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야, 나 여기가 콕콕 쑤시는 것 같아. 아리는 것 같기도 하고 가슴이
아프다"
"어디가 아프다고? 병원에 가봐야겠네 혹시 죽을병에 걸린 것 아닌가?
엄마한테 이야기할까?"
"하지마 절대로, 말하면 안 돼"
'주야, 니 와 요즘 핼쓱하노 밥도 잘 안 묵고 가시내 통통하고 귀여웠는데
니 그라다가 진짜 아파 죽으모 우짜노?"
"나 죽어도 괜찮다. 그냥 이리 죽어도 좋겠다. 그런데 한가지 소원이 있다"
'문디가시나 죽는다고? 뭣땜에 죽는다쿠노? 니 그 불량감자 때문이제
가시나 상사병 걸린거 아이가? 가시나야, 그 불량감자가 어데가 그리 좋노?"
"언니야, 나 불량감자한테 시집가까? 그라모 하나도 안 아프고 기분도 억수로 좋을낀데, 진짜로 못살겠다.
눈을 뜨고 있어도, 감고 있어도 온통 그 머스마만 나타나는기라"
"그 머스마가 니 수호천사 아이가? 웃기네 어째 그럴 수 있노 가시나 어젯밤에도 헛소리를 해삿터마는..."
"뭐라카더노?"
"왜그리 멀리 서 있노? 좀 가까이 와봐라 얼굴 좀 보자 그라던데 가시나 그라다가 죽것네
상사병에는 약도 없다쿠던데 , 아부지는 아무것도 모르시는데
참 큰일이다"
딱딱하게 엎디어 있던 겨울도 부시시 눈꼽 털며 기지개 켜고 일어났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건너편 뚝방에는 버들강아지가 피어 오르고
봄꽃들이 총총 피어올랐다.
2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일주일의 봄방학이 다가왔다.
"만이아저씨 제 편지 골라 갈게요"
"주야, 니 언제까지 그랄끼고?너그 아부지 보통이 아닌데 니 그라다가 대학에 뚝딱 떨어지는 거 아이가?"
"괜찮아예 뚝딱하모 고마 시집이나 갈랍니더"
만이아저씨가 분류 해 놓은 편지칸에 내 이름이 또박또박 씌어
있는 편지가 있었다.
"어 분명 내 편진데 글씨가 달라? 누군가? 이상해"
궁금해하며 뜯어보지도 못한채 책가방속에 넣어서 통학버스에 올랐다.
통학버스는 우리를 싣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학교로 달렸다.
차에서 내리자 곧바로 교실로 달렸다. 햇살이 비추는 창가로 쫓아가서
가방 속 편지를 꺼내 뜯었다.
"명주학생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학생이 이 편지를 받으면 아마도 깜짝놀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박불량이의 이모란다. 불량이는 우리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
그런데 지금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중이야
병명을 모른다니 ...
혹시 이 편지 받으면 학생이 한 번 와 주면 안 될까?
우리 불량이 정말 착하고 공부만 하던 조카야 지난 여름 학생을 만나고 난
뒤부터 너무 힘들어하고 있어 공부도 잘 안 되고 봄 방학때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결국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어떻게 한 번 와 줄 수 있을까~~"
'아프긴 왜 아파 바보같이'
"명주야, 니 와 우노? 가시나 편지에 무슨 슬픈 내용이?"
근영이가 놀라며 달려왔다.
"그 놈 다 죽어간다네.병명도 모르고"
"뭐라고 그라모 니 병원에 가봐야 하는거아이가?"
"몰라 가긴 어째가노 우리아부지 범보다 더 무서운데 어찌가노
니 알제 우리아부지 딸내미 방문앞에서 밤에도 보초선다는 것
바보같이 왜 아파 씩씩하게 살아야지
"니 가봐라 남의 집 귀한 자식 니땜에 죽어모 우짜노?"
"그라모 나도 죽어모 되지 하기 싫은 공부 안 해도 되고 , 하늘나라에서
실컷 만나면 또 좋을끼고 무서운 아버지 허락 안 받아도 되고"
"부럽다, 부러워 어쨋거나 너무 멋지다. 나는 언제 그래보노"
"이게 멋진기가 고통이지 이런 아픔이 어데있노? 가슴도 아프고 밥 맛도 없고
공부도 안 되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내 마음대로 대구까지 가는것은 불가능했다.
배 타고, 기차타고,돌아올때를 포함하면 이틀씩이나 걸려서
무슨 핑계를 대고 아버지의 허락을 받느냐 말이다.
어른이 아닌 내가 많이 원망스러웠다.
이런 안타까운 내 마음은 꽁꽁 앓는 것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였다.
내가 병문안을 못가는 대신에 어찌하면 불량이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한참 고민해 보다 멋진 생각이 떠 올랐다.
'그래 글을 쓰는 거야 ' 우리들의 이야기' 맞아 지난 여름 이야기를~'
그 때 모 학생잡지에 멋진 글을 응모하라는 내용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 나도 한번 해 보는거야
당장에 지난 여름이야기를 막 써내려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잡지사에 보냈다.
당선이 될까?안 되도 할 수 없지 그 때의 시간은 얼마나 더디가던지,
한달의 시간이 일년이나 되는것처럼... 하지만 시계추는 열심히 움직여서
한 달을 데려갔다.
"와 명주야, 니 글이 책에 실렸다."
나 보다 먼저 나를 발견한 근영이가 소리를 질렀다.
"가시나 멋지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글이 활자화되니 더 멋지다.
누구는 좋겠다. 이렇게 글로 우정을 과시하다니 샘난다."
'우리들의 이야기"
"박불량? 그런 일이 있었어
너에게 말하지 못했던 것 지금에사 말한다.
넌 나의 분홍꽃잎이었어."
* 분홍꽃잎...다섯번째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