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내 발자국(일기)

밤에 먹은 팥죽

이바구아지매 2007. 12. 23. 09:50

"엄마,동진데 팥죽 안 해요?"

"어 팥죽은 좋은데  엄마가 나이를 많이 먹는 게 싫어서..."

"엄마,팥죽 쑬줄 아세요?"

"몰라 안 쑤어봤어  ㅎㅎㅎ"

"그럼 엄마 우리 오늘 팥죽 한 번 만들어 볼래요? 우리 학교에서도

토요일에는 요리 많이 하는데 한 번 만들어봤으면..."

범일이는  요리에도 관심이 많다. 설거지며 라면끓이기, 김밥말기,샌드위치만들기, 덩치는 작지만 속이 꽉찬 하나뿐인 아들이 좀 쓸만하다.

아들이 또 요리를 시작하자고 엄마를 조른다.

팥죽이라  또 요리책을 뒤져야 하는데 재료도 준비해야하고 아차 블로그가 좋은 게 이럴때지  내가 가끔씩 방문하는 '한나님의 뜨락'에는 지금쯤 팥죽이

맛있게  솔솔  팥맛 날리며 끓고  있을지 몰라 에구 팥죽 쑤려면 하루해가 꼬박 질텐데

방학을 맞은 아들이 조르면 일하기 싫어서 죽을맛인데  게으런 어른으로 보이면 내 체면이 뭐가 되냐?

또 37일이란 기간동안   함께 겨울 방학을 알차게 보내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삐끄러지는  잘못 낀 첫 단추가 되는 게 아닌가?

어쨋거나 나도 나이를 먹는지 요즘은 일이 통하기 싫다.

"나이 먹어 봐라 차려 주는 밥 말고는 일하기가 싫어 죽을 맛이야"

하고 어른들이 종종 이야기했는데 나도 작년부터 일이 하기 싫다.

 나  혹 갱년긴가?

 갱년기 정상이 이런가?

남편은 오늘도 거룩한 회식 혹은 연말 송년회를 핑계로 늦을 것이고

참 남편은 친구가 오픈한 거제 최고의 일식집에서 오늘 고등학교 동창들이 마주 앉아 부어라 마셔라 코가 삐뚤어질게다.

"히히 니  학교다닐 때  00 좋아했제 00 요새 잘 살고 있나? 소식은 듣나?"

"말도마라 작년에 멜로 소식을 주고 받다가 마누라한테 들켜서 된통 혼줄나고

욕바가지깨나  뒤집어썼지  이제 그아 말도 하지마라"

"참나 집집마다 사모님들한테 꽉 쥐어 사는구만 하기사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위하여"

이래사며 술잔을 높이 들것이고 오늘밤은 지나서 새벽에 그러니까 집나간지 

무박 2일만에 .돌아올것이다.

에고 이런 날 나는 아들이랑 팥죽이나 쑤고 있어야하나? $%^&

한숨반 넋두리반으로 궁시렁거리며  주방으로 향하는데

"따르릉 따르릉"

"전화 받아 봐"

"아빨텐데 엄마가 받으세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범일이 친구 연정인데요 범일이하고 통화 하고 싶어요."

"응 봉선화연정? 그래 잠깐만"

엄마라는 사람이 순간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다.

연정이가 밖으로 불러 내기라도 했으면 그럼 난 팥죽은 안 끓여도 되는데

참 게으런 엄마다.

"응 알았다, 도서관으로 알겠다 지금 곧 갈게 엄마 팥죽 끓이지마세요

연정이가 도서관에서 만나자네요. 갔다올게요"

"응 알았다. 잘 다녀 와 저녁 일찍 먹게 빨리 와 그리고 연정이가 혹 범일이 좋아하는 것 아닌가?"

"아니요 우리반 친군데 그런 것 아니라구요"

"아니 엄마의 직감은 달라 연정이가 범일이를 좋아하고 있는 게 분명해"

"엄마의 상상 ㅎㅎ 못 말려  다녀올게요"

ㅎㅎ 아들이 도서관으로 데이트를 갔건 공부를 하러 갔건 도서관으로 간 건 분명 좋다 그리고 하기 싫었던 팥죽을 안 쑤어도 되니 얼마나 게으름의 찬슨지

 

저녁때 별이할머니가 팥죽을 가득 쑤워 오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팥죽을 쑤워 먹나 쑬줄도 모르고  맞제 맛좀 봐라"

"예예예  어이구야 맛있다. 안 그래도 아들녀석이  팥죽 먹고 싶다고  야단이었는데..."

"내년에도 팥죽은 내가 끓여줄게 걱정말거리"

"에 고맙습니다 ㅎㅎ 내년 팥죽까지 예약되어  있으니 이러다가 영원히 팥죽 한 번 못 쑤어 보고 갈건가?

어쨋거나 오늘은 실컷 게으름을 즐긴다.

새알이 가득 든  따끈따끈한  팥죽을 먹으며 딩구니 이런 날도 좋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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