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밭만들기

이바구아지매 2007. 4. 13. 07:24

 "푹 쉬라이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말고 알긋제? 우리각시가 아푸모 집안에 웃음이 사라지는기라

 

가나야, 엄마 말 잘 듣고 아빠 회사가서 돈 버리오깨이"

 

하고 읽던 신문을 놓고 현관에 내려서서 신발을 신으며 한마디 더

 

"오늘은 떡국도 맛있고 돈나물 물김치맛은  기똥차서 봄을 씹는거 같아서

 

참 기분좋다 마이 담았나? 그라모 부산아들좀 주거로 따로 챙기나라"

 

"비가 온다캣는데 회사일은 지장없나?"

 

"비와도 괘안타  오늘 푹 쉬라 뱅만들지말고? 몸살은 푹 쉬는 게 젤아이가

 

저녁때보자이"하고 뒷모습으로 큼주막한 궁둥이의 모습만 남기고 사라졌고 곧

 

대문소리가 쾅하는 폭탄음 뒤에 집안은 일시 침묵이다

 

어제까지 20년동안 묵혀서 아파트의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땅을 원상복구하여 밭으로 만든다고

 

일에 지쳐서 죽을맛이다 어디한곳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내 이리 몸살이 뼈속가지 찾아들끼라고 각오는 했지만 정작 일끝나고나니

 

뼈와 삭신이 쑤셔서 간 밤에 한 숨 잠도 못잤다

 

밤새도록 똘망거리는 눈, 똘망똘망 생각들이 어둠속에서 찾아들고 머 잠이란건

 

적당한 피로에서 잠이 찾아들지 중노동뒤에는 얄굿게 꽁꽁 앓게만 만든다

 

어제 내가 설치고 했던 작업의 내용을 딱 기록하자모

 

어데서 어떻게 기록을 해야할지 일한 골뱅과 지긋지긋함만 머리속에 딱 남고 기억속을

 

정리하기도 두서가 없어진다

 

 

 

20년동안이나 근처의 아파트에서 주차장으로 쓰고 있던 곳 자갈로 다져질대로 다져진

 

주차장을 다시 원상복구하여 밭으로 만들기란 쳐다 보면 엄두가 안 날 모습이었지만

 

포크래인으로 한 번 갈아 엎었는데도 다져 진 황토땅은 거의 무소의 뿔처럼 단단했고

 

낭패스런 표정으로 한 동안 쳐다 보다

 

"그래 해 보는 거야 할 수 있어 "

 

이리해서 우리집3대 어무이, 나, 가나 여성3인조는   아침 해가 떠오르기

 

 무섭게 작업조가 투입되었 젤먼저 돌주어내기가 시작되었고 엄청난 양의 돌들은

 

싸아올리니 돌담이 되었다 자연스레 밭언덕이 된 꼴이었고  다음으로 밭이랑을 만드는 일이었는데

 

어찌 경험이 많다고 일흔이 넘는 어무이한테 삽질을 시킬 수야 있나?

 

'어무이예 지가 삽질해가 두둑을 만들테니 어무이는 호미로 고르이소"

 

이리해서 폭 1m 정도의 밭두둑을 25개를 만드는데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  나 이대로 물러 설 수 없지 삽자루를 쥐었는데 파는 거야  난 충전된 전기의 힘으로

 

로봇의 힘으로 하는 거야

 

"지은애미야, 하것나 우찌할래 나사마 이짓이 언성시러바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삣는데

 

또 이 짓을 할라쿵께 생지옥이다 우찌할래?"

 

어무이가 용기를 못 내니 내가 내어야제   20년동안 생활쓰레기인 퍁트병, 스티로폼, 비닐, 포대

 

유리병깨어진 것 제사제기, 밥그릇... 안 나오는 게 없는 나는 꼭 역사적인 유물을 캐는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처럼 사명감에서 일하는 사람같았다

 

너무 힘들고 어깨가 아플 땐 불어오는 바람이 고마운 게 아니라 샘나는 대상이되고

 

어쩜 나는 이리 힘들고 바람, 너는 그냥 한가로히 바람놀이만 하냐 이런느낌...

 

시간이 많이 흐르고 지칠만하면 내가 만든 밭두둑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위안을 삼고

 

이 일은 아오지탄광의 일도 아니고 아우슈비츠의 잔인한 통곡의 벽도 아니야

 

내가 나의 끈기를 실험하는 나자신의 인내심이야

 

밭두둑이 22개가 만들어지니 어무이는

 

"지은애미야, 니 보기보다 대단타 고마 한 두 줄 하다  나 몬하것소 치아삡시다 이랄 줄 알았는데

 

장골도 몬하것다꼬 고개를 흔든거로 니가 해 내네 참말로 욕봤다"

 

'어무이가 욕 보지 지가 봅니까? 어무이는 지나이에 논도 갈고 밭도 갈았다캤는데

 

지는 그런거는 몬해예"

 

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가고  우리가 꿈꾸듯 붉은 황토밭이 단장한 새색시마냥

 

얌전하게 밭모양을 하고 거울앞에 선 듯했다

 

"대단해요 우찌 이런 일을 해 냇소 아파트사람들은 아무도 몬하것다고 고개를 흔들었는데

 

여자3인조 참 잘한다 욕 봣어요"

 

이장님의 컬컬한 웃음으로 우리도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고 손에 묻은 흙과 손톱밑과 지문고랑사이에

 

박힌 흙고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참으로 오랫만에 죽을 힘을 다해 용 써 보았다

 

내 인생의 가장 힘든 하루를 지는해와 함께 마감했다

 

제초제 뿌리고 참깨, 들깨씨 뿌리고 비닐로 덮고 ...

 

나는 오늘의 힘듬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삶의 무게가 힘들다고 생각할 때 오늘이일을 기억하리라

 

이보다 더 힘든 태산이 내 인생길에 가로 막혀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태산을 내 힘으로 밀쳐내려면 이런 힘든수련이 필요하다

 

밤엔 참으로 흐뭇했다

 

나의 힘으로 내가 원하는 한가지일을 해 냈으니

 

뿌듯한 자신감으로 나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자신감~~~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내 인생의 또 다른 도전을 위하여. 또 충전을 시작하는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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