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혼자가 아닌 나

이바구아지매 2007. 12. 27. 08:41

6:30분 시내에서 남편을 만나기로 했다.

" 자기,어디만큼 왔어? 난 거의 다 왔어 공중전화 앞에서 기다릴게"

"그래  나도 다와간다. 일분만 기다리라 도착할끼다."

시내에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약속을 지키려고?

퇴근하고 한잔 꺾으러 가는 사람들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가는 마음이 바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읽으며 짧은 일분도 길게 느껴진다. 그 일분이 십분으로도 이어지니 말이다.

공중전화도 참 외로운 모습이다. 거들떠 보는 사람들이 없다.

다들 핸드폰으로 걸어가면서 전화를 하니  찾아주지 않는 공중전화도

슬프고  외로운  독거노인 같기만 하다.

아주 오래전에는 시내에 나오면 저 공중전화를 붙들고 몇 번이나 통화를

하려고 긴 줄을 서 있곤 했는데 혹시나 통화를 좀 길게라도 할라치면

"그 참 무슨 통화를 그리 길게 해요? 뒷사람도 생각해야지? 당신 전화야?"

이런 무안을 받기도 했지만 공중전화를 많이도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거리로 나가면 늘 공중전화가 근처에 있어야 안심이 되곤 했던 지난 날이

슬쩍 추억처럼 떠오른다. 

공중전화가 겨울을 닮은 것 같다.

"무슨 소리 하냐? 궁시렁거리냐고? 사람이 와도 모르고?"

"그냥, 공중전화가 참 안 되 보이네 아무도 안 찾아 주니 말이야.그러니 난

핸드폰 안 가지고 다닐거라 했잖아  저 봐 30분도 더 서 있었는데

아무도 전화를 거는 사람이 없어  불쌍하지 않아?"

"별게 다 불쌍하네 고마 가자 생일 축하를 폼나게 해야지

우리각시 귀빠진 날인데 가자 가장 멋진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안 봐도 뻔하다 내가 갈 곳이 어딘지가

며칠전 친구가 개업한 일식집 '대호' 그 폼나는 집에 내가 가는  거다.

"지금 어디 가 난 분명히 그 집은 안간다고 했어"

"알겠습니다 따라만 와 보십시오"

우리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바닷바람도 잔잔하고 파도소리만 싸아하게 들리다가 차소리에 파묻혀버리고

발자국소리만 형사들의 발자국소리처럼 따라왔다.

"안녕하십니까? 아리가또오자이마스"

"뭐냐? 여기는 일본 오오사카? 나가사키?"

그기다 바로 '대호' 아까 난 여긴 안 온다는 말을 강조하다가 너무 멋진

그 모습에 깜짝 놀라며 까망색의 분위속으로 홀려  들어갔다.

모든 인테리어는 일본풍 직원들은 짝퉁 기모노를 입고 일본풍을 팍팍 풍겼다.

대나무까지 ... 사시미 뜨는 네사람의 주방장들은 꼭 일본의 스모선수 같기도 하고 유도선수 같기도 하고 어쨋거나 오늘 난 거제도에서 작은 일본을 만났다.

우리는 거의 특별손님이다. 주인의 친구니까 ㅎㅎ 그냥 무대뽀로 예약도 없이

멋진 방으로 초대되어 들어갔다.

다다미방도 있다는데 예약손님이 하도 많아서 난 다음에 다시 구경 오면 되니

오늘은 온돌방에서 오붓하게 분위기를 살리고

"짝퉁 기모노지만 너무 예쁜 모습으로 아리따운 아가씨가 와서 내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예쁜 아가씨는 누구?"

"저 소담이친구예요?"

"누구지 이름이?"

"고소미입니다"

"그래 이쁘다 고소미양  학생일텐데?"

"올해 대학에 진학했구요 알바합니다"

"이쁜 알바생 착하다  벌써 알바까지 해서 부모님 부담을 들어드리고 기특해"

일식은  그릇부터 이쁘고 깜찍하며  다양한 요리가 하도 맛있어 착착 갖다주는

대로 주워 먹었다. 계란찜,전복죽,새순무침,갖가지  모듬회(해삼,멍게,미더덕,문어, 굴,학꽁치,장어) 가 고운 단풍나무 숲에 싸여 나오고 치커리며  이름도 잘 모르는 별별 요리가 내 생일을 빛내 준다.

중간중간  기모노를 입은 직원들이 와서 서비스를 친절히 하는데

눈에 거슬리는 게 하나 있어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직원들의 기모노 치마를 옆으로 쫘악 갈라서 허벅지까지 걸으면 다 보이게

한 그 치마가 신경쓰였다.

분명 저 치마가 문제구나 앞으로 여러 남자들 사고치겠네 이런 생각이

번쩍 떠 올랐다. 다른 집에는 불화가 생겨도 알바가 아니지만

우리집에 저 치마땜에 여기 오고 싶은 남자가 생기면 문제다

경고를 해야겠다. 오늘 이후로 발길을 옮기지 말라고 ㅎㅎ

주인도  매상을 저런식으로 올려야겠는가?

하긴 저것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는 나만의 기우인가?

어쨋든 맛있는 알밥까지 먹고  녹차향으로 입안을 가시고  나오니

또 선물까지 준다.

"내게만 특별히 "

그 선물이란건 개업 때 쓰고 남은 타올  그래도 선물을 받는 건 좋다.

"제수씨 , 생일 축하합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웃으니 꼭 애기 같아요.

천진한 웃음이 너무 귀여워요."

"늙지도 않는다, 늘 소녀다. 나이도 먹기 싫단다. 16살이라고 말하란다"

남편도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기분이 좋기만하다.

돌아오는  길에 '화수분'(꽃가게) 에 들렀다.

꽃을 닮은 소녀같은 윤선생을 만나서 꽃도 선물받고

"사모님 왜 멀리로 이살 갔어 옆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잘 통하는데"

윤경아선생도 해맑은 소녀같은 성격이다.

선생이란 직업을 그만두고 꽃집을 하는 여자  웃음과 꽃향을 가득 선물 받고

차를 타고 달리다보니 대우조선소 위에 뜬 둥근 달이 꼭 조선소 골리앗 위에 걸려 있는 것 같아  크고 맑아서 꼭 따면 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기야, 나 저 달 따 줘"

"니 지금 머시라캤노? 생일이라고 봐 주니 머시라 달도 따돌라꼬? 니가 지금

 공준줄 아나?"

"그럼 나 오늘만 공주인' 하루공주' 안 따 줄끼가?"

"됐다 범일이랑 가나보고 한장 그리도라캐라"

달이 차창밖으로 부지런히 따라와서 우리집까지 데려 다 준다.

ㅎㅎ 내가 너무했나? 내가 달 따 가버리면 세상이 어두워서 안 되지

아니 새달이 또 떠 오를텐데...

가나도 달 따내면 새 달이 떠오른다는 걸 안다.

다시 내년의 생일을 기다리며

 

"여보 오늘  정말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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