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안암골 호랑이들

이바구아지매 2007. 12. 6. 13:14

 안암골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뜯지 않는다고???

 

과연 민족고대 다운 포효가 아닌가?

 

오랫만에 남편의 대학동문들이 모여 안암동산을 기억하며 회포를 푸는

송년모임에 가서 즐거운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멋진 자리를 마련한다.

 

봄에는  꽃 피는 계절을  즐겁게  맞는  야유회를, 여름에는 바다로 달려 가서

단합대회를 하고  가을엔 가배농장으로 가서   달빛 가득한 숲속에서  바다의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베토벤과 슈베르트, 요한시트라우스의  음악을  달빛에 실어 듣기도 하는 데   60학번  옥치우선배님이    음악이 흐르는  숲속의 11월을  선물해 주신다.

 

유달리  선후배 관계가 끈끈하고 확실하게 맺어졌음을 알 수 있는 모습이

오늘도 유감없이 나타났다. 텁텁한 막걸리처럼 소탈하게 웃음 머금고

어깨동무도 하고 교가를 부르고 교호를 외치고 안암골의  이야기를 풀어 헤치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날마다 데모를 하고"

"그 때  최루탄 (지랄탄) 그 고춧가루 땜에 눈물깨나 흘렷지"

"화염병이 깨지면서 불이 붙고..."

"학교 교문 앞에 전경들이 방패를 막고 서 있고,  아 참  불어

오는 바람에도 최루탄 냄새 ... 그 땐 그랬지"

"고연전에서 우리가 이겼을때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꼭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즐거움을 쏟아 내고 .

 

우리가 살고 있는 거제지역은 삼성과 대우  양대조선소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고려대학 졸업생들은  직장을 따라 여기에 온

서울사람들이다..

타 지역 사람들도 다수 있겠지만

지금은 조선업이 십년이상 호황을 계속 이어가서 요즘처럼 취업하기 어려운

시기에  '신이 내린 직장'으로 통하며 매력적인 직장이 되었지만

 오래전엔 그렇지 못했다.

고향인  우리조차 떠나갔던 곳

 

거제시는 그 동안 엄청난  발전을 하였다.

 살다보니  정이 들고  고향이 되더라는    서울사람들,  그들이 섬사람이 되어살아가는 모습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좀  힘들었다.

특히 젊은이들은 서울이나 대도시에  직장을 잡고 싶어하는데

이 곳을 택한 젊은 새내기들  00학번, 02학번을 보니 거제도가  점차 매력 넘치는 살만한 곳인 모양이다. 이곳에 안암골 호랑이는 양대조선소를 포함하여

얼추 100여명에  이른다고?.

 

문화의 불모지라 불렀던 섬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간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 을 것.

 

참 이곳에 특별한 분이 또 계신다.

 호탕하고 멋진  윤여균선생님 

30년전에 이 곳 거제고등학교에 영어교사로 오셔서 후학들을 길러 내신

서울멋쟁이.

선생님은 이 섬에 와서  그대로 눌러 앉은,   보기 드물게  거제도를 사랑하신  

분으로 오늘   송년회 자리에서도  여전히 빛나셨다.

"나 올해7학년 3반이야 그리고 오늘이 내 생일이라구 자 건배"

하시며 웃으시는 선생님은  꼬불꼬불 해안도로 길을 한참 지나서  와현

마을 바닷가 사람이 되셨다.

 

ㅎㅎ 꼭 어부 같기도 하고 ... 서울 사람이 호젓한 바닷가에서 한결같이

살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정말로  거제도를 옹골지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 흐뭇하기도...

 

나와  남편은 어쨋든 섬을 떠나 보겠다고 몸부림을 쳐서  이삿짐을 싸서

서울로 달려갔던 80년대

 

우리가 떠난 사이에 안암골의 호랑이들은  간간히 이곳에 왔을 것이다.

삼성중공업이 자리한 댓섬은 바닷바람이 세찼고 황량했던 모습이었다.

대우조선이 자리한 아양,간송의  겨울 바람은  볼살을 찢어 놓듯

모진 바람이 불고 바다의 냉기는 을씨년스러웠고

  투박한 거제도 사람의 무뚜뚝한 표정은  또 얼마나 견디기

 힘들고 썰렁했을까?

도저히 정들 것 같지를 않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그냥 어촌이었던 곳

내가 생각하는 고향은   별 다른 매력 없는 섬마을

.바다만 출렁출렁 파도를 일으키는 곳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도시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버티기를

하며 항상 마음속에 떠나는 연습을 하고  살았다.

