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야?
귀또리가 귀뚤귀뚤 고요를 깨는 통에 얼른 일어나 앉았다
창호지문틈으로 아직 으스름이 걸쳐있는 게
새벽에서 이른 아침으로 가는 길
어젯밤에 부엌 아궁이에 장작불 붙여 감자도 구워 먹고 고래구녕으로 불길 쑤셔 넣었더니
방안 가득 따뜻한 불기운이 가득한것이 참 좋다
오랫만에 불 붙이고서 뒷겻으로 돌아가서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지도 보고,
어둠속에 허연 연기가 하늘로 오르는 걸 보고 불씨 잘 모아서 구들장에 불기운
담으려고 얼마나 쑤셔 넣었는지
방바닥에 깔아 말리던 참깨들이 간들간들 말라가는 느낌이 들고...
참 오랜만에 시골집에서 아침을 맞는다
가나는 새근새근 잠 자고
벽에 걸려 있는 농가달력의 숫자들이 아침햇살에 도드라지고
'오늘이 9월16일이구나'
큰 달력 옆으로 거울이 걸려 있어 창호지문이 거울속에 비치고
슬몃 다가가서 내 모습도 비춰보고...
"아니, 넌 누구야,
얼굴이 퉁퉁 부어 눈꼽쟁이 달고 머리는 미친여자처럼 산발하고
석달열흘 감지 않고 빗지도 않은 듯
블라우스 윗 단추는 또 그게 뭐냐
첫 단추부터 남의 집 대문속으로 밀어 넣었으니 끝 단추는 제 집도 못 찾아 홀로 남았구나.
에구 참말로 푼수 아짐아, 시집가서 스무해가 넘으니 아침에 일어난 모습도 이제 참으로 볼쌍사납다.
거울보기 미안쿠나
이왕지사 손도 한 번 비쳐 보고 손가락이 날씬날씬하여 배우같지는 않지만 밉지 않은
작은손이 오늘아침엔 꼭 거북이 등짝 같구나
어제 온 종일 일했다고 그런지 피곤하여 그런지 돔박하고, 통통하니 그기까지만 해도
미운손인데 손톱밑에 검은때는 또 언제 제집을 지은 듯 까맣게 들어 앉았고 까만 불빛에 비춰보니
예삿일이 아니네
손가락마다 지문사이로 흙이 골에 끼여 있듯하고
손톱위에도 누렇게 황토빛으로 물이 들었네
분명코 어제 내 맨손으로 일을 함부로 한 꼴이 이렇게
흉한 모습으로 꼭 옆집 뚱댕이 미순네 아지매 40년동안 농사짓고
장에 가서 함부로 굴린 그런 손과 닮았으니 속 상 해
손이 이 정도면 발아, 너도 보자 이리 나오너라
거울에 또 한 번 비춰 보고, 아구아서라
앞서거니 뒤서거니다
참으로 흉하다
발은 꼭 머슴발이 아닌가?
너들너들해진 머슴발이 용케 주인을 따라 논도 가고 밭에도 따라 댕기던
버버리아저씨의 발을 닮다니, 머슴같은 발 보고
우리 신랑 놀라 도망가겠네
어제 비오는 밭고랑에서 뻘과 함께 난리치며 참깨단 베어 오고
고추나무도 뽑아 낸다고 손,발이 험한 난장판에서 함께 싸운 꼴이니...
비 오는 날의 풍경
내가 벤 깻단...빗속에서
시집올 때 데리고 온 꽃나무들이 비를 가득 맞는 모습...
이 꽃나무들도 나랑 함께 이 집으로 스무두해전에 온 걸 알까?
거울아, 너 보기 정말 미안하구나
어젯밤 무쇠솥에 물 가득 끓여 씻는다고 씻었는데 왜 내 모습이
이모양이냐? 왜 흙이 그대로 붙어 있냐?
짚수세미로 문대고 시멘트 바닥에 비벼야 다 떨어져 나가냐?
이래서 시골에 농사 지으며 살기 싫은거라고
어디 내 모습이 이쁜 곳이 한 군데도 없으니
그래도 좋은 것도 많지
이른 아침에 고되게 일한 내가 가뿐히 일어나 앉는건 장작불에
연기마시며 흙방에서 찜질해서 거뜬하고
까치가 깍깍거리니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있고
저 신작로에서 내 달리는 차들이 경주하듯 하는 모습이 보여 좋고
들판의 나락이 일렁이며 익어 가는 게 보이고
참새도 날고 너른 들판 허수아비도 마루끝에 서면 보이니 좋고
논 언덕,밭 언덕에 산달 다 된 새댁의 궁둥이만한 호박들이
메달려 있으니 얼마나 보기 좋은지...
이렇게 나 혼자 거울속을 보다가 밖을 내다 보다가 주절거림으로 가는 아침
그래도 아쉽고 억울한 건 거울속의 너
너 누구냐? 헝컬어진 미친년 널뛰기 한 모습
넌 내 유년의 들판에서 미쳐 날뛰며 노래하고 칼춤 추던 완이 엄마 모습을 하고
거울속에서 베시시 웃고 있네
이왕 그리 된 것 노래도 한곡 불러보자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완이 엄마가 무지 잘 불렀던 그 노래가 다시 내 앞에서도 노래되네
아침 군불을 또 지피러 나가보아야지
아침체조하듯 하품 한 번 늘어지게 하고 장작불을 붙인다.
*** 어무이의 시골집에서 맞은 아침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