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촉촉하게 나즈막히 내리는 날 무엇을하면 좋을까? 고민도잠시
어제 머릴자르려고 갔던 미용실이 문닫혀있어 그냥 오늘로 미루고 공원에 가서
봄을 씹고 오질 안았나
오늘 단골미용실로 마스코트가나를 델고 갔지
둘이서 검으꾸리한 세상에 환한 모습되어보자고 새끼손가락 고리걸고
'엄마, 머리자르면 가나 공주님되지 응?"
"그래 백설공주님이 되지!"
이렇게 미용실 문을 열면서 아이에게 머리자른 후의 고운 환상을 미리 생각하니
단번에 아이는 5000원짜리 백설공주의 꿈에 젖어 나 먼저 머릴자르겠다고 야단이다
"공주님 되려면 얌전하기도 해야되는데 엄마 먼저 깎으면 안 되겠니 엄마는 염색도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백설공주님 빨리 되고 싶어요"
"그래그래 백설공주님이 되려면 가나가 빨리 해야되는구나 그래 그러자"
미용실 아지매는 가나에게 더 이상 양보를 끌어내지 못했다.
가나는 꿈꾸는 아이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꿈이 바뀐다
'들장미소녀 캔디'가 TV에서 나오면 금새 캔디가 되고 도라에몽을 하면 또 금방 이슬이가 되고
책속의 예쁜 여자아이는 다 되어 본다
오늘은 백설공주컨셉이다
머리도 그렇게 깎아 달라고 주문까지 한다
집에서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읽어주었더니 백설공주머리가 넘 이뿌다고
"아줌마는 백설공주 머리를 못보았는데 어떤모양이야?"
"요렇게요렇게 생겼어요 백설공주는 가나랑 똑 같이 생겼어요 "
"알겠어요 지금부터 백설공주 머리를 만들어주겠어요 공주마마"
가나는 금새 백설공주로 변했다
거울속의 백설공주가 웃었다
'아줌마, 백설공주 예뻐요?"
"그럼 예쁘지 가나백설공주님 진짜로 예뻐요"
드라이까지 해 주니 공주님이 되었다고 좋아서 소파에서 얌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거울앞에 앉아서 머리염색을 시작했다
그냥 맹숭거리고 앉았기가 지루해서 여성지를 펴들었더니
보지말라네 불편해서 하기 힘들다고 이럴땐 참 심심하지 순간 머릿속을 확 스치는 질문하나가
떠올라서 내친김에 물었지
"어떻게 미용사가 될 생각을 했어요? 난 꿈에도 미용사에 대해서 생각 해 본 일이 없는데
참 신기해요 어떻게 미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거울속을 보며 물었더니 뜻밖으로
"전 경상대보건학과를 나왔어요 87학번이죠 "
"그럼 병원 임상병리과 정도는 취직이 잘 되는데?"
' 피를 뽑는 일이 직업이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싫었어요 졸업후엔 치과에도 취직을 했지만 그 당시에
우리집 사정이 워낙 좋지 못해서 내가 돈 벌어서 집에 도움도 주어야하했고 시집 갈 돈도 마련해야 했고
또 한가지 평생동안 돈을 벌려면 미용사라는 직업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것도 어떤 계기가 있어야지 제 주위엔 미용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어릴때부터 미용에 관심은 가져 본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친구아버지가 경대교수님이셨는데 딸이 둘 아들이 하나였어요
아들과 딸하나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취직도 잘했지만 딸내미 한명은 공부를 지질이도
못해서 여상을 나왔는데 아버지가 그냥 미용실을 차려주어서 미용사를 고용하게 되었어요
그 때 우리는 뻔질나게 그 미용실에 드나들었고 자연스레 머리손질하는 것도 많이 훙내도 내 보고
엉터리 보조시다 노릇도 해 보고 참 우스웠어요 자연스레 미용에 관심도 갔고...
다른 친구한명도 의상학과를 다니다가 3학년때 졸업 후 취직이 될것같지 않다고 하며 자퇴를 하고
미용학원에 가서 기술을 익혀 자격증을 따서 미용사가 되는 걸 보고 나도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길을 바꿔서 오늘까지 온거라예"
"미용기술 익히고나면 남자들은 샷터맨이 되고 여자들은 팔자가 세다는 말땜에 신경쓰이지 않든가예?"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많은 미용사들의 남편이 그런 경우가 많아요
여자벌이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달끼가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직장그만 두고 백수생활을 즐기는
남자들 많아요"
"아저씨는 대우조선에 근무하지요? 아줌마가 많이 벌면 또 그런 생각하려는 쪽은 아니지요?"
"우리아저씨는 그런 타입은 아니에요 저도 돈을 많이 버는 입장도 아니고 그냥 생활비에
보탬이 되는 정도이고..."
"그래도 직장에 가서 짤릴 걱정 없어서 좋겠어요 우리아저씨는 능력없는 여자를 만나서
늘 미안해요 제가 전문직을 못가져서ㅎㅎ..."
"무슨말씀이에요 언니는 ..."
거울속을 쳐다보며 이웃에 사는 미용사가 87학번이란 것도 알게 되었고
세상엔 참 다양한 직업이 있는데도 너무 세상을 모르고 살았던 나의 모습이 거울속에서
그녀의 용기있는 결단을 보고 박수를 보냈다
가나는 백설공주가 되고 나는 오드리햅번이 되어서 미용실을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촘촘히 내리고 있었다.
'이야기뱃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낭개들... (0) | 2007.04.21 |
---|---|
빨간우체통과 우체부 (0) | 2007.04.16 |
이장님, 이장님, 우리이장님 (0) | 2007.04.14 |
여자의 일생 (0) | 2007.04.08 |
아를 지기도고 미안토 안한가??? (0) | 2007.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