서 표현으로 못 나타내지만 내 마음을 정말 오랫만에
이렇게 내 보이볼라요
내가 당신 고생한다고 고맙다고 안하모 누가 그라것소
딸내미들이, 아들이...
세상 변하는 것 보니 자식들에게 알아 달라고는 몬하것소
아이들은 다 성장하면 우리들처럼 또 철이 안 들것소
당신이나 나는 부모님들께 효도다운 효도는 아직 못했으니 우리아이들에게도 부담 주지 맙시다
여보, 그 동안 3년이나 나 모르게 회사에서 가족들을 위해 무리 한 게 몸 다 상하게 된 것 같아
가나를 안고 울었다오
"엄마, 왜 울어 울지마 내가 말 안들어서 그래?"
가나는 제가 잘못해서 엄마가 운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아니, 눈에 티가 들어가서..."
아이가 무엇을 알겠소
당신은 어깨가 많이 무거워서 힘들어하는데 내가 아무런 힘이 못 되어 준다는 생각에서요
차라리 3년전가지의 제가 그립소 나는 그냥 세상에 나가서 악바리같이 생활하고 또 보람 찾던 그 시절이
나한텐 잘 어울렸던 시절이었소
덩치는 작아도 야무지다는 소리도 싫지 않고...
당신과 처음 같이 밤을 보낸 그 여관에서 세상에 없는 주소를 적었을 당신이
지금도 눈에 밟혀요 어줍잖게 모서리닳은 숙박계를 내밀고 처녀총각이 결혼을 맹세한 날이
하필이면 지금 떠 오를게 뭐요
춘삼월 꽃은 피고 새가 우는데도 당신과 나는 이몽령과 성춘향이 되어
떨어져서 살았던 신혼초 부부라는 이름으로 당당히 편지를 주고 받고...
편지에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내이름자만 가득 적어서 코팅 해서 보낸 걸 보고 그립고
서러움에 밤을 밝힌 날도 얼마였는지
재수생남편은 꿈도 야무졌고 훗날도 10년이상 선비가 되어 공부만 하고 있었던 때도 이리 마음이
안 편하진 안았다오 굴곡을 지나서 학사모를 썼고 다시 고시공부에 세월을 잡아 먹을 때도
난 희망과 보람을 느끼면서 살 수 있었다오
역시 난 서방님의 벌어다 주는 돈에 길들여지지 못한 아낙이라 요즘의 당신을 보면
내가 죄를 짖고 있는 느낌이라오
몇 년 쉬는 동안에 나이를 더 먹고 아이도 어려서 사뭇 다시 취업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더 늦기 전에 당신 혼자 힘들어하는 모습 을 나누도록 합시다
우리는 부부에요 우리가 힘을 합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 우리아이들도
더 열심히 주어진 학업에 최선 다하리라 믿어요
우리 참으로 많이 다투었지요? 힘든 시련을 많이 겪었지요 시험에 떨어지던 여러 번의 경험
사업실패 이런 과정에서 우린 미운 정이 고스란히 들었지요
더 이상 미운 감정이 사라지고 나니 당신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허허허 역시 경상도 양반은 말을 너무 아낀다구요 보리문디의 그 마음을 인제야
알 것 같아요
어제랑, 그제랑 우리가 주고 받은 말 잊지 말아요?
누가 먼저 죽더라도 재혼 하지말고 아이들 보살피고 뒷정리 잘 하기로
그리고 죽은 후 혹시라도 만날 수 있으면 고맙다고 말하기로...
늙으막에 사랑에 빠지기라도 하여 아이들에게 못할 짓은 하지 말자구요 ㅋㅋㅋ
그 말 잊지 않을게요
오늘 꼭 물리치료 하고 오세요
미운정도 정이라고 고것이 더 겁나네요
우리도 나이가 좀 들었는갑소 울아부지, 어무이가 그랬지요
미운정이 들어서 못 떠난다구요
우리도 그 나이에 온 것 같소
여보, 나한테 사랑한다 말 함 해 보소
꼭
"뭐하노? 밥 묵었나?"
이기 머꼬
"사랑해 ~~~ 이런 말 한 번 듣고 싶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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