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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날에서 니얄 봄까지

이바구아지매 2007. 5. 23. 11:15
 


 파도가 치는가. 멀미를 심하게 하는가.

 가슴이 울렁거린다. 눈앞이 어지어질하다. 이런 날이 하루도 아니고 사흘도 아니고 닷새 엿새 열흘이 넘었는데도 오늘이 어제처럼 여일하다.

 내 생애 남의 글을 읽고 이렇게까지 허둥대본 적이 있었던가. 과거도 오랜 과거 그 시절에 김승옥의 마약에 쩔어 담배깨나 축낸 적은 있다. 카뮈와 사르트르에 미쳐 부조리, 부조리 뇌까가리고 다니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때는 머리의 作亂이 컸다고 고백해야 한다. 일정한 분노도 있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2007년의 이 어질머리는 종류가 다르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무슨 말라비틀어진 관념도 이념도 모조리 걷어내 버린 오직 가슴만의 사건이다. 오, 하느님 맙소사, 이렇게 호들갑이라도 떨고 싶어지는데 남사스러서 그리는 못하겠고 한 번 더 혼자 웅얼거려본다.


                  그 날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하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러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그때 참말

오줌 지릴 뻔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

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 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요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

틀었어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이것이 열여덟 살 어린 소녀의 작품이랜다. 국어선생으로부터 5.18기념재단 주최 백일장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업시간에 몰래몰래 쓴 작품이랜다.

 형식을 분류하자면 일종의 담시다. 이야기 시라는 거다. 단 한자도 더해서는 안 되고 빼도 안 된다. 완벽이라는 말을 써도 좋겠다. 총구녕으로 상징되는 계엄권력과 총살당한 어린학생을 보면서도 도망이나 치는 소시민의 비루와 그 뒤의 후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면서도 침묵을 했던 언론의 직무유기까지, 80년 5월 광주의 그날이 이 한 편의 아주 짧은 글 속에 모두 녹아 있다.

 심사를 한답시고 몰려든 위인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경악을 했다. 40년을 詩作으로 살아온 위원장은 “아이고 내가 떨려서 말이 안 나와” 하고는 아무 말도 못했다.

 오마이뉴스의 홍성식 기자는 브레히트가 울고 갈 천재성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다. 호들갑이 아니다.

 브레히트의 희곡 중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는데 동명의 제목으로 발표된 소설이 하나 예전에 있었다. 그 소설이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소설은 시류에 야합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문학 본연의 순수성이 결여됐던 것.

 그런데 오늘의 열여덟 살 소녀의 작품 그날은 그 모든 비판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제거해 버린다. 이렇게도 짧은 몇 줄의 글 속에 이렇게도 많은 것을 깊이 있게 담아낼 수도 있었던가? 아 그래, 이것이 문학이다. 이것이 시인 것이야. 이런 말밖에는 안 나온다.

 시라면 그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천착은 단 한 귀도 없고 사랑이라는 단어 그 두 글자만으로 뚝딱 한 편 완성했다고 킬킬거리는 오늘의 문학풍토에서 이 소녀의 등장은 참말로참말로 귀하고도 반갑고 고맙고 또 뭐냐 그 하여튼 그렇다.

 그녀의 작품이 그날 한 편 뿐이라면 물론 아직은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편이 아니다.


         니얄 봄


큰마니 죽지마오.

니얄 봄 곱게 화장해

내 저 리북 보내줄테니

죽지마오.


내 저 가시난 쇠붙이 위 새에게 물어보았소.

-너는 어드메서 왔네.

-내레 큰마니 아들 뒤뜰에서 왔시오.

-울 큰마니 아들 잘 살고 있드냐.

-그렇디요. 니얄 봄 큰마니 뵈러 온다 했수다.


내 저 약수 같은 강물에게 물어보았소.

-너는 어드메서 왔네.

-내레 큰마니 딸 앞뜰에서 왔시오.

-울 큰마니 딸 잘 살고 있드나.

-그렇디요. 니얄 봄 큰마니 뵈러 온다 했수다.


큰마니 죽지마오.

니얄 봄 곱게 화장해

내 저 리북 보내 줄테니

죽지마오.


 그날에서 광주의 5월을 회상하고, 니얄 봄에서 통일을 노래하는 이 소녀, 이 사람은 대체 언제 이렇게도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했나? 전두환의 등장 이후 공무원시험에서조차 역사과목을 없애 버리고 그리하여 학교에서 역사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이 웃기는 나라에서 그녀는 어떻게?

 역시 독학이라고나 해야겠다. 시 그날을 수업시간에 선생 몰래몰래 썼다는 데서 이미 드러나 있듯이, 그녀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학교의 커리큘럼을 그리 크게는 신뢰하지 못하는 거다.

 유치원부터 시를 보고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요즘은 노르웨이에 가 있는 박노자 교수의 역사평론을 즐겨 읽는다고도 했다. 유치원부터라면 부모가 이미 세속의 유행을 멀리 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세속의 유행이란 것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던가? 역사 과목을 천덕꾸러기로 밀쳐버린 이 땅에서 중국이 동북공정이다 뭐다 들고 나오니까 부랴부랴 황급히 서둘러 역사연구회를 권장하고 서울대라는 곳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고 떠벌이고 등등 그런 짓거리들 아니더냐.

 그녀는 말한다. 경기여고 3학년 재학 중인 정민경, 18세, 그 어린 나이의 어른은 시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마음으로 느낀 것을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고 요녀석, 내가 그냥 이뻐 죽겠다.


출처 : 산지기의 웰빙터치
글쓴이 : 나무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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