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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아 피천득 할아버지 돌아가시다

이바구아지매 2007. 5. 26. 17:57

<'인연' 남기고 간 '국민 수필가' 피천득>


서정적이고 섬세한 문체로 사랑받은 5월의 琴兒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인연' 중)

25일 타계한 금아(琴兒) 피천득은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서정적이고 섬세하면서도 간결한 문체로 풀어낸 한국 수필문학계의 대표 작가다.

대표작 '인연'은 자신이 열일곱 되던 해부터 세 차례 접한 일본 여성 아사코와의 만남과 이별을 소재로 한 것으로,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이 작품을 읽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설렘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첫 사랑의 대명사가 됐다.

2002년에는 수필의 실제 주인공인 아사코를 소개하는 내용이 국내에서 방송됐을 정도였다.

수필가, 시인, 영문학자의 삶을 산 그는 1910년 5월29일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 상하이(上海) 공보국 중학을 나와 호강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광복 직후에는 경성대 예과 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고 1954년에는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하버드대에서 1년 간 영문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수필가로 유명한 그의 문학 입문은 시가 먼저였다.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抒情小曲)으로 등단한 뒤 잡지 '동광'에 시 '소곡'(小曲)(1932), 수필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1933) 등을 발표했다.

1947년 첫 시집 '서정시집'(1947)을 출간한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 수필가'로 불릴 정도로 수필을 통해 문학적 진수를 드러냈다.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 맵시 날렵한 여인"이라며 은유법을 구가한 수필 형식으로 쓴 수필론 '수필'은 '인연'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세기 소설가 너대니얼 호손의 단편 '큰바위 얼굴'을 번역한 글을 포함 4편의 글로 1999년 2학기 국정 교과서 '국어' 과목 수록작 저작권자 가운데 저작권료 수입 랭킹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춘원 이광수가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닮았다고 붙여준 호 금아(琴兒)처럼 그는 딸 서영씨가 어릴 때 갖고 놀던 인형을 목욕시키고 머리를 묶어주는 등 인형놀이를 하는가하면 흠모하는 작가인 바이런, 예이츠의 사진과, 자신이 '마지막 애인'이라 불렀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의 사진을 가까이 두는 소년의 모습을 간직했다.

어린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발표작 가운데 어린이가 읽기 적당한 시와 수필 등을 엮어 '어린 벗에게'(2002년)를 냈다.

지난해에는 대표작 '인연' 등 16편의 수필작품이 수록된 '피천득 수필집'이 처음으로 일본에서 출간돼 화제가 됐다.

그의 딸에 대한 사랑은 유별났다. 수필작품을 통해 여러번 딸의 이름을 부르며 부정(父情)을 나타냈다.

"서영이는 내 책상 위에 '아빠 몸조심'이라고 먹글씨로 예쁘게 써 붙였다. 하루는 밖에 나갔다 들어오니 '아빠 몸조심'이 '아빠 마음조심'으로 바뀌었다. 어떤 여인이 나를 사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랬다는 것이다. (중략) 아무려나 서영이는 나의 방파제이다. 아무리 거센 파도가 밀려온다 하더라도 능히 막아낼 수 있으며, 나의 마음 속에 안정과 평화를 지킬 수 있다."('서영이' 중)

미국에서 촉망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는 그가 그토록 사랑한 딸 서영씨와 남편 로먼 재키(MIT 물리학 교수)씨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외손자에 대한 그의 사랑도 매우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73년 10월부터 글을 싣기 시작한 월간 교양지 '샘터'와 인연을 이어갔으며 2002년 8월에는 월드컵의 감동을 쓴 시 '붉은 악마'와 'Be the Reds!'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환호하는 사진이 '샘터'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서초구 반포본동 자택에 있는 본인의 서재를 그대로 샘터 사옥으로 옮겨 달라고 샘터 측에 부탁했다.

서재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평소 보던 책, 안경, 메모 노트, 좋아하는 작가와 배우 사진 등으로 채워진 단촐한 공간이다.

'피천득의 방'은 향후 파주출판단지에 세워질 샘터 새 사옥 설계도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샘터 측은 "작은 아파트에서 책과 음악과 조용하게 살다 간 선생은 다작(多作)을 경계했다"며 "문단에 나온 뒤 그가 쓴 책 가운데 대표작을 꼽으라면 대표 수필을 엮은 수필집 '인연'과 시집 '생명', 번역서 '내가 사랑하는 시'와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 등을 꼽을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의 문학관은 자신의 글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인생의 "아름다움" "인간 본연의 의지와 온정"의 문학이었다.

국내 원로ㆍ중진 문인이 문학에 입문한 과정을 들려준 책 '내 문학의 뿌리'(2005)에서 그는 "문학의 내용이 주로 아름다움으로 채워지기를 바란다"며 "슬픔이나 고통도 얼마든지 문학의 내용이 될 수 있지만 비운에 좌절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의지와 온정이 반드시 그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삶은 작가의 문체처럼 소탈하고 검소했다. 술과 담배는 평생 하지 않았고 산책과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으며 화려한 장식품 하나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소박한 인생관을 가진 그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사후에 대해 작은 바람을 말한 적이 있다.

"죽어서 천당에 가더라도 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억울한 것도 없고 딱히 남의 가슴 아프게 한 일도 없고…….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참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 사람,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 주기를 바라는 게 욕심이라면 욕심이죠. 그것도 참 염치없는 짓이지만…."

생일을 며칠 앞두고 떠난 그의 마지막 길은 가족과 평소 친하게 지낸 문학계 지인들이 함께 했다.

js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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