떠나면 성공을 하고 출세를 할 것 같았던  느낌,  바다 너머엔 우리가 원하는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착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것은 바다  너머의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미래를 생각하면 이 곳을 등져야 하는 게 당연한것처럼...

 


 


 

  황량한  바닷바람에, 외로움까지 견디며 이곳에 와서

서른 해를 넘기고 마흔해에 다가가는 멋진 그들이  이 땅을 지켰다.

우리가 떠난 사이에

 더러는 이곳 아가씨랑 결혼하여 가정도 꾸려서 토박이 거제도 사람 되어

 배가 나오고 머리가 희어지고  자식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고

"이젠 서울 가기 싫어 서울이 낯설고 공기도 나쁘고 살라고 해도 못살겠어"

라며 조선소와 함께 늙어 가는 그들의 모습이 무척 고맙고 아름답다게

느껴진다.

 

남편도 고등학교3학년 9월부터  삼성중공업에  입사하여  8년을 조선소밥을 먹었던 곳   그러던 어느 날 사표를 던지고 서울로 갔다.

꿈을 찾아서

세상은   꼭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것인가? 대학은 졸업했지만  계획은

 차질을 빚어   아이들이  셋이나 태어나고

 삶이 어찌 계획대로만 살아지는가?. 때로는 이렇게 엉뚱한 미로찾기

게임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를 악물어 보기도 하고

대학 졸업때까지는 꿈에 부풀었다  남편은 겁 없는 안암골의 초보호랑이였다.

그 놈의 사법고시.. . 시간을  좀 먹던  희안한 놈,  늪지대 같은 놈

우리의 가정은 피폐해졌다. 경제가 서울살이를 버텨내지를 못하게 하였다. 

부끄러운 고향길을 다시 밟았다.

여전히 욕심을 부리고 , 객기를 부렸다.

그 동안 거제도는 몰라보게 세련되어 갔고

IMF 란 힘든 시기도 겪었지만   조선소 사람들은 자신들을 배가 만들어지는

 한 부분을 지탱하는  나사못이며 이음질이고 밤낮없이 돌아가는 전기며

흐르는 바닷물이 되었다.질곡의 시간을 견디어 낸 조선소는

일취월장하여 보란듯이 우리나라를 조선대국으로 키를 키웠다.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제도를  6.25가 남긴 반공포로 수용소가

있었던 곳, 피난민이 많았던 곳 이 정도  조금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임진왜란 때 이 순신 장군이  옥포대첩을 승리로 이끈 곳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섬 이 정도로만 알아도  많이 아는 지식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당에서 공을 차면 바로 바다에 빠진다고

아는 사람도 상당할 것이다.

 

 지금은 나라의 보배가 된 거제도의 조선소, 오늘이 있기까지는 

 안암골 호랑이들의 역활이 눈부셨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직장생활을 잘 해 내는 남편의 후배중에서 내 딸과 짝이 될만한

멋진 젊은이가 있나  찾아 보고  나는 어쩔 수 없는 딸 가진 부모인지라

앗! 작년 여름에  구조라에서 본 멋진 젊은이가 다시 눈에 들어 온다

한 번 조용히 물어 볼까?

애인이 있는지? 혹 우리 애를 만나 볼 생각은 없는지?

이렇게 쓸데 없는 욕심도 부려 보고 ㅎㅎ

나는 지금 몇 살 되지도 않은 딸내미랑 짝을 맞추는 푼수에민가?

 대부분 사원복을 입고 근무 후에 바로 달려 온 모습

02학번 김미정후배는 자신을 소개하라는 말에 당당히 나와서 군기에 찬

목소리로 힘있게  팔을 뻗으며 이름을 선창하며 따라하게 하는

재미를 주고 00학번 김유상후배는 영어도 김유상 불어도 김유상이라며

재치있는  웃음을 퍼뜨렸다. 

남편은   다시 조선소 사람이 되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어딜 가나 특별한 우리가족  늦깎이 안암골 호랑이, 이마가 너무 버껴져서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관심의 촛점이 되고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자 집, 그 집 아이들 모두 몇인지 큰 소리로

대답 해  보세요 "

"네 다섯입니다. 딸넷 아들  하나 입니다."

"또 낳을 계획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오겠다면 어찌 말리겠습니까?"

"하하하 정말 대단해요, 와아 천년기념물"

"와 늦둥이까지나 대단한 경제야"

 

선배님들이 권한 술잔  몇잔이 내 앞에서 넘실대고 ㅎㅎ 이 술잔은 배며

술은 바다가 아닌가?

 

조선소를 사랑하고 거제를 사랑하여  이곳에 머문 안암골 호랑이들이

바다를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  어찌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우리보다 거제도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이 한 없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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