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아주 오래 전 슬픈 기억

이바구아지매 2007. 5. 12. 16:35

촉촉하게 비가 내린다

 

신작로길에 차가 지나면서 물튀기는 소리를 연방낸다

 

금방 노란색 택시가 또  비를 스치며 지나갔다

 

노란색 택시?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그냥 그리 서 있었다

 

그 흔한 노란색 택시를 보자 내 앞에 클로즈업 된 얼굴하나가 눈에 눈물을 머금고 나타난다

 

방금 운 얼굴이다 내 앞에 선 얼굴은 방금 세수를 한 모습으로

 

화장끼 없는 하얀 얼굴에 약간의 홍조를 띄고

 

눈가가 젖었고 손으로 눈가를  훔치더니  내 앞에서 잠깐 스쳤다

 

너무도 또렷하게 

 

 순간 흠짓 놀랐다

 

언니는  이 세상사람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국민학교 4학년때 본 얼굴이다

 

26살 나이로 술에 약을 타서 마시고 죽음을 택했던 언니

 

왜 그 언니가 이렇게 비 오는 날 노란택시랑함께 떠 올랐을까?

 

노란택시, 언니의죽음~자살이란 억지죽음을 선택했던  우리학교 행정실에 근무한 언니

 

"맞어 그 언니가 좋아했던 사람이 노란택시의 기사님이었지'

 

금방 수수께끼가 풀렸다

 

가끔씩 그 언니가 떠 올랐었다

 

나와는 별다른 친분도 없었는데...

 

아니 딱 한 번  우리교실에서 수업을 보아 준 일이 있었지

 

그 날 국어책을 폈고 언니는 수업은 하지 않았지만 자습을 시켜놓고도 일일히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이름도 물었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착한 사람이 꼭 되어야한다고도 했다

 

착한사람, 아 한 가지 더 떠오르는  게 있다

 

남을 슬프게 하지말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남을 슬프게 하지말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은  수업시간과는 별 상관없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창가로 가더니 창문 밖의 산허리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고

 

눈물을 주루룩 흘렷다

 

나는 보았다

 

언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왜 무엇때문에 그리고 언니는 자신의  왼쪽 손등을 살몃 쓸어내렸다

 

순간 난 보았다

 

언니의 손등이 화상으로 흉하다는 사실을   언니는 산허리를 왜 내다 보았을까?

 

땡땡땡 마치는 종소리가 아이들을 후다닥거리며 시끄럽게 했고

 

언니는

 

 "오늘 참 즐거웠다  공부잘해 착한사람 되고???"

 

 

 

다음날 학교로 갔다

 

운동장에서부터 아이들이 삼삼오오 둘러서서

 

"언니가 죽었대  행정실언니가?  자살을 했대"

 

"왜"

 

"실연을 당했대"

 

"실연이라쿠모 애인한테 버림받은 것"

 

아이들은 또 나름대로 상상의 살을 덧붙여서 또 다른 아이들에게 소문을 나르기 시작햇다

 

들어보니 어제 우리교실에서 창밖 산허리를 보며 눈물을 흘리더니...

 

언니는 곧 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공동묘지 양지쪽에 묻혔다

 

언니가 죽게 된 사연은 참 처연햇다

 

손등의 화상 흉터가 커서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택시기사를 하던 그 남자가 차버렸다

 

그 노란색 택시기사가 우리집 아랫방에 살았었다

 

내가 본 그 기사는 거들먹거리고 객지에서 들어 온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기던 시커먼 아저씨였는데

 

언니가 백배 더 멋지고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 노란색 택시를 몰던 그 아저씨는 다른 아가씨랑 데이트를 하고 집에도 데려 왔었다

 

어린 나는 참 나쁜 아저씨고 그 후 택시기사들은 나쁜 짓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노란색 택시는 벌써 서너차레 지나갔는데

 

내 기억속의 언니는 나 보다 더 젊은 나이로 눈물을 훔치며 내 앞에서 잠깐 스쳐갔다

 

 

유년의 슬픈 기억은 어른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금님 귀는 당나귀 ...  (0) 2007.05.16
쉿! 비밀이야  (0) 2007.05.14
포리 이 간나들 엎드리뻣쳐!!!  (0) 2007.05.11
얼음공주 보거라(지나간 일기)  (0) 2007.05.10
오월의 합창  (0) 2007.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