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뱃길...

갈 색 머 리

이바구아지매 2007. 12. 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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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수성찬 밥도 세숫갈이 안 넘어갔다.

"잘 먹었어예"

"와 더 먹지 그러냐?"

"더위 먹었나 봐요 수박이나 좀 주세요"

"그럼 좀 쉬어라 오랫만에 만났으니 둘이서 이야기도 좀 하고 방에 들어가거라"

"내 방으로 가자"

"문은 열어 놓아야지  남녀가 있을때는 문을 열어 놓는 거란 것 알지?"

"ㅋㅋ 누가 그랬냐?"

" 누가 그러긴  우리아버지, 우리선생님 그리고 나"

"그래 아예 문짝을 떼어라 "

하며 활짝 열어 놓던 불량이 우리는 책상에 앉아 서너권의 책을 폈다.

"이과니까 수학,과학 잘 하겠네 난 똥통 그래도 시험때 수학 성적은 95점까지 받아봤어."

"그래 우리 수학 실력 한 번 붙어볼까?"

불량이의 수학 푸는 실력은 완성품이었다.

30분만에  삼각함수 (사인,코사인. 탄젠트)  구하는 방법, 벡터며 ㅎㅎ 

 여러가지  문제를 풀어제꼈으니

"나 골아파 그만 해 "

"이제 우리 영화 보러 가자 "

"저 갈게요 이모님 "

"벌써 가려고? 네 빨리 가봐야해요. 집에서 걱정하거든요?"

"아이구 착하기도 해라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놀러 와라?"

우리는 빨강색 줄이 그여진 3번 버스를 타고 대명동에 가서 내렸다.

한일극장에서 "미드웨이 영화를 보았다.

 

미드웨이 영화는 1942년6월5일 (미국시간 6월4일 ) 태평양의 전략 요충지인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려던 일본 항모전단이 미국의 공격에 의해 궤멸되어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바꾼 해전으로 회자되는 해전을 영화한 것이었다.

대구의 더위는 숨이 막힐것만 같아 머리가 띵하게 아팠다.

 전쟁영화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나도 모르게 영화를 보다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달콤하게 잠들었던 나는  푹신한 느낌이 들었는데

"야 자냐? 영화는 안 보고 왜 자   형님 미안합니다 얘가 많이 피곤해서 그만 실수를"

"왜 그래 "

하고 눈을 번쩍 떠 보니  깜빡 잠이 들었는데  옆에 앉아서 영화를 보던 경대생

오빠의 어깨에 기대서 잠들었던 풍경이었다.

"엄마야, 미안합니다. 제가 그만 ..."

"괜찮아 뭐 그럴 수도 있지"

"영화도 안 보고 그렇게 잠이 왔어 ?"

"응 나 원래  극장에 가면 잘 졸아"

"나가자"

엉터리로 미드웨이를 한 편 떼고 밖에 나오니 다시 숨이 깔닥 넘어갈것만 같았다.

 

 

"팥빙수 먹으러 가자  머리도 식힐겸 "

대명제과점에 들어갔다. 나 또래의 고등학생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팥빙수를 먹으며 하하호호 웃었다.

"대구아가씨들 참 예쁘다  사과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대구여자들  예쁘지? 내 눈이 삐었어 넌 참 못났어 대구 미인들 놔 두고

거제도 섬계집애가 뭐 좋다고 ㅎㅎ"

   그래, 못난거 알아 그래도  나 우리학교 가면 인기 짱이다"

"남학생들한테 특히 ㅎㅎㅎ"

"그렇겠지 저 못난이를 ..."

"그런데 사실 나 고민이 있어 형들이랑 누나는  다 원하는 대학을 나와서

큰 형은 아버지의 학교 재단을 물러 받고 둘째형과 누나는 계속 공부하고

나는 의대를 나와서 아버지 병원을 물러 받기로 했는데 공부가 잘 안돼

너무 속상해 "

"큰일이네 열심히 해 , 나도 성적 엄청 미끄러졌어 내 생각에 대학에 떨어질것 같아"

"열심히 해 오빠들한테 도움도 받고"

" 나 정말 공부하기 싫어,속상해 공부도 잘 안 되고"

"그래도 우리가  멋진 어른이 되려면 공부말고는  뭐가 있나?"

"하긴 그렇지  빨랑 어른이나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헤어져야겠어

나 가야 할 시간이야   먼길 오니  가기가 바쁘네

불량감자 일년사이에 너무 많이 변한 모습 참 인상적이야

 우리가 어른이 되면 오늘을 기억하게 될까?"

"모르지 바쁘면 못할수도 있고 ..."

"그렇겠지 오늘 즐거웠어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

팥빙수의 시원한 맛을 느끼며 밖으로 나왔다.

하늘가득 먹구름이 몰려왔다.

"비가 쏟을 것 같아  나 갈게 "

갑자기 소나기가 우루루 몰려 쫘악쫘악 땅을 세차게 때렸다.

 

그 날 새마을호 기차에서 억수같은 빗줄기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붓도록 그냥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차가 대구에서 멀어질수록  더 눈물이 났다.

 소리없이 얼마나 울었을까?내가 운 눈물이  낙동강으로  흘러 갔을까?

집에 들어가니 오빠가

"왜 눈이 퉁퉁 부었어? 어느 놈이 때렸어?  또 어떤 놈이 못살게 굴었냐?"

"아니 그냥 몸이 아파서 ..."

난 가슴이 구멍이 날것만 같았다.

왜 아파야하는지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하며

밤새도록 엎드려서 울었다. 그리고 고통에서 헤어나는 것은  불량이를 잊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나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 이젠 널 만나지 않을거야  역시 넌 불량감자야

헤어지고 싶어  이젠 만나지 않을거야 널 만나서 아프기만 해서 싫어

그리고 더 이상 성적도 떨어지는 걸 보고 있을 수 없어 꼴찌가 되면

너무 비참할거야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

내가 빌어줄게 그 동안 고마웠어 훌륭한 사람 되었으면 좋겠어.

니가 싫다고 했던 안녕이란 말을 여기에 쓴다.  안녕"

이렇게 해서  밤새도록 눈이 퉁퉁 부워서  쓴  편지를  아침에 읽어보니

부치기도 민망한   괴상한 내용이었다.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못한다.'

언젠가 오빠가 쓴 연애편지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래도  부쳐야 돼 아무리 생각해도 더 만나면 불량이한테도 그렇고 나한테도

더 이상 만나고  편지하는 것 도움이 안 돼 우리에게  힘든 시간과

슬픔만 안길거야  그래 부치자'

빨강 우체통은  망설이다  내가 주는  편지를  단숨에 들컥  삼켰다.

그래  끝이야 정말 잊어야 해  잊는거야

편지는 내 손을 떠났다.

그리고 새로운 결심의  기분을 가지려고 미용실로 갔다.

갈래머리를 단발머리로 싹뚝 잘라버렸다.

"학생, 머릴 잘라도 돼? 혹 무슨 마음의 변화가 온 것 아니야? 왜

예쁜 머릴 자르려고 해?"

"잘라주세요. 마음 변하기 전에요"

"머릴 잘라도 되는거야?"

"머리 잘라서 염색도 해 주세요 제가 변하고 싶어요"

"그럼 살짝 갈색으로 물들여줄게 학생은 머리가 많이 검어서 살짝 갈색으로

염색하면 표도 안 나겠어"

여자의 변화는 머리를 자르는 것으로  결심을 한다던가?

 

 

거울속의 내가 슬픈 얼굴로 내다 보았다.  갈색 단발머리( 충격적인 모습)

로 염색도 하고...그 놈을 잊기 위해서...

 

 

 

*분홍꽃잎... 일곱번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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